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오는 11일과 15일 AFF 컵을 놓고 말레이시아와 맞붙는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박항서 감독이 불러일으킨 ‘베트남 열풍’이 엄청나다. 한때는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이 축구라는 끈으로 하나가 됐다. 1970년대에 탁구공으로 ‘죽(竹)의 장막’이 사라졌듯이.

6일 밤 하노이에서 열린 2018년 AFF(아세안축구연맹) 컵 준결승 2차전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관중석을 온통 빨갛게 물들인 홈 관중의 열렬한 응원과 비행기로 5시간 정도 거리인 한국에서 보내는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필리핀을 2-1로 꺾고 1·2차전 합계 4-2로 가볍게 결승전에 올랐다.

2008년 인도네시아-태국 대회 이후 10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베트남은 유력한 우승 후보 태국을 따돌린 말레이시아와 오는 11일 쿠알라룸푸르에서 결승 1차전을, 15일 하노이에서 결승 2차전을 치른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는 1996년 싱가포르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린 이후 2016년 미얀마-필리핀 대회까지 모두 11차례 개최된 대회에서 각각 1차례씩 우승했다. 태국이 5차례, 싱가포르가 4차례 정상에 올랐다.

버마라는 나라 이름을 갖고 있던 1960~70년대 동남아시아, 나아가 아시아 축구 강호였던 미얀마와 동남아시아의 또 하나의 축구 강자 인도네시아는 이 대회 우승과 아직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달 16일 하노이에서 열린 이 대회 조별 리그 A조 경기에서 말레이시아를 2-0으로 물리쳤다. 조별 리그 성적도 베트남이 3승 1무로 3승 1패인 말레이시아에 앞섰다.

직전 대회인 2016년 미얀마-필리핀 대회에서도 베트남은 조별 리그에서 말레이시아를 1-0으로 눌렀다. 이 대회에서 베트남은 준결승에서 인도네시아에 1무 1패(2-2 1-2)로 밀려 결승전에 나서지 못했다.

2014년 싱가포르-베트남 대회에서는 두 나라가 준결승전에서 맞붙었다. 베트남은 1차전 원정 경기에서 2-1로 이겼으나 2차전 홈경기에서 2-4로 져 결승전으로 가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베트남을 따돌리고 결승전에 오른 말레이시아는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태국을 3-2로 잡았지만 원정으로 치른 1차전 0-2 패배를 극복하지 못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최근 3개 대회 전적을 보면 베트남이 말레이시아에 앞서지만 두 나라의 축구 역사를 보면 말레이시아는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나라 가운데 2018년 현재 월드컵 무대를 밟은 나라는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이름으로 1938년 프랑스에서 열린 제3회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 대회 예선 12조에는 일본과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제국주의 일본이 자기들이 일으킨 중일 전쟁 여파로 기권해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경기하지 않고 본선에 나섰는데 1회전인 16강전에서 헝가리에 0-6으로 졌다.

동남아시아 나라 가운데 올림픽에 출전한 팀은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다.

지역 예선 없이 치러진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인도네시아는 소련과 8강전에서 맞서 연장 접전 끝에 0-0으로 비기는 선전을 펼쳤다. 승부차기가 없던 시절이니 재경기를 했고 이번에는 0-4로 져 탈락했다. 태국은 이 대회 1회전에서 영국에 0-9로 대패했다.

태국은 두 번째로 출전한 올림픽인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에서는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불가리아에 0-7, 2차전에서 과테말라에 1-4, 체코슬로바키아에 0-8로 져 탈락했다. 이 대회에서 AFC(아시아축구연맹)를 대표해 출전한 나라 가운데 일본은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메달(동)을 차지했고 이스라엘은 8강에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는 미얀마(당시 이름 버마)와 말레이시아가 출전했다. 미얀마는 아시아 지역 2조에서 인도네시아 태국 등 지역 라이벌들을 제치고 본선에 올라 1차 조별 리그에서 수단을 2-0으로 이겼지만 소련과 멕시코에 각각 0-1로 져 탈락했다.

이 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 1조에는 한국과 일본 필리핀 중화민국(오늘날 대만)이 들어 있었다. 1948년 런던 대회 이후 24년 만의 올림픽 출전을 염원하며 예선전을 서울에 유치한 한국과 직전 올림픽인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 3위인 일본이 뮌헨행 티켓을 다툴 것으로 거의 모든 축구 팬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예선 첫날 경기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가 시에드 아마드(2골) 루이룬텍(1골)의 릴레이 골로 일본을 3-0으로 잡은 것이다. 예선 기간 내내 비가 오락가락한 가운데 이날은 완전한 수중전이었다. 말레이시아에 유리한 조건이긴 했지만 일본은 멕시코시티 대회 득점왕 가마모토 구니시게를 비롯해 올림픽 동메달 멤버가 대부분 남아 있는 강팀이었다.

이 경기 이틀 뒤, 예선 전체로 두 번째 경기에서 대회 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역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경기에서 말레이시아가 시에드 아마드의 헤딩 결승 골로 한국을 1-0으로 꺾은 것이다.

예선 초반 이 두 경기로 뮌헨으로 가는 나라가 사실상 결정됐다. 말레이시아는 이후 중화민국을 3-0, 필리핀을 5-0으로 물리치고 자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예선 3번째 경기에서 박수덕과 정규풍의 골로 일본을 2-1로 이겼지만 이때 말레이시아는 4승으로 예선 일정을 마친 뒤였다.

이 무렵 말레이시아는 시에드 아마드와 루이룬텍, 웡춘아가 이끄는 발빠른 공격진도 좋았지만 소치온과 모하메드 찬드란을 축으로 한 수비진이 아주 탄탄했다.

말레이시아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출전해 조별 리그에서 서독과 모로코에 0-3, 0-6으로 졌으나 미국을 3-0으로 이겨 올림픽 통산 1승 기록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했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이 주도한 보이콧 대열에 합류해 이라크가 대신 출전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이 대회 예선에서도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부르나이와 겨뤘는데 예선 라운드를 4승 1무, 1위로 마무리하고 2위인 한국(4승 1패)과 조 1위 결정전을 치러 2-1로 이겼다. 예선 라운드에서는 한국을 3-0으로 물리쳤다. 원정 경기이긴 했지만 한국으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말레이시아는 1950년대 후반 압둘 라만 수상의 주도로 아시아청소년(20세 이하)축구선수권대회(AFC U 19 챔피언십 전신)를 창설하고 자국 독립을 기념하는 아시아 지역 친선 축구 대회인 메르데카배를 개최하는 등 아시아 축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AFC 본부가 말레이시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건 이런 역사와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 종목에서 말레이시아는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11일과 15일 잇따라 열리는 결승전은 아기자기한 동남아시아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이고 박항서 감독이 국내 축구 팬들에게 보내는 연말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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