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게티이미지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저는 12살의 나이로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도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이렇게 손에 만지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메르시, 메르시 보꾸(Merci, Merci Beaucoup)."

봉준호(50) 감독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 거장으로 인정받는 무대였다.

25일 오후 7시(현지시간, 한국시간 26일 오전 2시)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렸다. 가장 마지막으로 불린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었다. 한국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이다. 

▲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왼쪽부터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배우 송강호, 봉준호 감독, 시상자 카트린 드뇌브. ⓒ게티이미지
지난 21일 첫 공식상영을 가진 '기생충'은 공개 직후부터 열광적인 찬사를 받으며 올해 칸영화제 최고 화제작에 등극했다. 스크린데일리로부터 4.0 만점에 3.5점을 받으며 평점 1위에 등극하고 각종 영화전문지, 매체로부터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히며 수상 기대감을 높였다.

다만 나이 일흔에 이른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 '페인 앤 글로리'로 초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명장들이 대거 쏠린 올해의 쟁쟁한 라인업 탓에 수상을 확신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마침 올해엔 21명의 경쟁부문 진출자 중 다르덴 형제(영 아흐메드), 켄 로치(소리 위 미스드 유), 테렌스 맬릭(어 히든 라이프), 압델라티프 케시시(메크툽, 마이 러브:인터메조), 그리코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까지 황금종려상 수상 이력이 있는 감독이 무려 5명이었다. 이중 다르덴 형제와 켄 로치는 무려 2번씩 황금종려상을 가져갔다.

이가운데 50살의 한국감독 봉준호 감독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가 있었다는 방증일 터. 동시에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인정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게티이미지
봉준호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필름메이커이자 자유자재로 장르를 변주하는 이야기꾼이다. '봉테일'로 불리는 정교한 만듦새, 풍부한 상징과 은유, 한국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는 예리한 시선으로 국적을 불문한 수많은 팬층을 거느려 왔다. 특히 이번 '기생충'에 이르러 "봉준호 자체가 장르가 되었다"(인디와이어)의 극찬을 끌어내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온 봉준호 감독은 단편 '지리멸렬'을 통해 주목받은 뒤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2003년 '살인의 추억'은 그를 스타감독으로 만든 계기이자 '페르소나' 송강호의 만남이 된 작품이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과 둔치에서 매점을 하는 서민 가족의 사투를 담은 영화 '괴물'은 2006년 1300만 관객을 모은 초대형 히트작이자 색다른 한국형 블록버스터이기도 했다. 2009년 '마더'로 모성의 광기어린 이면을 끄집어낸 그는 2013년엔 '설국열차'로 할리우드로 무대를 넓혔다.

프랑스 그래픽 노블이 원작인 '설국열차'는 빙하로 뒤덮인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열차를 배경으로 꼬리칸의 사람들이 엔진칸을 향해 가는 '혁명'의 과정을 풀어냈다. 자본주의의 양극화에 대한 짙은 은유가 담긴 이 작품 이후 그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옥자'를 만들었다. 넷플릭스 영화 최초로 2017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옥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날선 시선과 함께 잔혹한 공장형 축산, 육식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아냈다. 극심한 빈부격차 등 자본주의에 대한 씁쓸한 시선은 이번 '기생충'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게티이미지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인 영화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가족희비극. 같은 하늘 아래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족을 통해 빈부의 양극화를 꼬집은 이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서와 이야기로 공감을 자아낸다. 특유의 유머와 풍자, 장르 변주도 정점에 올랐다. 

봉준호 감독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의 쾌거이자 장르영화의 쾌거로도 평가된다. 봉준호 감독은 수상 기자회견에서 "비록 장르의 법칙을 이상하게 부숴뜨리기도 하고 유희를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는 장르영화 감독"이라며 "이렇게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이 놀랍고 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냐리투 감독이 전원 만장일치라고 하셔서 더욱 기쁘다.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자 장르영화의 팬으로서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봉준호 자체가 장르가 되었다는 코멘트가 있었는데 이번 영화제 기간 중 가장 감동적인 멘트라고 해야 할까. 기뻤다"고 덧붙였다.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왼쪽부터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게티이미지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