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미 로맥은 올 시즌 장타율이 폭락한 채 답답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야구의 모든 것이 마찬가지겠지만, 투수의 구위도 심리가 크게 작용한다.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타자를 두려워하면 가지고 있는 구위가 다 나오지 않는다. 강타자들의 위압감이 주는 효과도 여기서 나온다.

SK는 2년 연속 200홈런 이상을 친 홈런 군단이다. 홈런은 점수로 직결됨은 물론 경기 분위기를 일거에 바꾼다는 점에서 투수로서는 악몽의 이벤트다. 때문에 SK를 상대할 때 최대한 신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구장 규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인천이나, 팽팽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비록 팀 타율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 SK는 올해 그런 장점을 상당 부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SK의 팀 타율은 2할2푼9리로 리그 평균(.260)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다. 출루율(.313)도 꼴찌, 장타율(.346)은 9위다. SK는 지난해 팀 타율이 리그 7위였으나 출루율은 3위, 장타율은 2위로 좋았다. 답답한 타격을 보이고 있다가도 안타나 볼넷으로 주자를 모은 뒤 한 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곤 했다. 올해는 나가지도 못하고, 멀리 보내지도 못한다.

일각에서는 SK의 장타율이 떨어진 것이 반발계수를 낮춘 공인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지난해 같았으면 넘어갔을 법한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히는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좀처럼 ‘넘어갈 만한’ 타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SK의 현실이다. 리그 9위(.275)의 인플레이타구타율(BABIP)에서 이를 적나라하게 실감할 수 있다. SK의 타구질은 리그 최악 수준이다.

SK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고, 콘택트 비율도 낮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방망이에서 맞은 공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 통계전문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홈런 군단으로 이미지를 굳히기 시작한 2017년 SK의 외야 타구 비율은 54.4%, 지난해는 55.8%에 이르렀다. 하지만 올해는 49.5%로 오히려 내야 비율이 더 높다. 

반대로 수비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내야 뜬공 비율은 2017년 32.2%, 2018년 33.9%에서 올해 35.3%까지 올랐다. 내야 뜬공이 많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타이밍이 늦은 것과 연관이 있다. 한 타자 출신 해설위원은 “SK 타자들의 타이밍이 전체적으로 늦다”면서도 “그렇다고 어떻게 밀어 치겠다는 노림수도 안 보인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도저도 아닌 스윙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염경엽 감독은 기존 장타력에 세밀함을 더한 야구를 추구했지만 아직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SK와이번스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도 2017년과 2018년보다 높아졌고, 파울도 많아졌다. 볼카운트 싸움에서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불리한 카운트에서 콘택트에 급급한 타격이 이어진다. 물론 콘택트에 능력이 있어 결과를 잘 만들어내는 팀도 있다. 그러나 지난 2~3년의 기억에 충분히 증명됐듯이, SK는 그런 유형의 팀이 아니다. 그런 능력이 진작에 있었다면 지난해 두산에 14.5경기나 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총체적 난국에 빠지자 투수들이 SK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진하거나 입지가 위태로운 투수들도 SK를 정면으로 공략하고 있다. 한가운데 패스트볼을 거침없이 던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 SK 타자들의 타이밍과 컨디션이 바닥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투수와 포수는 몇개의 공으로 그것을 직감할 수 있다. 여기에 데이터도 그 감을 뒷받침한다. 빠르게, 적극적으로 승부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결과 몇몇 선수들은 SK전에서 자신의 시즌 평균 성적 이상의 호투를 펼치기도 했다. 배재준(LG) 장시환 박시영(이상 롯데) 윤성환(삼성) 홍건희(KIA) 홍상삼(두산)과 같은 선수들이다. SK는 상대적으로 3~5선발, 특히 박종훈 문승원이 지키는 4~5선발이 강하다. 1~2선발 경기에서 패해도 여기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어 위력적인 팀이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타자들이 이겨내지 못하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쫓기는 분위기만 읽힌다. “상대적으로 쉬운 선수들이 나왔을 때 반드시 쳐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 초반 흐름을 만들지 못하다보니 급해지기만 한다. 그럴수록 배터리의 사기만 높아진다. 17일 두산과 경기에서도 SK는 상대 선발 홍상삼의 초반 제구 난조를 십분 이용하지 못했다. 그 결과 홍상삼의 기만 살려주고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홍상삼의 자신감은 패스트볼과 변화구 위력을 배가시켰다.

SK 타선이 살아나려면 상대 투수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장타의 위협을 떠올려야 한다. 허둥지둥 따라다니는 방망이로는 장타를 만들 수 없다. 단순히 콘택트 비율만 따지면 올해 SK(78.5%)는 2017년(77.5%)이나 2018년(77.3%)보다 더 좋은 팀이 됐다. 다만 이 콘택트에 힘이 붙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즌 전 외쳤던 정확도와 상황대처능력 향상은 이런 양상을 염두에 둔 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 5년간 콘택트 비율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2015년(79.9%)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는 SK 팬들, 그리고 구단에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해, 진짜 만만해진다면 시즌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시즌의 20%, 즉 30경기 정도까지 이런 양상이 이어지면 그건 슬럼프가 아니라 실력이라 봐야 한다. SK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정체성을 다시 찾아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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