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현수는 이제 태극마크를 달고 나라를 대표할 수 없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장현수 선수에 대해 영구히 국가대표 선발 자격을 박탈한다.”

1일 오후 4시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대회의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워낙 단호한 선언에 추가 질문도 많지 않았다. 추후 사면 가능성에 대해 “대표팀은 상비군 체제가 아니라 감독이 선발하는 형태다. 선발 자격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며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축구 선수 장현수(27, FC도쿄)는 이제 영원히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가 생긴 이래 국가 대표 선발 자격을 영구 박탈당한 선수는 없었다. 오후 2시께 시작한 축구협회 공정위원회(서창희 위원장)는 두 시간여 논의를 거쳐 국가대표 선발 자격 영구 박탈 및 벌금 3000만원의 징계를 확정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뒤 병역 특례를 받아 체육요원으로 편입된 장현수는 34개월 복무 기간 안에 544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을 해야 했다. 2015년 7월 병역법 개정으로 사회 봉사 544시간 규정이 신설된 이후 훈련소에 입소했기 때문에 당시 금메달을 딴 다른 선수들과 조건이 달랐다. 장현수는 봉사활동 서류에 시간을 부풀려 제출한 것이 적발됐다. 

장현수는 태극마크가 누구보다 익숙한 수비수였다. 2011년 FIFA U-20 월드컵,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호주 아시안컵,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등 전 연령별 국제 대회를 두루 경험했다. 

장현수는 꾸준히 지적받는 수비 실수에도 불구하고 빌드업 능력을 높이 인정받아 최근 부임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신임도 얻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잇단 실책으로 국민적 비판을 받았으나 지난 10월 A매치에선 준수한 경기를 펼쳐 만회하기도 했다.

당시 벤투 감독은 장현수에 대해 “평균 수준을 상당히 아주 아주 상회하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다. 이 선수는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보호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에 있어서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될, 도움을 줄 선수다”라고 이례적인 호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펼쳐 든 방패막이 소용없게 됐다. 경기장 안에서의 실수와 실책은, 개선과 발전으로 만회할 수 있다. 축구 선수는 경기장에서 말한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만, 그 잘못은 오직 축구적인 것이어야 만회할 수 있다.

▲ 연령별 국가 대표 선수로 10년 가까이 활동해온 장현수 ⓒ곽혜미 기자


◆ '국가 대표 영구 박탈' 장현수는 스포츠의 가치, 국가 대표의 명예를 잃었다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는 공정성과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승패는 냉정하지만, 승리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그런 가치를 대표해야 하는 스포츠 선수의 가치는 제아무리 좋은 실력을 가졌어도 행실의 문제가 있다면 지지받을 수 없다.

국가 대표라면 더더욱 그렇다. 장현수의 징계 사유는 국가대표 명예실추다. 태극마크를 단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 장현수는 단순한 한 명의 축구 선수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다. 국가가 축구선수인 그에게 준 병역 특례는, 축구로 이룬 업적이 국위를 선양했기 때문이다. 장현수의 행동은 국가를 대표하는 이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공직자와 국가대표에겐 고도의 윤리기준이 적용된다. 그들이 곧 우리 사회의 귀감이자 지침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훈련소를 다녀온 뒤 축구 선수로 34개월을 활동하는 것으로 병역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받은 가운데, 사회적 책임을 더하기 위해 신설된 544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 과정을 조작한 것은, 국가를 대표해서 축구를 한다는 것에 대한 엄중함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이다. 장현수는 평소 국가 대표 선수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표현해왔다. 그는 팔에 태극기 문양이 담긴 축구공을 문신으로 새기기도 했다. 

국가 대표로 뛰는 것의 자부심을 안다면, 국가를 대표해왔기에 얻은 병역 특례와 사회 봉사 활동에 성실히 임해야 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외 활동 선수로 34개월 내에 544시간의 봉사활동을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현역 복무를 하지 않는 대가로 이행해야 하는 봉사활동이라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설령 34개월 내 시간을 채우지 못해 복무 기간이 연장되더라도, 봉사 시간을 부풀리는 것은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다. 병역 의무는 신성하다. 그에게 주어진 사회 봉사 활동이 얼마나 신성한 일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가 봉사 활동 자체를 모두 조작한 것이 아니라 일부 시간을 부풀린 것이라도, 그가 애초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잘못이 된다. 

한 번의 안일한 판단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받기 어려운 실수도 있다. 그가 직업인인 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 스스로 이야기한대로 모범적인 생활을 통해 재평가받을 기회조차 박탈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 대표 선수로 나설 자격은 회복하기 어렵다. 

태클 실수, 패스 실수 혹은 인터뷰 과정의 실언 등 선수가 비판받을 수 있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실수는 과정의 경중을 떠나 혜택을 받은 이가 거짓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용서받기 어렵다. 

▲ 대한축구협회 제8차 공정위원회(구 징계위원회)/ 서창희 위원장 ⓒ대한축구협회


◆ 일벌백계, 읍참마속…가벼운 행동이 치명적 잘못이 되다

서창희 공정위원장은 “개인 입장에선 병역법상 한번 경고를 받은 정도인데 너무 과한 게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본인도 반성을 깊이 하고 있고, 자기로 인해 국민에 실망을 안겨준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징계도 달게 받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향후 이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의미로 다소 중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결정을 했다”고 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일벌백계했다. 이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새로 적용된 병역법을 진행하는 과정에 축구 선수의 경우 사례가 없었다.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경우 사회 봉사 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한 가이드라인 구축 작업을 함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2016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벌써 사회봉사 활동 방안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장현수는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병역 특례와 관련해 징계를 받은 선수가 됐다. 일각에서는 국가 대표 자격 박탈로 징계가 충분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선수 활동 자체에 대한 징계, 병역 특례 취소에 대한 요구도 따른다. 

서 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한축구협회 등록 선수가 아니다. 협회 차원에서 국내 관련 대회 출전에 대한 제제는 실질적 제제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 현재 가능한 개인 최고액을 부과했다”며 벌금으로 갈음했다고 설명했다. 병역과 관련해서는 “병무청이 행정 처리를 할 것이다. 문체부, 병무청 소관에 대해 우리가 기간 연장 등은 고려하지 않았다”며 결정 권한이 문체부와 병무청에 있는 일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번 일을 두고 ‘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벰.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 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함을 가리킴)’이라는 사자성어가 많이 쓰인다. 장현수는 여론의 꾸준한 경기력 논란에도 그를 지휘한 감독들이 지지하고 기회를 줬던 선수다. 앞서 언급한대로 무수히 많은 국가 대표 경험을 가진 한국 축구의 자산이다. 

장현수는 당장 눈 앞에 닥친 2019년 UAE 아시안컵 수비 라인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국가 대표 축구 경기의 가치는 승패에 앞서 공정성과 정정당당함, 그리고 페어플레이다. 프랑스축구협회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세계 수준의 공격수 카림 벤제마를 대표팀에 부르지 않듯, 국가 대표 선수는 돈과 실력을 떠나 명예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거짓된 승리는 적어도 스포츠에서는 의미가 없다. 스포츠는 사회에 건강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장현수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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