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장민재는 매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마운드에 서서 섀도 피칭을 한다. 가을야구에서 마법을 부린 그가 자신의 야구인생에서도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 대전, 이재국 기자
[스포티뷰뉴스=대전, 이재국 기자] "이걸 하루라도 안 하면 이제 불안합니다."

가을야구에서 "마법을 부려보겠다"고 큰소리를 친 뒤 실제로 한화의 유일한 가을야구 1승의 숨은 공신이 됐던 장민재(28). 그는 요즘 매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마운드에 오른다. 시즌도 끝났는데 왜 하루도 빠짐없이 홀로 마운드에 서는 것일까.

대전구장에서 만난 그는 오른손에 공 대신 수건을 감싸 쥔 채 투구 시늉을 했다. 섀도 피칭(shadow pitching).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며 투구폼을 가다듬는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쌀쌀한 날씨였지만, 어느새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사실 섀도피칭은 초등학교 야구 시작할 때부터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 기본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냥 시간 날 때 가끔씩 했는데, 송진우 코치님이 '매일 섀도 피칭을 해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코치님 말씀처럼 후반기부터 매일 해봤더니 확실히 효과를 느꼈습니다. 피칭 밸런스를 잡는 데 이만한 것이 없더라고요. 올 초에 밸런스가 좋지 않았는데 섀도 피칭을 하고 나서부터 밸런스가 잡혔어요. 이제 습관이 됐습니다. 하루라도 안 하면 불안합니다."

유난히 땀이 많은 그는 이마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섀도 피칭은 부상 위험성이 적고 감각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내년을 잘 준비해야한다"며 다시 한 번 섀도 피칭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 한화 장민재가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마운드에서 섀도 피칭에 집중하고 있다. ⓒ 대전, 이재국 기자
◆ 가을야구 데뷔전에서 '인생투' 펼친 한화 마당쇠

그는 여느 때처럼 올해도 불펜이 구멍 나면 불펜으로, 선발이 펑크 나면 선발로 나서면서 '마당쇠'처럼 한화 마운드에 힘을 보탰다. 그가 선발투수로 등판할 때면 으레 '바람잡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는 올 시즌 몇 번 오지 않은 선발 기회에서 보란 듯이 제몫을 해냈다. 기대 이상의 투구를 했다.

9월에 외국인투수 키버스 샘슨이 팔꿈치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는 등 선발 로테이션이 힘겹게 돌아갈 때 장민재는 'SK 킬러'답게 청주와 인천에서 빛나는 투구를 펼치며 한화의 가을야구행에 도움을 줬다. 특히 9월 20일 인천 SK전에서는 김광현과 선발 맞대결을 벌여 5⅔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흔들리고 있던 팀에 값진 1승을 선사했다.

장민재는 올 시즌 34경기(선발 3경기)에 나서 6승2패1홀드, 평균자책점 4.68을 기록했다. 2009년 한화 입단 후 개인 최다승 타이. 남들은 몰라도 나름대로는 성과가 있었던 시즌이었다.

그 자신감으 바탕으로 그는 가을야구에서 또 '깜짝투'를 펼쳤다. 3위로 준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냈던 한화가 안방 대전에서 4위 넥센에 1차전과 2차전을 모두 내준 상황. 1패만 더하면 탈락하는 벼랑 끝에서 장민재는 3차전 선발투수로 발표됐다. 넥센 선발투수는 에이스 제이크 브리검. 대부분 한화의 3연패를 점치는 비관적 상황 속에 장민재는 당시 "넥센 타자들이 힘이 있다. 공 하나하나 정확한 제구가 필요하다. 힘으로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스트라이크 같은 볼, 볼 같은 스트라이크를 던질 필요가 있다"면서 "마운드에서 마법을 부려봐야 할 것 같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텨냈다. 비록 스스로는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4⅓이닝 3안타 1실점으로 역투하며 팀의 4-3 승리에 디딤돌을 놓았다. 직구 구속은 대부분 130㎞대였지만, 혼이 실린 그의 공에 넥센 강타선도 맥을 추지 못했다. 스트라이크존의 보더라인(경계선)을 찌르는 '송곳 제구'로 1회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루킹삼진으로 잡아낸 장면은 압권이었다.

4회까지 무실점. 보는 이들이 '혼을 실어 던진다'는 느낌이 들 만큼 공 1개, 1개에 모든 힘과 정성을 쏟아 부었다. 체력이 방전돼 비록 5회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왔지만 모든 한화 팬들이 기립박수를 칠 만큼 그는 가을야구 데뷔전에서 '인생투'를 펼쳤다. 프로 10년차에 통산 16승(20패)에 머물고 있는 그저그런 투수가 전국 무대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렸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 9회초 결승타로 데일리 MVP에 오른 김태균마저 “MVP가 장민재라고 생각했는데 뺏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인상 깊은 투구였다.

▲ [스포티비뉴스=고척돔, 한희재 기자]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2018 KBO리그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22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1회말 한화 선발투수 장민재가 역투하고 있다.
◆ "내년엔 한국시리즈 마운드에도 한 번 서야죠"

이제 가을야구는 끝났다. 그러나 그 여운은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다. 장민재는 "한 게임도 못 이기면 정말 자존심이 상할 뻔했는데 3차전에서 그나마 승리를 해서 다행이었다"면서 "그날 마법을 부려보겠다고 했는데 60~70%는 부렸던 것 같다"며 웃었다.

“한화 팬들조차 내가 선발로 올라갈 때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았겠지만, 마운드에 있는 내내 모두들 응원해주셨어요. 솔직히 속으로 '저 타자 못 잡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 게임을 던지고 나서 더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야구에 대해 더 간절함을 느낀 경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그는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에도 매일 대전구장으로 출근한다. 부득이하게 야구장에 나오지 못하는 날에는 집에서라도 섀도 피칭을 하며 준플레이오프 3차전의 밸런스와 감각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제가 빠른 공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가 아니기 때문에 구종보다는 가지고 있는 공을 더 가다듬고 코너웍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포크볼이나 슬라이더, 커브 등을 많이 던지는데 서클체인지업이 조금 미흡합니다. 내년에 서클체인지업도 더 다듬어서 많이 던져보려고 해요. 가을야구를 하면서 더 느낀 건데, 타자들 노림수를 알고 대처한다든지 타이밍을 뺏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좀 더 다양성을 키우면 저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는 2009년 한화 입단 후 늘 이렇다 할 보직을 갖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호출되는 마운드. 그러다보니 '마당쇠'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마당쇠라고 해도 괜찮다"며 "마운드에 올라가기만 하면 보직에 상관없이 열심히 던지겠다"며 웃었다.

"한화 팬들에게 가을야구를 더 많이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올해는 입단 이후 가을야구를 처음 경험했다는 데 만족하겠습니다. 짧게 끝났지만 가을야구를 한 번 해보면서 선수단 전체가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년에 또 한 번 가을야구에 가도록 잘 준비해야죠. 내년엔 한국시리즈 마운드에도 한 번 서 봐야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의 순박한 웃음이 정겹다. 남들처럼 빠른 볼도 없었다. 그래서 빨리 가지도 못했다. 빛나지도 못했다. 지난 10년간 거친 곡선주로만을 달려온 장민재. 그에게도 ‘쨍하고 해 뜰 날’이 펼쳐질까. 이제 그 자신의 야구인생에도 마법이 부려지길 기대해본다.

▲ [스포티비뉴스=고척돔, 한희재 기자]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2018 KBO리그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22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5회말 1사 2루, 넥센 서건창에게 적시타를 허용한 한화 장민재가 교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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