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독일과 경기에 나서게 되는 한국 축구 대표 팀. 팬들은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기를 바란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최대 목표, 1라운드 통과. 최소 목표, 승점 획득. 27일 밤(이하 한국 시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 리그 F조 독일과 경기에 나서는 한국 축구 대표 선수들에게 떨어진 과제다. 그러나 글쓴이는 선수들에게 이 목표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문제가 무엇인지,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가는 대한축구협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개혁 방안은 무엇인지 등과 관련한 비판과 비난, 제언 등이 선수들을 향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선수들은 갖고 있는 기량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발휘하고 28일 새벽 기분 좋게 경기장을 빠져나오면 된다.

선수들 못지않은 마음으로 결전을 앞둔 축구 팬들과 24년 전, 그때 축구 얘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나눠 보려고 한다.

글쓴이는 1994년 7월 어느 날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을 취재하기 위해 김포국제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해 올스타 게임이 열린 피츠버그로는 가는 직항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하루 숙박하게 됐는데 저녁 무렵 목도 축일 겸 한국인이 많이 묵는 맨해튼 32번가 스탠퍼드호텔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안은 태극기를 비롯해 월드컵 출전 국가 국기들로 온통 도배돼 있었다. 그런데 유독 그리스 국기가 크게 식당 한가운데에 걸려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리스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라고 알아챘다. 그때 식당 주인인 듯한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이가 말을 건넨다. “여행 왔냐.” “아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 취재하러 피츠버그로 가는 길이다.” “그럼 너, 스포츠 기자냐” ‘그런데, 왜.” “너 이번에 그리스가 월드컵에 출전한 거 알고 있냐.”

그때 또 직감적으로 ’이 양반과 말을 섞으면 오늘 저녁 내내 축구 얘기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그리스계 미국인라고 자신을 소개한 식당 주인은 그리스가 이번에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축구를 그렇게 못하는 나라가 아니다”라는 주장부터 시작해 공짜로 준 맥주까지 마시며 그가 하는 얘기를 밤늦도록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식당 주인장, 아직 살아 있고 글쓴이가 뉴욕에 갈 일이 있으면 이번에는 꽤 업그레이드된 축구 얘기가 오갈 터이다. 글쓴이가 먼저 “뒤늦게나마 그리스가 유로 2004 우승한 거 축하한다”고 말할 것이고 주인장은 “(우리나라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때 또다시 월드컵에 출전했고,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1승1무1패(아이보리코스트 2-0 일본 0-0 콜롬비아 0-3)를 거둬 16강에 올랐다‘고 자랑할 게 분명하다.

그러면 글쓴이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정말 미안하다. 우리가 2-0으로 이겨 그리스 선수들이 일찌감치 귀국 짐을 싸야 했으니까“라고 할 것이다. 생면부지인 외국인들이 곧바로 소통할 수 있는 게 바로 축구의 힘이다. 여러 종목이 있지만 '축구'만큼 세계적인 언어는 없다. 지금은 월드컵 기간이어서 전 세계 축구 팬의 눈과 귀가 러시아에 쏠려 있지만 평상시에는 1년 365년 24시간 지구촌 어디에서인가는 축구 경기가 펼쳐진다.

올스타전 취재를 마치고 귀국길에는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했는데 숙소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가수 이장희 씨가 운영하던 ‘라디오 코리아’로 불가리아와 스웨덴의 3위 결정전(스웨덴 4-0 승리) 중계방송을 듣게 됐다. 그런데 목소리가 귀에 많이 익었다. 중·장년 스포츠 팬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스포츠 아나운서(요즘은 캐스터라고 하는) 양대 산맥인 임택근-이광재 가운데 이광재 선생(2012년 작고)이었다. 그때 62세였는데 베테랑의 중계 솜씨는 여전했다. 중계방송 사이 페인트 광고 문구가 “다양한 컬러를 초이스할 수 있습니다‘라는 영문·한글 혼용체여서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으로 출장을 가기 전에 미국 월드컵 한국 경기는 모두 끝난 상태였다. 페르난도 이에로와 루이스 엔리케, 훌리오 살리나스 등이 포진한 스페인과 경기에서는 서정원의 경기 종료 직전 멋진 골로 2-2로 비겼고, 요즘도 축구 팬들 사이에서 무승부가 아쉬운 경기 가운데 하나로 회자되는 볼리비아전에서 0-0으로 승점 1을 따는 데 그쳤다.

그리고 갖게 된 독일전이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이미 월드컵 3차례 정상(모두 서독 시절)에 오른 독일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상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맹위를 떨친 에르빈 롬멜 장군이 이끈 무적의 탱크 부대에서 따온 ‘전차 군단’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도 갖고 있었다.

월드컵 3회 출전에 승리가 없는 한국은 전반 내내 독일에 밀리며 순식간에 0-3으로 뒤졌다. 그러나 댈러스의 초여름 무더위에 잔뜩 달궈진 코튼 필드의 지표면 온도가 섭씨 40도에 육박하면서 위르겐 코흘러(34) 등 평균 나이 32세의 독일 수비진은 점점 스피드가 떨어졌고 후반 종반에는 거의 걷다시피 했다.

한국은 볼리비아전에서 그렇게 터지지 않던 황선홍이, 찍어 차는 슛으로 독일 골키퍼 보도 일그너를 무너뜨리면서 경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홍명보는 벼락 같은 장거리에 가까운 중거리 슛으로 일그너의 왼쪽 구석 독일 골망을 흔들어 2-3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경기를 뒤집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 많은 축구 팬들이 했던 말, “(추가 시간 외에) 5분만 더 (경기를) 했으면…” “전차 군단? 녹슨 전차군단이네.”

그날 코튼 필드에서 독일과 겨뤄 물러서지 않는,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친 선수들은 골키퍼 최인영 수비수 김판근 박정배 최영일 홍명보 미드필더 이영진 신홍기 공격수 김주성 조진호 황선홍 고정운이고 교체 멤버는 이운재(GK) 정종선(DF) 서정원(FW)이다.

축구는 이런 멤버를 추억할 수 있는 즐거움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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