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술적으로 검증된 필리핀의 에릭손 감독 ⓒ연합뉴스
▲ 필리핀도 철저히 분석했다는 벤투 감독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한국을 충분히 분석했다. 놀라게 할 수 있다."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필리핀은 2019 UAE 아시안컵 C조의 최약체로 꼽힌다. 필리핀은 아시안컵 본선 참가 자체가 처음이다. 본선 진출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나며 기회가 생겼다. FIFA랭킹 116위로 24개국 중 세 번째로 낮은 순위다.

C조 1위 후보이자, 대회 우승 후보인 한국과 첫 경기. 한국의 압승을 예상하는 분위기지만, 지난 5일 개막 이후 아시안컵은 매일 전문가의 예상을 비웃는 결과가 이어졌다. 7일 밤 10시 30분 킥오프하는 한국과 필리핀의 경기에 일말의 우려가 생기는 이유가 있다.

◆ 연일 이변 연출된 아시안컵, 세계 축구의 흐름

개최국 UAE는 바레인과 개막전에서 페널티킥 득점으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뒀다. 디펜딩 챔피언 호주는 B조 1차전에서 요르단에 0-1 충격패를 당했고, 동남아시아 최강으로 불리던 태국은 인도에 1-4 대패를 당해 감독을 조기 경질했다.

연일 이변이 속출하면서 필리핀도 자신감을 얻었다. 본선 참가국을 24개로 늘린 유럽선구권대회도 지난 유로2016 대회에서 첫 참가국 아이슬란드가 8강, 웨일즈가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약팀의 이변은 세계적인 추세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도 스타 선수를 보유한 우승 후보국이 조기 탈락하며, 잉글랜드, 벨기에, 크로아티아 등 8강권으로 분류되던 팀들이 4강에 올랐다.

아시안컵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변방의 약체로 꼽히던 팀들이 대회에 남다른 동기부여를 갖고 나선데다, 대회 초반에는 강팀들의 피지컬 컨디션이 좋지 않다. 방심이라는 정신적 문제 외에 수비 전술의 세계 평준화도 이변의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 피지컬이 좋은 유럽 출신 선수를 다수 보유한 필리핀. 오른쪽은 윙어 슈뢰크 ⓒ연합뉴스


◆ 필리핀은 전형적인 역습 전술로 한국을 상대한다

필리핀은 견고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역습 전술을 단련할 줄 아는 유럽 명장 에릭손이 지휘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 팀이지만 유럽 출신의 부친 혹은 모친을 둔 선수들을 대거 대표팀에 발탁해 정신적이 면에서나 신체적인 면, 축구적인 면 모두 빠르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필리핀이 한국을 상대로 내세울 전술은 선수비 후속공의 전형적인 역습 축구다. 수비시 4-4-2 포메이션의 타이트한 세 줄을 그물을 펴린다. 역습시 속도감 있는 선수들이 측면과 배후 공간으로 달려드는 패턴에 집중한다.

필리핀은 최근 베트남과 세 차례 A매치를 치러 모두 졌다. 대회를 앞둔 평가전은 비공개로 치렀으나, 2018년 스즈키컵 경기를 통해 전력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도 필리핀의 전력을 철저히 분석했다며 방심하지 않겠다고 했다.

에릭손 감독 부임 후 공개된 6경기의 라인업을 살피면 기반은 4-4-2 포메이션이다. 골이 필요했던 베트남과 스즈키컵 준결승 2차전을 제외하면 모두 포백 수비를 썼다. 필리핀은 주전 골키퍼 닐 에더리지를 차출하지 못했고, 핵심 풀백 마르틴 스토블도 한국전에 뛸 수 없는 상황이다.

덴마크 출신 팔케스고르가 골문을 지키는 가운데 포백으로 나설 경우 잉그레소, 데무르가, 알바로 실바, 사토 다이스가 선발 선수로 유력하다. 센터백으로 기용했던 미드필더 폴 멀더스가 대회 직전 부상으로 하차했다. 스리백으로 나설 경우 잉그레소가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될 수 있다.

한국을 상대로 중요한 것은 중원과 측면의 기동력이다. 이전 경기에서 볼 수 없었던 5-4-1 포메이션을 내세울 수도 있다. 중원의 한 명이 수시로 수비 라인으로 내려가 한국 공격진의 침투 동선을 좁히고, 대인 방어 밀착도를 높일 수 있다. 

역습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은 스트라이커 필립 허즈번드, 윙어 패트릭 라이헐트, 슈테판 슈뢰크가 맡는다. 허즈번드는 184cm의 키에 슈팅력을 갖췄고, 슈뢰크는 풀백을 맡아볼 수 있을 정도로 투지있는 움직임이 강점이다. 라이헐트는 측면과 전방을 오가며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들에게 중원에서 패스를 공급하는 선수는 마누엘 오트와 욘파트릭 슈트라우스다. 둘 모두 볼을 다루는 기술이 좋은 중앙 미드필더로 독일에서 태어나 축구를 배웠다. 슈트라우스는 현재 독일 2.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 

▲ 황의조가 평소의 결정력을 보이면 이변의 가능성은 없다 ⓒ연합뉴스


◆ 손흥민 없고, 이승우 이제 왔고…한국 유일한 불안은 제한적인 조커 자원

한국은 풀백을 높이고 공격 지역에 숫자를 많이 두며 지배적인 경기를 한다. 필리핀이 뒤로 물러서서 경기하면 높이 올린 후방 빌드업 라인에 역습 위험도가 높아진다. 필리핀은 급할 게 없다. 비기기만 해도 성공이다. 섣불리 수비 공간을 비우고 전진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이른 시간 득점하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첫 경기 당시처럼 손쉬운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득점 없이 흐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필리핀에게 유리한 흐름이 될 수 있다. 

필리핀이 준비하는 전술은 놀라울 것이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아시안컵 본선과 같은 큰 무대의 실행력은 정신력의 영향이 크다. 손흥민이 아직 합류하지 않았으나 기성용, 구자철, 이청용 등 무수히 많은 큰 경기 경험을 가진 선수가 즐비한 한국이 유리하다. 

황의조의 평소의 결정력만 보여줘도 필리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필리핀은 UAE와 호주를 놀라게 한 바레인과 요르단의 뒤를 잇고 싶어 하지만, 한국이 대회 최고의 전력을 가진 팀이라는 점에서 어려운 미션이 될 것이다.

한국은 황의조를 원톱으로 세우고 황희찬, 이재성, 이청용이 2선, 정우영, 기성용이 두 명의 미드필더로 나서는 4-2-3-1 포메이션이 유력하다. 포백은 김진수, 김영권, 김민재, 이용이 맡는다. 갓 합류한 이승우는 투입할 컨디션이 아니고, 손흥민은 중국전부터 합류한다. 

교체 자원으로 흐름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선수가 적다는 점에서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동원과 구자철의 경험, 황인범과 김문환 등 창조성과 속도감은 필리핀을 흔들기 충분하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도 한국이 필리핀을 상대로 이변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필리핀 최근 6경기 라인업

vs 싱가포르(4-4-2): 에더리지; 우드랜드, 데무르가, 멀더스, 스토블; 마이크 오트, 슈트라우스, 마누엘 오트, 슈뢰크; 라이헐트, 필립 영허즈번드 

vs 동티모르(4-4-2): 팔케스고르; 잉그레소, 데무르가, 멀더스, 사토; 제임스 영허즈번드, 슈트라우스, 스토블, 슈뢰크; 필립 영허즈번드, 라이헐트

vs 태국(4-4-2): 팔케스고르; 스토블, 데무르가, 알바로 실바, 팔라; 슈뢰크, 슈트라우스, 마누엘 오트, 사토; 필립 영허즈번드, 라이헐트

vs 인도네시아(4-4-2): 팔케스고르; 스토블, 데무르가, 알바로 실바, 사토; 라이헐트, 슈트라우스, 마누엘 오트, 슈뢰크; 베디치, 필립 영허즈번드

vs 베트남(4-5-1): 팔케스고르; 리드, 데무르가, 알바로 실바, 스토블; 라이헐트, 잉그레소, 마누엘 오트, 베디치, 슈뢰크; 필립 영허즈번드

vs 베트남(3-4-3): 데이토; 아기날도, 알바로 실바, 데무르가; 스토블, 잉그레소, 리드, 램지; 필립 영허즈번드, 레이헐트, 슈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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