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단식 챔피언 유남규(오른쪽)와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 현정화(왼쪽)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북한 여자 선수들 같은 경우는 실력이 한국 선수들과 비슷하면서도 기본기와 움직임이 더 좋다. 남자 경우에도 한국 선수들이, 기술 면에서 위축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 국제 경험이 없어 그렇지 북한 선수들이 기술이나 경쟁력에서는 한 수 위인 것 같다."

대전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탁구연맹(ITTF) 2018 신한금융 코리아오픈 이틀째 경기를 모두 챙겨 본 '한국 탁구 전설'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의 말이다. 그는 듣는 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북한 선수들 실력을 높게 평가했다.

스포티비뉴스 조형애 기자가 18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21세 이하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북한의 함유성이 삼베 고헤이(일본)를 세트스코어 3-1(11-9 10-12 11-6 11-7)로 꺾고 우승한 뒤 북한 탁구 관련 소식을 취재해 쓴 기사의 첫머리다.

30년 전인 1988년, 약관의 나이에 올림픽 남자 단식 초대 챔피언에 오른 ‘탁구 고수’ 유남규 감독의 분석이니 믿음이 간다. 한편으로는 탁구를 잠깐 취재한 인연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올림픽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탁구를 걱정하면서.

야구 기자인 글쓴이가 왼손잡이 펜홀드의 날렵한 유남규 탁구를 볼 수 있었던 건 우연이기도 했고 행운이기도 했다.

1986년 9월 어느 날, 삼성동 한전 별관에 설치된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메인 프레스 센터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 서울대 체육관인데요. 경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한국이 중국을 잡을 것 같습니다. 취재 지원 부탁합니다.”

그때 탁구 담당은 스포츠 기자 3년째인 거의 초년병이었다. 당황스러울 만했다. “네가 또 수고해야겠다.” 데스크 눈은 곧바로 ‘땜빵’ 전문인 글쓴이를 향하고 있었다. 삼성동에서 관악산 자락 서울대까지 단숨에 달려갔더니 서울대 체육관 안은 문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각각 3명의 선수가 나서 돌아 가면서 경기를 치러 9단식으로 승패를 가르는 당시 단체전 방식에서 한국은 중국과 결승전에서 게임 스코어 4-4로 맞선 9번 단식에서 안재형이 후이준을 세트스코어 2-1로 꺾어 4시간 30분이 넘는 격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안재형은 5번 단식에서 당시 세계선수권자인 장자량을 세트스코어 2-0으로 잡는 등 혼자 3승을 올려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이때 단체전 멤버 가운데에는 18살의 고교생[부산 광성공고 3학년] 유남규가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남자 단식에서 벌어졌다. ITTF(국제탁구연맹) 랭킹 50위인, 2년 전인 1984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국제 무대에 데뷔한 무명에 가까운 유남규가 8강전에서 랭킹 1위 장자량을 세트스코어 3-2로 물리친 데 이어 결승에 오른 것이다. 세트스코어 2-2, 5세트 10-18에서 이룬 기적 같은 승리였다.

남자 단식 결승이 벌어진 서울대체육관은 또다시 뜨겁게 달아올랐고 글쓴이는 취재용 지프를 타고 또 서울대 캠퍼스로 달려가야 했다. 허겁지겁 취재석이 앉았을 때 유남규와 후이준(중국,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금메달)의 결승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싱거운 경기였다. 유남규의 세트스코어 3-0 완승이었다.

경기 기사는 후배가 쓰고 인터뷰는 글쓴이가 맡기로 업무 분담을 하고 기자석을 뜨려고 하는데 어디에선가 울음소리가 났다.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여자 기자가 눈물을 흘리며 기사를 쓰고 있었다. 후배에 따르면 이 기자는 탁구 취재를 꽤 했고 종목에 대한 애정도 상당하다고 했다. 국제 대회에서 특별한 사연이 있는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 코끝이 찡한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 취재기자가 우는 걸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렇게 탄생한 아시아의 ‘소년 탁구왕’은 2년 뒤인 1988년 서울 대회에서 남자 단식 올림픽 초대 챔피언이 됐고 1989년 예테보리(스웨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한 살 아래인 동향(부산 계성여상 졸업)의 현정화와 짝을 이뤄 혼합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불과 4년 만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등 운동선수로서 꿈꾸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유남규를 다시 만난 건 1990년 1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였다. 한국과 북한, 중국이 정예 멤버를 내보내 치열한 경기가 세부 종목별로 펼쳐졌다.

대회가 중반에 접어든 어느 날 경기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선수들과 기자들이 삼삼오오 잡담을 하고 있는데 칸막이가 쳐진 호텔 로비 한쪽 구석에서 한 선수가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에 슬며시 다가갔더니 유남규였다.

유남규는 약간 놀란 얼굴이었고 글쓴이도 다소 의외의 상황에 멈칫했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따로 운동을 할 만큼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꼭 시간 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간단한 운동을 합니다. 숙소 방에서도 합니다.”

글쓴이는 그날, 이제는 지도자가 된 ‘유남규 선수’의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 스매싱을 한 왼쪽 팔의 ‘알통’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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