▲ 기성용까지 무너진 대표팀, 4년 전 교훈을 얻지 못한 협회

▲ 대표팀은 선수들끼리 심리를 다독여야 하는 상황이다


[스포티비뉴스=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한준 기자] 한국축구가 4년 전 패배를 답습하고 있다. 아예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한 단계 올라선 수준을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21세기 들어 한국은 매 대회 본선에 올라 승리를 거뒀고, 두차례 녹아웃스테이지에 진출했다. 한국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3전 전패, 1998년 프랑스월드컵 초반 2연패 후 1무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초반 두 경기를 내리 패한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는 ‘멘털’로 지적받고 있다. 스웨덴, 멕시코와 두 경기 모두 페널티킥으로 실점하면서 흔들렸다. 페널티킥을 내준 발단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해 판단력을 잃은 게 크다. 대표선수들은 몸을 던지며 ‘투혼’을 발휘했지만 그것은 ‘정신력’과 다른 문제다. 

과거 대표선수로 네 번 월드컵에 참가했던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과거 인터뷰에서 “정신력은 경기 중 냉정함을 유지할 줄 아는 능력이다. 몸을 던지는 것은 비난이 두려워서, 단지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현 대표팀 스태프의 생각도 같다. 스페인 대표팀 출신 하비 미냐노 피지컬 코치는 선수들의 체력에 대해 묻자 오히려 정신력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프로 선수가 최고 경기력을 내려면 정신이 중요하다. 이기든 지든 냉정해야 한다. 이겼을 때도 냉철해야 하는데, 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 선수들은 패배에 깊이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다른 나라에도 그런 선수들이 있지만 이런 경험이 한국 선수들에게 부족했다. 이런 수준의 대회에선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

▲ 브라질월드컵 백서를 만들고도 실행하지 않은 축구협회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백서에 강조한 ‘멘털 코치’, 왜 협회는 준비하지 않았나

세계적인 선수들도 실수는 한다. 실점도 나온다. 문제는 그 이후 정상적으로 경기할 수 있느냐다. 1차전 패배가 2차전에 나서는 선수들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2차전 패배는 3차전을 앞둔 선수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베테랑 박주호에 주장 기성용까지 부상으로 빠지면서 신태용 감독은 “(이들이) 정신적 지주였다는 점이 전술적 문제보다 더 걱정"이라고 했다. 

대표팀의 정신이 흔들리고 있는데, 다잡을 수 있는 사람은 선수들 자신 뿐이다. 선수들끼리 위로하고 선수들끼리 다독이고 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아무 준비도 없이 일단 도착해서 온 몸을 던지며 경기하던 반 세기 전 대표팀처럼 처절한 투혼 싸움이 되고 있다.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감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쉬운 것은 스웨덴, 멕시코, 독일 모두 대동하고 있는 ‘멘털 코치’의 부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멘털 코치의 중요성을 이제 와서 안 게 아니라는 점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나선 대표팀도 경험 부족으로 인한 정신력 문제로 쓴맛을 봤다. 무엇보다 선수 선발 과정부터 이어진 ‘의리 논란’에 선수들이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한 채 평가받는 느낌으로 대회에 임했다. 선수들은 출발 전부터 불안했고, 대회가 시작되자 그 불안을 극복하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졌다. 선수들을 위축되게 만든 것은 상대의 강한 실력도 있지만, 우리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게 만든 부담감이 컸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우리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대표팀은 선수단의 심리 콘트롤에 실패하고 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은 같은 문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백서’를 만들었다. 여기엔 멘털 코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협회는 실행하지 않았다.

▲ 부족한 시간과 경험 속에 고군분투한 신태용 감독 ⓒ연합뉴스


◆ 감독 경질, 감독 선임 5년 내내 실패…강단없는 협회 리더십

협회가 벌인 똑같은 실책은 대회를 1년 앞두고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준비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는 예선을 치르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본선을 준비한다. 

월드컵 현장에서 만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책임을 진다는 게 꼭 그만두는 게 아니다. 책임을 지고 그 일을 잘 해야 하는데 뭐만 잘못되면 다 나가고 새로 시작한다. 그러니 쌓이는 게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로 계속 갔어야 했을까? 그것도 아니다. 이영표 위원은 “아니다. 더 빨리 경질해야 했다. 아니라는 판단이 나오면 빨리 실행해야 했다. 지난 몇 년간 대표팀은 감독 선임과 경질 과정에서 계속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협회의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는 홍명보라는 유능한 지도자를 잃었다. 사실 홍명보 전무는 지금 러시아월드컵에서 감독을 하고 있어야 할 사람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조광래 감독 경질부터 잘못됐다. 좋은 지도자를 잃었다”고 말했다.

조광래 경질, 최강희 시한부 감독 체제, 홍명보 감독, 슈틸리케 감독, 신태용 감독.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은 5명의 감독을 거치면서 연속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경질 타이밍이 좋지 않았고, 선임 시점도 늦었으며, 시간이 부족한 와중에 성인 대표팀 지휘가 처음인 젊은 지도자를 앉혔다. 대회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월드컵 본선에 발생할 돌발변수에 대처 가능한 경험있는 감독, 검증된 감독을 선임해야 했다. 

▲ 선수들의 투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감독 선임 이후 코칭스태프 구성도 얼기설기였다. 신 감독의 월드컵 경험이 없는 부분을 과거 선수로 성공적인 월드컵을 치른 김남일, 차두리 코치 선임으로 채우고, 스페인 대표팀에서 성공시대를 함께 한 토니 그란데, 하비 미냐노, 파코 가르시아 코치를 전술, 체력, 분석 파트로 데려왔다.

하지만, 이들이 합류한 것은 지난 해 11월이고, 중간중간 스페인을 오가며 대회를 준비해 서로 하나로 뭉치고, 소통하기 어려웠다. 언어적 문제도 있다. 한국 코치는 지도자 경험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신 감독과 유기성이 크지 않다. 여기에 스페인 코치들까지 있으니 하나로 단단히 뭉쳐 자동적으로 분업과 협업이 이뤄져야 할 코칭스태프도 본선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었다.

지금 한국 대표팀은 투혼도 있고, 선수의 개별 기량도 전보다 좋아졌지만 유기성이 부족하다. 전력상 약체에 속하는 한국이 축구 강국 보다도 하나로 뭉쳐져 있지 못하니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대표팀이 이렇게 어설픈 상태로 본선에 나가도록 만든 가장 큰 책임은 결정권과 운영권을 가진 축구협회에 있다. 

▲ 손흥민의 개인 능력이 유일한 희망


◆ 보호 받지 못하는 선수들, 누가 대표팀을 방패 없이 콜로세움에 내몰았나

최강희 감독은 2013년 여름 시한부 대표팀 감독을 떠나면서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 여름 홍명보 감독이 물러나며 외국인 감독을 데려왔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자 이력은 초라했고, 월드컵 경험도 없었다. 2015년 겨울 슈틸리케 감독 경질 논의가 나왔고, 2016년 3월 중국전 패배 이후 이용수 전 기술위원장이 경질을 건의했으나 일축됐다. 6월 카타르 원정 패배가 있고서야 늦은 경질이 이뤄졌다.

대표팀 운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성은 정몽규 회장 임기 내내 철저하게 오판이자 실패였다. 그동안 기술위원장이 바뀌고, 협회 요직 인사들이 바뀌는 와중에도 리더십의 기본 성질은 바뀌지 않았다. 결정권을 가진 이가 바뀌지 않으면 실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지금 대표팀은 불안이 예견된 감독을 앉히고, 불안한 선수들을 관리하지 못한 채 이들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도록 방관하고 있다. 마치 죽지 않으면 경기가 끝나지 않는 콜로세움에, 갑옷도 방패도 없이 칼 한 자루 쥐어주고 떠밀어둔 모습이다. 선수들은 비난의 화살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몸부림은 승리를 위한 계획된 자신감과 정신력으로 이어지지 못해 무리한 플레이, 판단 착오 등 실수를 유발해 패배로 이어졌다.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준의 선수가 큰 무대에서 초보적인 실수를 범하는 이유는 정신력 문제가 크다. 체력이 떨어져 집중력이 흔들려도 발생할 수 있다. 지금 대표팀은 두 가지 문제를 다 겪고 있다. 체력 관리 프로그램도 혼선이 있었고, “어차피 3전 전패”라는 시선 속에 1승과 16강을 요구받고, 지고나면 “그러면 그렇지”라는 냉소적 반응을 받는 상황의 중압감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대표팀이 독일을 두 골 차로 꺾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아주면서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로또 당첨을 꿈꾸며 줄을 서고 있는 이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대표팀은 지금 예측이 불가능한 변수 그 자체다. 16강으로 가기 위한 확고한 플랜이 있어야 상수가 될 수 있다. 대표팀이 16강에 오르더라도, 축구협회는 쇄신해야 한다. 이영표와 박지성 모두 “지금 상태라면 4년 후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표팀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도 전력을 다해 나설 3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또 한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안팎의 공격을 견디며 경기해야 한다. 이런 일이 다시 벌어져선 안된다.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처절하고 슬퍼서 눈물이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몰라서 못한 게 아니라 아는 데 이렇게 되니 더 아프다. 마지막 경기에서 선수들의 투혼이 조금이나마 보상받기를 바란다.

▲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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