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9년 청년학관 학생들에게 맨손체조를 가르치고 있는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9년 역사적인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서울)를 앞두고 익산시를 비롯한 전라북도 일원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전이 지난 18일 막을 내렸다. 1920년 7월 창립한 조선체육회(오늘날 대한체육회)는 그해 가을 전국체전의 기산점이 되는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해 100여년 뒤 후손들이 프로 야구와 축구 월드컵에 열광하고 조기 축구와 직장 야구, 3-3 농구, 주말 골프를 즐기는 스포츠 환경의 든든한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 스포츠 ‘선사 시대’에 선각자들은 이 땅에 스포츠를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활동을 했을까. <편집자 주>

​1885년 미국인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중등 교육기관인 사립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기독교 정신과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배재학당은 1887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르네상스식 벽돌 교사를 새로 짓고 교원, 학과목 수를 늘리고 수업 연한은 보통과 4년, 본과 5년으로 각각 정했다.

교과 과목은 한문과 영어, 만국지지(세계지리), 사민필지(선비와 백성이 꼭 알아 둬야 할 상식), 위생, 창가, 도화, 체조 등이었다. 배재학당은 1909년 배재고등학당으로 그리고 1916년 5년제 배재고등보통학교로 인가 받았고 1937년 6년제 배재중학교로 됐다가 1951년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로 분리돼 오늘에 이른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신교육이 본격화돼 1895년 4월 학교 설치령에 의해 최초의 공립학교인 한성사범학교 설립이 공포됐다. 한성사범학교 교칙에는 ‘신체의 건강은 성업의 기본’이라는 구절이 있으며 사범학교 전 과정에 체조를 과목으로 두었다.

그해 5월 외국어학교의 설립이 공포됐다. 6개 분교로 이뤄진 외국어학교는 근대 한국 체육사에서 체육을 가장 강조한 학교로 꼽힌다. 외국어학교에서는 병식체조(兵式體操) 등을 가르쳤고 외국인 교사들이 여러 가지 근대 스포츠를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보급했다.

외국어학교에서는 체조가 임의 과목이었으나 외국어학교의 분교인 일본어학교나 영어학교 등에서는 체조를 과외 활동으로 필수 과목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겼다.

1906년 발표된 외국어 학교령에 의해 전 학년에 주당 3시간씩 체조 과목을 배당했으며 이 시기에 설립된 무관학교와 상공학교, 의학교 등도 사범학교, 외국어학교 등과 함께 체육을 교과 과목으로 채택했다.

1895년 7월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관립과 공립, 사립 소학교들이 잇따라 설립됐다. 소학교령은 ‘아동의 신체 발달을 도모하고 국민 교육의 기초와 그 생활상에 필요한 보통지식 및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 소학 교육의 목적’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학부(교육부)는 1895년 서울 시내 수하동과 정동, 미동 등 여러 곳에 소학교를 설립하고 교동에는 고등소학교를 둬 소학교 졸업생들을 받아들여 교육하도록 했다.

소학교령에 ‘아동의 신체 발달을 도모하고’라는 교육 목적이 들어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 초등교육에서 처음으로 체육의 중요성이 꼽힌 것으로 매우 주목된다. 서당에서 해 오던 지난날의 교육은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숭문 교육으로 체육은 무시돼 왔기 때문이다.

신교육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체육이 학교 교육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당시 소학교 교칙에는 ‘처음에는 알맞은 놀이를 시키고 차츰 보통 체조를 가르치다가 간단하고 쉬운 병식체조의 일부를 가르치도록 한다’고 돼 있다. 당시 각급 학교의 체육 교과 과목은 체조였지만 1945년 광복 이후에도 각급 학교의 체육 시간은 체조로 불렸다. 체조 시간에 달리기도 하고 구기 종목도 했다.

19세기 말 이 땅에 체조가 도입될 때에는 온몸의 고른 발달보다는 군인과 같은 일정한 규범을 익히기 위한 훈련 수단으로 병식체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1896년 5월 영어학교 학생들이 영국 해군 관원의 지도 아래 고종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련(교련과 같은 뜻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군사훈련)을 펼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어학교 학생들은 군복 차림으로 교사들과 함께 러시아 공관에 머무르고 있던 고종 앞에서 조련을 보여 고종은 물론 자리를 같이했던 대신들 그리고 각국 외교관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고종은 조련을 지도한 영국 해군 관원에게 매우 귀중하게 여겼던 금시계 한 개를 상으로 내리고 교사인 W. F. 허치슨 등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고 당시 신문이 보도하고 있다.

1896년 6월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러시아 공관을 찾아가 고종 앞에서 체조와 운동을 펼쳐 보였고 고종은 이들에게 붓 2자루씩을 하사하고 더욱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고종은 체육에 힘쓰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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