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5월13일 광주 kt-KIA전. 5-5 동점 9회초 2사 2·3루에서 kt 김상현이 타석에 들어서자 KIA 3루수 이범호가 폭투에 대비해 포수 뒤쪽으로 이동하는 파격적 시프트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야구규칙상 이범호는 3루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지난 12일 창원NC파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수비 시프트(Shift)가 나와 화제가 됐다. 8회초 두산 공격 1사 1루. 타석에 두산 4번타자 김재환이 들어서자 NC 3루수 노진혁이 1루수와 2루수 사이로 자리를 옮겼다. 오히려 1루수 뒤쪽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극단적인 이동이었다. 3루수 자리는 완전히 비워진 상황. 그런데 김재환의 타구는 공교롭게도 노진혁 쪽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우전 안타가 돼야할 총알 타구였지만, 노진혁은 곧바로 몸을 돌려 2루 쪽으로 던졌다.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유격수 손시헌이 공을 잡아 2루를 밟으면서 1루주자를 포스아웃시킨 뒤 1루로 던져 환상적인 더블플레이를 완성했다. 그러면서 8회초가 그대로 지워져버렸다. 안타 대신 병살타 하나를 추가한 김재환도 허탈한 듯 웃고 말았다.

지난 주간의 핫이슈를 정리하는 [스포츠타임 와글와글]에서는 수비 시프트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KBO리그 역대 잊을 수 없는 시프트를 돌아본다.

당신의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시프트는 무엇입니까.

▲ NC가 1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두산전 8회초 수비에서 파격적인 시프트를 들고 나왔다. 1사 1루서 타석에 두산 4번타자 김재환이 들어서자 3루수 노진혁이 1루수 뒤에 자리 잡으면서 3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에 성공했다. ⓒ중계 화면 캡처
◆수비 시프트시 공식 기록은 어떻게

봐도봐도 신기한 장면. 궁금한 것 중 하나는 NC가 성공한 더블플레이를 두고 공식 기록은 어떻게 처리할까. 일반적인 더블플레이 상황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발이 느리고 잡아당기는 스타일의 풀히터(Pull-Hitter)에게 수비 시프트를 건다고 해도, 자신의 포지션에서 전체적으로 옆으로 이동한다. 좌타자를 상대를 할 때 3루수가 유격수 자리로, 유격수가 2루 뒤쪽에, 2루수가 1루수 쪽으로, 1루수는 베이스 뒤쪽으로 촘촘하게 붙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NC는 3루수를 1루수와 2루수 사이에 넣어서 더블플레이를 완성했다.

최근 수비시 프트가 활성화되면서 이제 공식기록원은 기존 수비수가 있어야할 자리를 비우고 다른 쪽으로 옮기면 누가 어디로 옮겼는지를 기록지에 먼저 표시한다.

야구에는 수비 포지션마다 고유의 번호가 있는데, 투수=1, 포수=2, 1루수=3, 2루수=4, 3루수=5, 유격수=6, 좌익수=7, 중견수=8, 우익수=9로 표기된다.

여기서 더블플레이에 관여한 수비수 번호를 그대로 기록한다. NC 측에서 심판원위원과 공식기록원에게 3루수 노진혁의 포지션 변경을 공식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프트를 통해 1루수 뒤쪽으로 이동한 상황이지만 '5'로 인정받는다. 공식기록은 3루수~유격수~1루수로 연결되는, 5~6~3 병살(더블플레이)로 기록한다. 공식기록지에는 3루수가 1루 뒤쪽으로 이동한 상황을 표시했기 때문에 훗날 공식 기록지를 보더라도 최대한 수비 시프트 상황을 유추해낼 수 있다.

◆데이터 야구 NC의 파격적 시프트

올 시즌을 앞두고 '데이터 야구'에 적합한 이동욱 감독을 새로 선임한 NC는 파격적인 수비 시프트를 자주 펼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4월 19일 인천 SK전에서는 1회초 2사후 최정 타석 때 내야수들을 모두 왼쪽으로 옮겼다. 이날은 노진혁이 유격수로 선발출장했는데, 3루수에 가깝게 붙었다. 2루수 박민우는 2루를 기점으로 왼쪽으로 더 이동한 상황이었다. 1루수 베탄코트는 평소보다 2루수 쪽으로 많이 치우쳤다. 최정의 타구는 중전안타성 타구였지만 시프트를 한 2루수 박민우에게 걸려서 아웃됐다.

이에 앞서 4월 1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롯데전 6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이대호가 안타성 타구를 날렸지만 중견수 앞 쪽에 서 있던 2루수 김태진이 수비시프트로 안타를 지워버렸다.

◆내야 5인의 원조…2004년 한화 유승안 감독 '6·25 시프트'

야구에서 시프트의 역사는 오래 됐다. 시프트 자체가 수비수의 이동을 뜻하기 때문에 넓게 보면 번트 상황이나, 작전 상황에 따라 야수가 자리를 조금씩 이동하는 것도 시프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격적인 시프트를 논하자면 원래 야수가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인데, KBO리그에서는 2004년 화제가 될 만한 실험이 있었다. 6월 25일에 나온 장면이어서 일명 '6·25 시프트'라고도 회자된다.

▲ 2004년 6월 25일 한화 유승안 감독은 잠실 두산전 8회말 수비에서 내야 5인 시프트를 시도했다. 좌익수 이영우를 1루수로 투입하고, 1루수 김태균을 2루 뒤쪽에 세웠다. 외야수는 2명이었다.
당시 한화 유승안 감독은 잠실 두산전 8회말 수비에서 1사 만루 위기를 맞자 내야진을 4명에서 5명으로 늘렸다. 좌익수 이영우가 1루로 들어가고, 1루수 김태균이 2루 뒤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나머지 2루수, 3루수, 유격수는 제 자리를 지켰다. 외야수는 2명으로 중견수는 좌중간으로, 우익수는 우중간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당시 두산 최경환 타구는 왼쪽 파울선상 쪽으로 날아갔다. 2타점 2루타. 만약 좌익수 이영우가 좌익선상 쪽으로 붙는 시프트를 걸었다면 타구를 잡아낼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야 5인 시프트'의 승부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이 시프트가 화제가 되자 유승안 감독은 오히려 "메이저리그에서는 다 하는 작전인데 그걸 처음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축구에서는 경기 막판에 골키퍼까지 공격에 참여하지 않나"라며 자신으로서는 해볼 수 있는 실험이었다고 주장했다. 유승안 감독은 이후 2009년 경찰야구단을 감독을 맡아 미완성에 그쳤던 내야 5인 시프트를 성공하는 고집을 보였다. 이번엔 좌익수를 2루 위에 두고 5인 내야를 시도했는데, 2루수~좌익수~1루수로 이어지는 4~7~3 더블플레이 완성한 것이었다.

'파격 시프트' 대가 김성근, 2009년 SK 최정 투수 투입 통한의 끝내기 패스트볼

2009년. 이날도 6월 25일이었다. 광주구장에서 열린 SK-KIA전. 5-5 동점에서 연장 마지막 이닝인 12회초에 SK가 득점에 실패했다. 당시 무승부를 패배와 같게 처리하는 규정을 시행한 해였기 때문에, SK로서는 이미 패전 기록을 하나 추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승부로 끝나나 패배로 끝나나 1패가 주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 2009년 6월 25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SK-KIA전. SK 김성근 감독은 5-5 동점으로 진행된 연장 12회말 무사 1,3루에서 3루수 최정을 투수로 올리고 벤치에 있던 투수 윤길현을 1루수로 투입하면서 내야수들을 모두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파격 시프트를 시도했다.
이어진 12회말 무사 1·3루. SK 김성근 감독은 파격적인 시프트를 들고 나왔다. 3루수 최정을 마운드에 올리고, 벤치에 남아 있던 투수 자원 윤길현을 1루수로 내보냈다. 2루수 윤상균을 유격수와 3루수 사이에 배치하면서 왼쪽 내야에 3명의 야수가 들어섰다. 1~2루간은 텅 비워뒀다. 그런데 경기는 어이없게도 최정의 폭투성 패스트볼로 끝나고 말았다.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 최정의 공을 포수 정상호가 받지 못하면서 뒤로 빠졌고 3루주자가 결승득점을 올렸다. 공식기록으로는 끝내기 패스트볼이었다.

뒷말이 무성했다. 김성근 감독은 말이 없었지만 무승부=패배라는 규정을 만든 데 대한 무언의 항의라는 해석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날의 1패는 컸다. 무승부로 끝났다면 SK는 어차피 패배를 하더라도, KIA도 함께 패전을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KIA는 1승을 얻었다. 결국 페넌트레이스에서 KIA가 1경기차로 우승을 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SK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에 올랐다. 7차전 접전 끝에 KIA가 4승3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이범호 포수 뒤로! 전설의 '뒤루수 시프트' 해프닝

2015년 5월13일 광주 kt-KIA전. 5-5 동 9회초 2사 2·3루에서 kt의 거포 김상현이 타석에 들어서자 KIA 김기태 감독은 고의4구로 만루 작전을 펴려고 했다. 그러나 김상현을 거르는 과정에서 만약 투수의 폭투가 나온다면 허무하게 실점을 할 수도 있는 상황. 김 감독은 '만에 하나' 있을 사태에 대비해 3루수 이범호를 포수 이홍구 뒤쪽을 커버하게 했다. 지금 같으면 '자동 고의4구'로 내보내면 되지만, 당시만 해도 투수는 공 4개를 무조건 던져야하는 상황이었다.

▲ 2015년 5월13일 광주 kt-KIA전. 5-5 동점으로 진행된 9회초 2사 2·3루에서 kt 김상현 타석 때 3루수 이범호가 포수 뒤쪽으로 이동하자 주심이 이범호를 불러 원위치를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문승훈 3루심과 강광회 주심은 '경기 중 야수는 모두 파울 라인 안쪽(페이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야구규칙을 들어 이범호를 3루로 돌려보낸 것. 다음날 이 장면은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 MLB.com에도 소개돼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전설의 ‘뒤루수’ 사건. 야구 팬들에게도 야구규칙 하나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준 파격적 실험이었다.

◆시프트 어디까지 왔고, 어디까지 갈까

최근 메이저리그도 시프트의 대가 조 매든 감독(시카고 컵스) 비롯해 파격적인 시프트를 선호하는 구단과 감독들이 늘고 있다. 1루와 2루 사이에 4명의 야수를 두는 시프트도 나오고, 내야가 아닌 외야에 5명을 두는 시프트를 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만5000개의 타구에 수비 시프트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급부도 생긴다. 수비수의 짧은 위치 이동이 아니라 내야수가 외야로 가고, 외야수가 내야로 들어오고, 감독이나 코치의 지휘에 따라 간격까지 조정한다. 승부처에서 한두 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무제한으로 반복된다면 경기시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까지 나서서 시프트 제한 규정을 마련하려고 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야구도 유행을 탄다. KBO리그도 지난해 SK 트레이 힐만 감독이 파격적인 시프트를 자주 사용하면서 우승을 차지하자 이에 대해 관심을 두는 구단이나 감독들도 늘고 있다. 최근 NC처럼 성공 사례가 많아지면 더 큰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과거에는 기본적인 데이터만으로 시프트에 도전했지만, 이제는 타구 발사각이나 속도, 비거리, 낙구지점까지 각종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데이터가 풍부해지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시프트에 도전하는 팀은 더 많아질 수 있다.

그러나 시프트 반대론자도 많다. 반대론자들도 대부분 어느 정도의 시프트는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파격적인 시프트를 하다 실패한다면 수비 측에 심적 타격이 더 크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있다. 원래 수비수가 있었다면 아웃으로 처리할 타구를 시프트를 하는 바람에 안타로 내준다면 가뜩이나 예민한 투수들이 심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이동욱 감독이 NC 수비코치로 있을 때, 외국인투수 에릭 해커는 수비 시프트를 통해 아웃으로 처리해야할 코스의 타구를 안타로 만들어주자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 시프트를 통해 아웃을 얻은 유쾌한 기억은 잊고, 실패했을 때 가해지는 불쾌한 기억으로 투수가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천편일률적 야구보다는 여러 색깔의 야구가 충돌하는 것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최근 NC가 실험한 파격적 시프트는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과연 시프트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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