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항거'. 포스터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3.1만세운동이 100주년을 맞았다. 여성 독립운동가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은 그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열일곱 나이에 아우내 장터에서 뜨겁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옥중에서 사망한 열사를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는 벅찬 만세운동을 그녀의 클라이맥스로 삼지 않았다.

첫 장면은 유관순의 생전 모습으로 알려진, 그 한 장의 사진을 남기며 시작한다. 족쇄가 채워진 맨발로 서대문 감옥에 투옥되며 벽에 서 사진을 찍는 그녀의 얼굴은 엉망이다. 온통 퉁퉁 부어올랐지만 눈빛만은 형형하다. 371번 수감번호를 달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1년,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단단한 흑백의 화면에 담겼다.

일제강점에 저항한 비폭력 평화시위였던 1919년 3.1만세운동의 결과는 가혹했다. 7500여명이 죽고 4만 명이 훨씬 넘는 이들이 체포됐다. 서대문 감옥도 터져나갈 형편이다. 만세를 부르다 한꺼번에 잡혀온 여인들이 갇힌 8호실은 3평 남짓. 25명이 함께 앉을 수도 없을만큼 좁은데다 가만히 있으면 맞은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여인들은 고행 하듯 좁은 감방을 돌고 또 돈다.

17살의 유관순(고아성), 수원 제일 가는 기생이었던 김향화(김새벽),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 다방 종업원 옥이(정하담)도 함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리랑을 부르던 여인들은 간수가 나타나자 입을 다문다. 목청껏 울다 인기척이 있으면 조용해지는 개구리를 떠올린 관순. 다시 터져나온 아리랑과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는 외침은 감옥 안 또 다른 저항의 시작이다. 구타와 고문이 이어지지만 그녀는 감옥 안의 항거를 멈출 생각이 없다.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고전 영웅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주인공 유관순은 잠시도 비겁할 생각이 없는 비범한 사람이다. "자유란 하나뿐인 목숨을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는 것"이라며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 유관순을 억압하고 꺾어버리려는 악, 유관순과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악이 그녀의 선명한 기개와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녀의 남다른 정신이 남긴 유산이 전해진다. 그 모두를 그려내는 방식도 크게 다를 것 없지만, 일제 앞에 당당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돌아와 고요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표현법에서도 예를 갖췄다. 투박할지언정 열사를 향한 진심은 절절히 전해져 온다. 

타이틀롤답게 고아성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할 말 많은 눈을 치켜뜨는 것만으로도 대사 너머의 이야기를 전하곤 했던 그녀는 숨막히는 무게가 실린 캐릭터에서도 제 몫을 했다. 고문으로 먹지도 못하게 된 유관순을 표현하기 위해 금식까지 하고 카메라 앞에 선 배우의 진심어린 접근이 느껴진다.

누구나 알고 있다 생각했던 유관순의 미처 몰랐던 마지막 1년을 그렸다는 점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다. 그 못잖게 마음을 치는 건 평범한 얼굴을 한 여옥사 8호실의 여인들이다. 신식 교육을 받은 10대부터 술 따라주던 기생, 중년의 촌부, 다방 직원과 만삭의 임산부를 망라하는 여인들의 연대가 뭉클하다. 그녀들의 발걸음마다 외침마다 실린 묵직한 무게가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3.1운동 100주년 기획에 머물지 않고 2019년의 관객을 만나야 할 진짜 이유다.

2월27일 개봉. 12세관람가. 러닝타임 105분.

roky@spotvnews.co.kr

▲ 영화 '항거'. 출처|스틸, 포스터
▲ 영화 '항거'. 출처|스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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