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바하'의 차순배. 한희재 기자 hhj@spotvnews.co.kr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옥토퍼스라니, 예상치 못한 별명이 생겼어요."

강렬한 비주얼, 분명한 존재감. 으스스하고도 쫀쫀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사랑받은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제작 외유내강)엔 잊을 수 없는 신스틸러가 있다. 등장은 물론 언급만으로도 강렬한, 산에 사는 '문어스님' 차순배(47)다. 든든한 풍채와 날카로운 눈빛부터가 심상찮은 이 지성파 총무스님은 사이비 쫓는 박목사(이정재)를 탐탁지 않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 단서를 던진다. 영화의 미스터리로 관객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한편, 뜻밖의 웃음 포인트로 매력을 더한다.

▲ 영화 '사바하'의 차순배. 출처|스틸컷

"감독님이 뭐 하나 들어내시지 않고 찍은 그대로 편집해 주신 덕이죠. 감사했어요. 인물 분석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대본에 모든 게 있었으니까. 정확한 사람이죠. 공부도 많이 하고 지적인. '문어'스님에 저도 터지긴 하더라고요. (이)정재씨가 '문어가 왜 산에 사냐'고 힘들어하는데 보란듯이 자동차가 내려가는 걸 보고요. 저는 나름 되게 진지하게 연기했어요. 그랬는데 보는 분들이 빵 터져서 그렇지. 제 두상이 좀 그런가봐요.(웃음)"

차순배는 대학로 무대에 서기 전엔 선교극단 활동을 했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한때 신학대까지 다닌 이력이 있다. 단 몇 장면을 위해 머리까지 밀고 임한 영화 '사바하'와 그 속의 '문어스님'이 남다를 수밖에. 차순배는 삭발하고 스님을 연기한다는 점 자체가 도전으로 다가왔고, 신을 향한 영화의 질문이 또한 묵직하게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 영화 '사바하'의 차순배. 한희재 기자 hhj@spotvnews.co.kr
"'신이 과연 있느냐'라기보다 '도대체 어디에 계시느냐, 왜 다가오시지 않느냐' 하는 느낌이잖아요. 세상이 상처받고 오갈 데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편이 됐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그럴 때 우리는 신이라는 지점에 매달리곤 하고요. 저는 마지막 폭죽 장면에서 '아 좋다, 이대로 끝나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이 시대가 이렇게 모순됐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 시대 우리에게 정말 위로가 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사바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은 또 있다. 지난해 2월 21일 '사바하'의 첫 촬영에 들어가던 날, 그는 뜻밖의 부음을 들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체육관 관장 역 등을 맡았던 동갑내기 배우이자 친구 차명욱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 차순배는 친구가 죽음을 맞은 그날 그 순간 그 또한 오른발 발등이 부러졌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리 알렸어도 갑자기 깁스를 하고 갔더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던지. 스태프가 휠체어를 준비해줘서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바하'는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 영화 '사바하'의 차순배. 한희재 기자 hhj@spotvnews.co.kr

1992년 첫 연극 무대에 섰던 차순배는 1995년 이후 지금까지도 극단 민예에 소속된 베테랑 배우다. 처음 연극을 시작할 무렵 '이 힘든 일을 왜 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소주하고 라면만 먹으면 됩니다"라고 답했던 일화가 전해온다. 그는 최근 술을 줄였다며 "이제 살살 먹을 때가 됐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자취는 수많은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1000만 '택시운전사'에선 '미안허네' 한 마디를 남기고 간 광주의 택시운전사였고, '사도'에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세자를 지켜본 박내관으로 지켜보는 이들마저 먹먹하게 했다. '미옥'에선 엄동설한에 속옷 바람으로 고초를 겪던 채무자였다. 드라마 '굿와이프'의 변호사 데이비드 리, '미스 함무라비'의 악질 판사 성공충 등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그를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이 배우의 얼굴은 대체 몇 개일까. 차순배는 "저도 궁금합니다"라고 웃음지었다.

"최대한 다른 인물로 거듭나도록 작업하는 게 저의 목표예요. 다른 캐릭터를 하면 목소리는 물론이고 시선 동공 목소리가 다 달라지잖아요. 그것을 바꿀 수 있을 때 성취감이 있어요. '미쓰 함무라비' 성공충 판사 때, '사바하' 탓에 가발을 쓰고 찍었거든요. 얼마나 욕을 먹었나 몰라요. 벌레같다고 하고, 성동일 형이 '아오, 죽여버리고 싶다'고 하고. 그런데 그게 또 얼마나 쾌감이겠어요. 촬영장 가면 '막 다뤄주세요' 그래요."

roky@spotvnews.co.kr

▲ 영화 '사바하'의 차순배. 한희재 기자 hhj@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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