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널 미드필더 토레이라를 따돌리는 기성용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36년 만에 처음으로 우루과이를 이겼다. 세상에 완벽한 경기란 없다니 아쉬운 점도 있기 마련. 칠레전보다 공격이 답답했던 측면을 기성용에게 묻자 “이게 벌써 눈이 높아지신거죠” 라며 웃었다. 우루과이전은 비록 벤탄쿠르의 슈팅이 골대를 때리는 위기를 넘기기도 했지만, 한국의 실점도 김영권이 잔디 문제로 인해 미끄러지며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경기 내내 주도권을 쥐고, 끝내는 승리라는 결과를 얻은 충분히 흡족하고 합당한 승리였다. 

어떤 결과도 내용을 기반으로 냉정한 평가를 내려온 기성용은 이날 근래 들어 개인적으로고 매우 좋은 경기를 했다. 몸은 가벼웠고, 패스는 정확했다. 체력에도 무리가 없었다. 장점인 패스는 지체없이 뻗어나갔고, 한국의 후방 빌드업 완성도는 그 뿐 아니라 정우영, 김영권, 장현수 모두 스리백과 포백 대형을 오가며 최고 수준을 발휘했다. 우루과이가 워낙 수비적으로 세계적인 팀이라 마무리 과정이 힘겨웠을 뿐이다. 한국은 좋은 경기를 했고, 이겼다. 지난 36년 간 1무 6패를 기록하며 절대열세이던 팀을 이겼다.

9월 첫 소집 당시 ‘새 감독 부임 효과’의 허니문 기간이라는 점을 지나치지 않았던 기성용은 대표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많은 팬들이 보셨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해 만족스러운 결과다.”

물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에서 우루과이를 만나 져봤고, 4년 전 한국서 치른 A매치에서 져본 기성용의 입장에서 이 승리의 가치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스카르 타바레스 우루과이 감독도 2010년 월드컵 당시 경기와 비교를 묻자 “월드컵에서 경기와 친선 경기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기성용도 “사실 친선경기랑 월드컵은 비교하기 그렇다. 우루과이를 한번도 못 이겼기 때문에 오늘 경기는 친선경기지만 뜻깊었다. 2010년에도 좋은 경기했고 이길 수 있었지만 아쉽게 이기지 못했다. 오늘 이기면서 팬들에게 위로가 된 것 같다”는 정도로 의미를 말했다.

기성용이 우루과이전 승리에 만족감을 표한 이유는 ‘우루과이를’ 이겼다는 결과의 상징성보다 파울루 벤투 감독 부임 후 대표팀의 전술적 체계, 조직적 체계가 갖춰지고 선수단이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성용은 볼 소유와 빌드업을 중시하는 선수이고, 추구해온 선수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유소년 단계부터 성인 지도자 단계까지 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지 못해왔다. 도전도 노력도 해봤지만 시행착오 속에 결과를 내지 못했다. 벤투호는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했다.

“수비에서 안정적으로 빌드업 하는 게 좋아졌다. 쓸 데 없이 공을 걷어 내거나 체력적 소모가 많은 경기를 하지 않는다. 우루과이를 상대로 이 정도 점유율을 갖는 것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좋아진 것은 후방 빌드업. 빌드업이 강점이라는 김영권, 장현수, 기성용, 정우영 조합이 제대로 발휘됐다. 수비적 불안, 상대 압박에 취약하던 한국 축구의 후방 빌드업이 겨우 두 번째 소집 만에 깔끔해졌다. 벤투 감독의 훈련 방법론이 그만큼 좋았다.

▲ 믹스트존에서 만난 기성용


-뒤에서 압박 풀어나오는 과정 깔끔해졌다. 훈련의 결과인가?
“훈련을 조직적으로 많이 했다. 감독님께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빌드업을 하면서, 실수가 나올 수도 있지만 자신감을 갖고 그럴때일수록 더 대담하게 할 수 있다고 요구했다. 선수들의 자신감 많이 붙은 것 같다.”

-장현수가 안정적이었다. 오늘 경기는 미드필더가 두 센터백 사이가 아닌 측면으로 내려가던데?
“빌드업이란 것은 수비수만 하는 게 아니라 풀백, 미드필더가 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상대 공격진 숫자보다 우리 숫자가 일단 더 많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가 투톱으로 나왔을때 밑에 세 명이 내려가서 빌드업을 하고 현수가 가운데로 가면 미드필더가 사이드로 내려가서 받을 수 있다. 그전에 없던 부분이 감독님이 오고 나서 많이 발전된 것 같다.”

기성용은 아예 “그 전에 없던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아직 세계 축구에 비하면 갈 길이 멀지만 감독님이 오시고 좀더 체계적으로 됐다. 예전엔 그런 게 없었다. 뒤에서부터 자신감있게 하는 게 없었다. 현대 축구가 그렇게 흐름이 바뀌고 있다. 언제까지 체력적인 것만 갖고 세계 무대 설 수 없다 기술적으로 이제 많이 발전해야 하고 지금도 많이 좋아졌다.”

후방 빌드업은 좋았지만 우루과의 견고한 밀집 수비를 뚫기에 공격 마무리 과정이 아쉽지 않았냐는 질문에 기성용은 이제 바라는 눈높이 높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벌써 눈이 높아지신 거죠. 한국이 우루과이한테 경기를 이정도 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저도 대표팀을 10년 했지만 이렇게, 우루과이와 아무리 홈에서 한다고 해도 이렇게 경기한다는 건, 분명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벤투 감독은 이렇게 빠른 기간 안에 한국 축구의 오랜 숙제를 풀 수 있었을까? 기성용은 훈련 디테일과 더불어 선수들이 얻게 된 자신감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아시안컵 본 경기까지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디테일도 있고 자신감도 있고. 일단은,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아시안컵에서 일단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이런 축구를 유지한다면, 아무래도 틀이 좀 잡히지 않을까…”

대표팀에서 한국 축구의 한계, 자신의 한계를 목도하며 아시안컵을 은퇴 시점으로 말하고 있는 기성용. 그는 주장 완장을 내려놓고, 뉴캐슬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며, 벤투 감독이 부임한 지금 근래 어느 때보다 경쾌하게 A매치를 치렀다. 우루과이전 기성용은 근 5년의 경기 중 가장 생기가 있었다. 오히려 최근 소속팀에서 경기를 덜 뛴 것이 그의 대표팀 경기력을 높여준 것은 아닐까? 대표팀 은퇴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닐까? 직설적으로 물었고, 솔직하게 답했다.

▲ 벤투 감독과 한국 축구는 아직 기성용이 필요하다. ⓒ곽혜미 기자


-몸이 가볍던데, 주장 완장을 내려놔서 그런가? 아니면 소속팀에서 경기를 못 뛰어서 체력이…
“경기를 안뛰어서죠. (웃음) 일단 제가 프리시즌을 제대로 못했다. 이적을 했고, 새로운 팀에 가서 이것저것 일도 바쁘고, 경험하는 시간도 있어서. 한달 정도 가서 경기를 안뛰었는데, 오히려 한 달간 근력 운동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저한텐 훨씬 더 좋았던 시간이었다. 팬분들은 우려할 수 있지만 그쪽에서 지금 훈련량도 되게 많고 경기를 안 뛴 선수들은 좀 더 운동 많이 시켜서 체력적으로는 경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몸도 좋고 분위기 좋은데 카타르 월드컵까지 가겠다는 생각이 혹시 생겼을까?
“그때도 말씀드린대로, 제 몸 상태도 마찬가지고. 한국축구에 어떻게 보면 카타르까지 가려면 밑에 있는 선수들이 많이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음을 놓고 있다. 일단 아시안컵까지 감독님이 원하신다면 최선을 다한다고 인터뷰했기 때문에 내 목표는 아시안컵 우승이다. 나아가 한국축구가 이제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경기력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기성용은 아시안컵 우승으로 대표팀 경력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이 미션을 달성하면 벤투 감독은 기성용을 주저없이 놓아줄까? 한국 축구와 벤투, 기성용의 줄다리기가 팬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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