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인터뷰.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봉준호와 송강호의 만남은 늘 옳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을 보면 드는 생각 중 하나다. '기생충'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설사 수상이 불발되었다 해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배우 송강호(52)와 봉준호 감독은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그 시절 한국의 풍경을 날카롭게 그려낸 영화 '살인의 추억'(2003)으로 처음 함께했다. 한국형 괴수 블록버스터 장르를 개척한 1300만 흥행작 '괴물'(2006)에서도 호흡이 빛났다.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자 자본주의의 깊은 양극화를 은유해 낸 '설국열차'(2009)에서도 둘은 함께였다. 둘의 4번째 만남이 성사된 '기생충'은 '빈자'와 '부자'의 만남이 만드는 날카로운 파열음을 포착해 내며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썼다. 송강호는 백수가족의 가장 기택 역을 맡아 이야기를 아우르는 한편, 단 몇초의 표정만으로 관객을 설득해내는 압도적인 연기를 펼쳤다. 

칸을 흥분시킨 '기생충'이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다음날, 배우 송강호를 만났다. 칸의 흥분은 다소 가신 것처럼 보였지만, '기생충'과 감독 봉준호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했다. 그가 풀어낸 '기생충'과 백수가족 가장 기택,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를 가능한 대화에 가깝게 옮겨본다. 단, 스포일러를 피해가는 선에서.

▲ 지난 25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 이후 공식 포토콜에 나선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귀국하며 기분이 어땠나.

"다 아시겠지만 너무 긴 여행이지 않나. 지치기도 한데 그래도 기분이 좋은 소식을 들고 오니 마음이 가볍다. 너무 감사하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 좋은 작품을 추구하다보니까 기회가 있고 좋은 결실도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걸 목표로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목표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격려와 칭찬이 감사한 마음으로 와 닿는 것 같다."

-황금종려상 수상 날은 조촐한 뒤풀이라도 했나.

"폐막식 끝나고 리셉션은 못 갔다. 갈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배급사 파티가 있었는데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아파트 숙소에서 조촐하게 캔맥주를 들었다. 한참 있으니 봉감독이 심사위원들과 뒷풀이를 마치고 새벽 3시쯤 기진맥진해서 왔더라.(웃음) 한시간 쯤 있다가 먼저 잤다."

▲ 지난 25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 이후 공식 포토콜에 나선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 ⓒ게티이미지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바치는 깜짝 퍼포먼스도 화제였다. 시상식 현장에서 마이크를 넘긴 점도 놀라웠다.

"당황도 했지만, 봉이 혹시 그럴 수도 있겠구나. 급하게 수상 멘트를 타라라락 했다. 아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웃음) 평소에 제가 늘 생각했던 얘기였을 것이다.(웃음) 봉감독이 (트로피를 주는 듯한) 깜짝 퍼포먼스를 했는데 제 입장에선 너무 감동적이었다.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내가 봉감독에게 뭐 해준 것도 없는데. 더 잘할 걸' 그런 생각도 들고 별의 별 만감이 교차되더라. 아무튼 봉준호 감독에게 너무 감사했다. 빈말이 아니라 페르소나 페르소나 그러는데 내가 과연 봉준호라는 거대한 예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얼굴인가 그렇게 표현을 해왔나 반성도 좀 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과분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송강호가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였다고 했다는데.

"(봉 감독이) 뒤풀이 끝나고 새벽3시쯤에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 심사위원장과 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저는 그 이야기를 감추고 싶었는데 먼저 인터뷰에서 말씀을 하셨더라. 너무 칭찬을 해주셨다. 영광스러운 말씀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당연히 아쉬움은 없다. 황금종려상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인터뷰. 제공|CJ엔터테인먼트
-'살인의 추억'과 비교하면 지금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진화했나.

"(칸 출국 전) 제작보고회 때 감히 그런 표현을 했다. 정말 봉준호 감독의 리얼리즘 세계가 '기생충'으로 정점을 찍지 않았나. 전과정을 제가 지켜본 사람으로서 드디어 20년만에 그 리얼리즘의 세계가 구축됐다는 느낌이었다. 상을 받아서 그랬다는 게 아니다. 건방지게 한국영화의 진화도 거론했는데 그런 자리니까 거창하게 거론했을 뿐이다. 20년간 영화적 동반자, 동지로서 해온 입장에서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봉감독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살인의 추억'보다 몸무게가 굉장히 불어났다. 사진을 보면 2배가 됐다. 사람이 달라지고 그렇지는 않았다. 몸무게가 2배가 된것 말고는(웃음). 20년 전 '플란다즈의 개' 때 후반작업 하며 인사를 했었는데,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게 없다. 작업도 달라진 게 없다. 늘 배려하고, 감독으로서의 역량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 이런 것들이 변함없이 날카롭고 집요하다. 그러면서 결코 따뜻함을 걷어내지 않는다. 아무리 차가운 이야기를 해도 온기가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게 있다면 몸무게뿐.(웃음)

-'밀양'(2007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박쥐'(200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그리고 '기생충'까지 한국영화 영광의 순간마다 현장에 있었다.

"운좋게도 그랬다. 칸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보니 최고의 자리에, 3번 다 상을 받고 하는 현장에 계속 있었던 것이 영광스럽다.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제작보고회 때 봉준호 감독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좀 건방지게 감히 한국영화의 진화 이야기를 했다. 한 20년 전, 90년대 말부터 박찬욱 이찬동 홍상수 허진호 김지운 한국영화의 새로운 힘과 물결들이 20년의 결산을 맺는 걸 바라봤달까. 황금종려상을 받아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 '기생충'이란 영화를 통해서 한국영화의 작가들이, 감독들이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단련해온 모습이 여기서 정점을 찍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봉준호로 대변되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정점이랄까. 그런데 여기에 상까지 받고나니까…. 나름대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역시 옳다'는 생각이 들더라. 봉준호라서 다른 부분이 있나?

"봉준호 감독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이 가지고 있느 송강호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가장 여러번 작업한 다른 감독-박찬욱 김지운이 생각하는 송강호의 모습이 비슷한 것 같아도 다 다르다. 감독님마다 다르게 활용을 하시는 게 아닌가. '이런 모습이야 봉준호는, 이건 박찬욱이야' 설명은 못하겠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 다른 지점이 있다는 걸 말씀을 드리고 싶다.

▲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인터뷰. 제공|CJ엔터테인먼트
-도입부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같은 독특한 말투가 영화의 분위기를 알려준다.

"우리 기택네 가족을 설명하는 초반 장면을 그렇게 설정한 것은 관객들이 너무 반지하 공간에 깊숙이 들어오는 걸 경계한 것 같다. 약간 관망하는 느낌, 만화적인 요소랄까. 너무 심각하게 이 작품에 들어오지 말고 약간의 그런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봉준호 감독과 나눈 적은 없다. 나름대로의 추측이다."

-기택을 연기하며 가장 신경쓴 부분은?

"연체동물이라고 자주 표현을 했다. 그 중년 남자가 참으로 열심히 살았을 것 같다. 인생을 소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니까 기택이라는 사람이 연체동물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다. 어떤 환경이 오더라도 적응해야 한다. 혼합된 장르의 형식도 있지만 그 사람의 환경도 시시각각 변하는데 이걸 유연하게 기택답게 연기해야겠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중요한 순간에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는다.

"그것이 봉준호 감독 연출의 미학이다. 기택이라는 인물이 자존감의 붕괴를 느낄 때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가리고 싶은 것이다. 중요한 시점에서 눈을 잠시 감는 게 있다. 그런 것들도 일종의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을 때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기택의 자세랄까, 마음의 준비랄까."

-클라이막스엔 모든 것을 짧은 표정으로 모든 것을 설득해야 했다.

"한 2초간의 표정이 이 영화의 본질을 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런 밀도감있는 연기가 필요했다. 후반부 몇몇 장면이 그런 장면이 있다. 뛰어난 감독 밑에서 연기를 하다보니까 제가 봐도…."

-혁명가나 다름없었던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와 '기생충'의 기택의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남궁민수는 밖으로 나가자고 설파한다.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한다. 다르게 표현됐지만 기택도 똑같은 이야기인 것 같다. '기생충'의 '기'가 아니라 '상'에 밑줄을 그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다. '기'가 '공'이 되고 '상'이 되었으면 하는 비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닐까. 기택도 사실은 기택도 '기'가 아니라 '공'이 되고 '상'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남궁민수도 진정한 자유를 원했다. 어떻게 보면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인터뷰. 제공|CJ엔터테인먼트
-사극, 시대극, 실존인물 등을 그리다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다.

"일부러 시대극, 무겁고 진중하고 그런 영화를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다. 나름 의미있는 작품들을 추구하다보니까 최근 10년간 작품이 그렇게 됐다. 이번 '기생충'이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좋은,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는 변함없이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 좋은 작품이라는 게 개념이 포괄적이고 흥행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에게, 작품의 방향 등에서 늘 신선한 충격을 주려고 노력했다. 앞으로도 그런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기생충'은 앞으로 어떤 영화로 남을까.

"2달 뒤 또다른 영화를 개봉해야 하는 배우로서 끊임없이 연속되는 작업이 있다. (오는 7월 송강호가 주연한 '나랏말싸미'가 개봉한다. 세종대왕 역을 맡았다.) 하지만 '기생충'이란 작품이 영화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느 정점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자신있게 드릴 수 있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해 온 리얼리즘 세계의 진화일 수도 있고, 그런 점에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도 많은 훌륭한 감독과 배우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또다른 르네상스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뜻하는 것도 같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에도 함께하나.

제가 로카르노에서 8월에 큰 상을 받는다.(송강호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엑설런스 어워드'를 수상한다) 그 때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더라. 그때는 시간이 충분히 있을 테니까. 그래서 들어보려고 한다. 그래도 캐스팅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나.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좋은 작품으로 만나면 좋겠다. 로카르노가 기다려진다. 상이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봉준호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