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6월 18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최종전, 이란은 한국에 1-0으로 이기며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 벤치에 주먹감자를 날리며 격하게 기뻐했다. 경기 종료 후 4만 관중의 물병 세례를 선물로 받으면서도 여유있게 세리머니를 했다.



[스포티비뉴스=파주, 이성필 기자] 한국 축구 역사에서 억울하거나 한풀이를 해야 하는 경기들을 꼽으라면 단연 이란과의 맞대결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이란 팬들이 자부심으로 간직하고 있는 1996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8강전이 대표적이다. 전반을 김도훈, 신태용의 골로 2-1로 앞섰지만, 후반 알리 다에이에게 무려 4골을 내주며 2-6으로 졌다.

이란 원정을 가면 이란 팬들은 국내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 여섯 개를 펼쳐 보이며 "씩스 투(6-2)"를 외친다. 이후 승부에서 한국이 큰 점수로 이긴 기억이 없어 더 강조한다. 2011 카타르 아시아컵 8강전에서 연장전 윤빛가람(상주 상무)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아 0-1로 졌어도 "연장전이기 때문에"라며 이란의 승리를 강조한다.

공교롭게도 아시안컵 이후 부임한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체제에서 이란은 한국에 한 번도 지지 않았다. 4승 1무로 절대 우위, 4승 모두 1-0 승리였다. 1무도 0-0, 한 번도 이란 골문을 흔들지 못했다.

가장 극적인 승리는 2013년 6월 18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었다. 비기기만 해도 이란을 탈락시키고 우즈베키스탄과 사이좋게 본선에 갈 수 있었지만, 레자 구차네자드(시드니FC)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패했다. 우즈벡에 골득실에서 1골 앞서 겨우 본선에 갈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당시 이란 사령탑이었던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 벤치를 향해 주먹 감자를 날리며 격하게 기뻐했다. TV 생중계에 그대로 잡혔는데도 케이로스 감독은 부정했다. 이후 만남에서도 시원하게 이기지 못했고 케이로스 감독에게 쌓인 부채를 갚지 못했다. 패배를 모르는 케이로스 감독이 당당한 것은 당연했다.

절묘하게도 케이로스 감독은 콜롬비아 대표팀에 부임했고 지난 22일 일본 원정에서 특유의 수비 축구를 앞세워 1-0으로 승리한 뒤 내한했다. 이란과 비교해 좀 더 전력이 좋아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라다멜 팔카오(AS모나코), 하메스 로드리게스(바이에른 뮌헨), 예리 미나(에버턴), 다빈손 산체스(토트넘 홋스퍼) 등 전력이 탄탄하다.

심리전에 능한 케이로스 감독은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주먹감자' 이야기가 나오자 직진을 선택했다. 그는 "과거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겠다"며 선을 긋고서 "당시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것은 과장이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아시아 축구연맹(AFC)에서도 징계가 없었다"며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또, "오해가 있었다. 한국을 존중한다.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겠다. 한국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 ⓒ대한축구협회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심리전에 능하다. 2012년 10월 16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홈경기에서는 한국 벤치와 시비가 붙어 퇴장 당했다. 사진은 2014년 11월 친선경기 종료 후 한국 선수단과 엉겨 붙어 싸우는 모습.

한국이 아니라 축구 그 자체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태도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콜롬비아 선수들과 국제무대에서 같이 뛴다. 굳이 한국이라 이기고 싶은 것은 아니다. 축구라서 이기고 싶다. 도전적인 마인드로 뛰겠다"며 여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케이로스의 자신감 뒤에는 한국 축구의 골결정력이 자신이 구사하는 '역습 중심의 축구'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섯 차례나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란과 비교해 팔카오, 하메스를 앞세운 콜롬비아의 공격력이 더 좋고 끈기와 투쟁력도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일본전에서도 케이로스는 눈치를 보다 후반에 승부수를 던져 성공했다. 일본의 시바사키 가쿠는 이란전이 끝난 뒤 니칸스포츠를 통해 "후반 콜롬비아가 공격을 4명으로 늘리면서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그 압박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순간 집중력 저하가 패인이었음을 시인했다.

벤투 감독은 한 발 뒤로 빼며 콜롬비아를 강팀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도 "경기를 지배하고 최대한 공격을 해서 상대 진영에서 최대한 많은 플레이를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팽팽한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손흥민, 황의조(감바 오사카), 권창훈(디종), 이청용(보훔) 등 골 냄새를 아는 이들이 해결사로 나서 케이로스 감독의 여유가 초조함으로 바뀌게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