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5월 8일 슈퍼리그 개막식이 열린,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는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한국 축구 100년사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일본 프로 축구 J리그가 최근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를 잇따라 영입하면서 흥행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스페인 국가 대표 출신으로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이 있는 키 큰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는 지난 15일 J리그 사간도스로 이적했다. 이에 앞서 역시 스페인 국가 대표 출신인 키 작은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지난 5월 빗셀 고베 유니폼을 입었다. 

두 선수는 러시아 월드컵 이후 재개된 2018년 시즌 J1 리그에서 관중 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22일 토레스가 J 리그 데뷔전을 치른 베갈타 센다이와 홈경기에는 1만7천여 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사간도스 홈구장 수용 규모는 2만4,495명이다. 이 경기에서 0-1로 지기도 했고 24일 현재 J1 18개 구단 가운데 17위인 성적을 고려하면 꽤 많은 홈 팬이 경기장을 찾은 셈이다. 

이니에스타가 뛰는 빗셀 고베는 7,000명 수준이던 올 시즌 홈경기 관중이 2만 6,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빗셀 고베 홈구장 수용 규모는 3만132명이다. 빗셀 고베는 24일 현재 리그 6위에 올라 있다. 

이니에스타 영입의 경제 파급 효과가 1,000억 원에 이른다는 전망도 있고 빗셀 고베 홈경기 예매는 10배가 늘었으며 이니에스타 유니폼은 생산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팔리고 있다고 한다. 

두 선수는 유명 선수이기도 하지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실적이 있는 선수다. 특유의 팬덤 성향이 있는 일본인들 구미에 딱 맞는 조건인 것이다. 

이니에스타와 토레스의 추정 연봉은 325억 원과 85억 원인데 이는 소속 구단 전체 연봉 규모를 넘어선다. 이런 투자는 2016년 J리그가 영국 스포츠 미디어 기업 퍼폼과 10년 2,000억 엔 규모의 대형 중계권 계약을 맺은 것과 함께 모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중계권 계약은 이전 규모에 7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시쳇말로 돈 놓고 돈 먹는 구조가 이뤄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만 한 J리그인데 이럴 때 등장하는 게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어느 리그가 가장 많이 우승했냐는 것이다. K리그는 11차례(포항 3차례 성남 2차례 전북 2차례 수원 삼성 2차례 부산 아이파크 1차례 울산 현대 1차례)로 우승 횟수가 가장 많다. 

그 뒤를 일본(6차례) 사우디아라비아(4차례) 이란 중국 이스라엘(이상 3차례) 리그가 잇고 있다. 마카비 텔 아비브가 2차례, 하포엘 텔 아비브가 1차례 우승한 이스라엘 리그는 AFC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아시안 컵 챔피언십 시절 기록한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쿠웨이트 등 서아시아 세력에 의해 아시아 전체 스포츠 분야 기구인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서 축출됐듯이 축구도 AFC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아시아 축구계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이스라엘은 UEFA(유럽축구연맹) EOC(유럽올림픽위원회)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리그의 수준을 재는 척도 가운데 물론 경기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그가 얼마나 알차게 운용되고 있는지 여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K리그는 출발부터 엉성했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야구와 누가 먼저 프로화를 하느냐를 두고 경쟁하다가 야구보다 1년 늦은 1983년, 아마추어 팀인 국민은행을 불러들여 어설프게 5개 구단으로 ‘슈퍼 리그’를 출범시킨 데에서부터 K리그는 스텝이 꼬였다. 

1983년 5월 8일 슈퍼리그 개막식이 열린,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는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이후 9월 25일 마산 구장에서 시즌 마지막 경기가 벌어지기까지 40경기에 들어온 관중은 41만8,475명으로 집계됐다. 경기당 2만0924명으로 이는 1993년 J리그 첫 시즌 경기당 평균 관중 1만7,976명보다 훨씬 많고 관중 동원 1위 구단인 가오사키 베르디 구단의 2만5,235명에 버금간다. 

그런데 프로 초창기 이후 상당 기간 K리그 관중에는 거품이 있었다. 유료 관중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는 게 일상적이었다. 이는 프로 야구와 크게 비교된다. 

그리고 동대문 운동장과 부산 구덕 운동장 등 일부 구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지만 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전국 어디에도, ‘당연히’ 축구 전용 경기장이 없었다. 이름하여 모두 ‘종합운동장’들이었다. 육상경기도 하고 각종 행사도 여는. 

출범 경쟁을 벌이던 야구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첫 시즌 안에 전국 모든 경기장에 프로 스포츠에 꼭 필요한 야간 경기가 가능한 조명 시설을 갖추겠다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1982년 시즌 도중에 이를 이행했다.
▲ 페르난도 토레스 ⓒ사간 도스
▲ 빗셀 고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일본은 1992년 시즌 세미프로 리그를 펼치는 등 착실한 준비 과정을 거쳐 1993년 10개 구단으로 J리그를 시작했다. 첫해 베스트 11에는 루이스 페레이라와 카를로스 산토스(이상 브라질) 라몬 디아스(아르헨티나) 등 3명의 외국인 선수가 포함됐다. 

이들 이후 일본 열도 여러 도시의 그라운드를 누빈 외국인 선수로는 ‘하얀 펠레’ 지쿠를 비롯해 베베토 헐크 조르지뉴(이상 브라질) 시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미하엘 론드러프(덴마크) 개리 리네커(잉글랜드)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미하엘 루메니게 루카스 포돌스키(이상 독일) 아브람 파파도폴로스(그리스) 디에고 포를란(우루과이) 등 축구 팬들 귀에 익은 이름들이 꽤 많다. 홍명보 안정환 박지성 등 한국 선수와 정대세 안영학 등 북한 선수도 있다. 

이 명단에 토레스와 이니에스타가 오른 것이다. 

일본 축구는 리그 외에 FA 컵인 일왕배대회도 알차게 운용한다. 박지성이 출전한 2003년 1월 1일 일왕배대회 결승전 장면을 소개한다.

1958년 제3회 여름철 아시아경기대회와 1964년 제18회 여름철 올림픽 주 경기장으로 일본 스포츠의 심장으로 불리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제82회 일왕배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교토 퍼플상가의 박지성은 0-1로 뒤지던 후반 7분 가시마 앤틀러스 진영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스즈키가 왼발로 감아 올린 프리킥을 골 정면에서 머리로 받아 넣어 극적인 동점을 이뤘다. 박지성의 동점 골이 터지기 전까지 교토는 야나기사와 아키타 등 일본 대표 출신들이 포진한 가시마에 다소 밀리는 경기를 벌였다. 

박지성의 골에 힘을 얻은 교토는 후반 36분 구로베의 결승 골로 가시마에 2-1로 역전승해 대회 첫 우승의 기쁨과 함께 1억 엔의 두둑한 상금을 받았다. 박지성의 동점 골이 터지는 순간 가시마 골대 뒤쪽 스탠드에 자리 잡은 교토 응원단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고 NHK 캐스터는 박지성의 골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안정환의 골을 떠올리게 한다고 소리쳤다.

이 대회에는 도·부·현(都·府·縣)대표, 고교 대표, 대학 대표, JFL 대표, J2(12) J1(16) 등 모두 80개 팀이 출전해 2002년 12월 한 달 동안 녹다운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 결승 진출 팀을 가렸다. 이 대회에서는 고교 팀인 구니미고등학교가 2라운드에서 대학 강호 고쿠시칸대학교를 2-1로 제치고 3라운드(32강)에 올라 화제가 됐다. 

2002년 시즌 J1 리그 전·후기 통합 우승 팀이자 J1 리그 통산 4회 우승에 빛나는 일본 프로 축구 최강 클럽 주빌로 이와타는 3라운드에서 구니미고등학교를 2-0으로 꺾었으나 준준결승에서 최용수가 속한 J1 리그 전·후기 종합 7위 팀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에 0-1로 져 탈락했다. 

흥미 있는 경기가 프로 축구 비 시즌인 12월에 집중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웃 일본에 견주기 힘든 K리그 경기장 분위기를 보며 떠오른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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