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욱.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스포티비뉴스=대구, 유현태 기자] 정태욱은 대구FC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었고, 그 기회를 잡았다.

정태욱은 2018년 유소년 시절부터 몸담았던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이미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16강으로 이름을 알렸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기록상 194cm의 장신에 92kg으로 당당한 체구를 갖춘 정태욱은 차세대 수비수로 주목을 받았다. 다만 프로 무대는 높았다. 2018년 K리그엔 교체 출전으로 단 5경기만 나설 수 있었다.

2019시즌을 앞두고 대구FC로 이적해서야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주목받는 '태극전사'는 프로 축구 선수로 우뚝 서기 위해 1년을 준비해야 했다. 고민이 묻어나기 때문일까. 여느 23살보다 조금 더 철이 든 듯 진중하게 대답하는 정태욱을 지난 11일 대구의 숙소에서 만났다. "이제 한 걸음 뗀 것 같다"는 정태욱은 이제 자신의 축구 인생은 시작이라고 말했다.

◆ 컨디션: 코는 OK, 허벅지 근육이 문제…복귀 7월 말 예상

정태욱이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부상 때문이었다. 지난 5월 11일 열린 K리그1 11라운드 FC서울 원정에서 선발로 출전한 정태욱은 코에 피를 뚝뚝 흘린 뒤에도 풀타임을 뛰었다. 전반 38분 박주영의 공을 빼앗으려다가 출혈이 시작됐다. 후반 추가 시간 오스마르의 팔에도 맞았다. 정태욱은 "사실 아픈 것보다도 결과가 많이 아쉬웠다. 원하는 결과를 못 가지고 왔다"고 돌아봤다. '리턴 매치'였던 17라운드 서울과 홈 경기(1-2 패)는 "정말 이기고 싶었다. (경기 외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홈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이기고 싶었다. 아쉬운 상황이 많이 나왔다"면서 아까워했다.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정태욱은 출전 의지를 불태웠다.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치르며 수술을 뒤로 미뤘다. 정태욱은 "코뼈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나중에 수술하려고 한다.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라. 축구를 하다 보면 부딪힐 일이 많은데 그때 다치면 또 수술을 해야 한다. 아예 나중에 할 생각이다. 혹시 모른다"면서 일단 코는 경기 출전에 문제 없다고 말했다.

서울과 리턴매치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태욱은 전반 36분과 후반 29분 2번이나 골대를 맞췄다. 정태욱은 "첫 번째 (머리에) 맞출 때는 서울 골키퍼 형이 나오고 있는데 지나쳐갔다. 골대가 비어 있어서 들어가겠다 싶었다. 머리를 댔는데 볼을 보니까 살짝 옆으로 가더라. 큰일났다 싶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17라운드 서울전 이후 정태욱은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코뼈는 아물었지만 허벅지가 좋지 않아서다. 정태욱은 "허벅지 쪽 근육이 좋지 않다. 운동은 하고는 있는데 컨디션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 크게 안 좋은 것은 아니다. 기간은 정확히 모르겠다. 빨리 복귀하고는 싶다. 7월 내에 복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 '따봉' 마스크를 착용하고 출전한 정태욱 ⓒ한국프로축구연맹

◆ 프로 1년차: 기대와 다른 현실을 만날 때

K리그1에서 뜨거운 화제의 주인공이 됐지만 2018년의 정태욱은 벤치가 더 익숙했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그는 "프로 1년차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제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는데. 초반에 실망하는 상황이 생기니까 정신적으로 무너졌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아 이렇게 무너져만 있어도 안 되는구나, 그냥 하자' 싶더라. 후반기엔 좀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출전 기회가 적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게 힘들더라. 기대치가 있는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으니까.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정태욱은 이 짧지만 길었던 인고의 시간을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는 "1년밖에 어려운 시간이 없긴 했지만, 떨어지는 그래프였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이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점을 제주에서 많이 배웠다. 경기를 뛰지 않을 때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23살. 운동 선수가 아니라면 사회 초년생으로 혹은 대학생으로 정신이 없을 시기. 매번 경쟁해야 하고, 경기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축구 선수의 숙명이다. 정태욱은 "운동하는 친구들을 보면 일단 철이 드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게 좀 다르다. 아무래도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그래야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담담히 말했다.

▲ 가족적인 분위기의 대구FC ⓒ대구FC

◆ 대구FC: 적응을 도운 가족

정태욱은 2019년 1월 정우재와 트레이드되면서 대구의 유니폼을 입었다. 새로운 도전에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일었다. 정태욱은 "대구로 오면서 출전 기회를 더 받고 싶어서 '잘해보자'라는 확실한 각오를 하고 왔다"며 "제가 처음 들어갔을 때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분위기를) 흩트려뜨리지 않을까 걱정을 좀 했다. 제가 못하더라도 형들이 다들 잘해주셔서 '묻어'갔다. 어느 정도 지나고 보니까 껴 있더라"며 웃었다.

기대감은 동년배 '친구'들의 선전에서 시작됐다. 정태욱은 "친구들이 대구에서 많이 뛰고 있어서 가면 좀 뛸 수 있을까 싶긴 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대원이는 전부터 대표팀에서 많이 만났다. 올해 동계 훈련에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른 사람이 돼 있더라. 그 전에도 잘했지만 조금 더 노련해지고 늘었더라"며 "(김)대원이, (정)승원이, (정)치인이, (박)한빈이, (장)성원이까지. 작년에도 너무 잘했다. 부러웠다. 자극이 됐다"고 덧붙였다.

어려웠던 시기를 보내고 만난 대구는 그래서 더 소중했다. 운도 따랐다. 대구의 가족적인 팀 분위기가 적응에 도움을 준 것이다. 나이가 비슷한 어린 선수들이 많고, 팀의 선배 선수들도 형처럼 잘 챙겨준다. 정태욱은 "처음엔 대구라는 팀이 어떤 경기를 펼치는지에 빠르게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대구라는 팀이 가족같은 분위기여서 적응을 도와줬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주장 한희훈은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준다. 정태욱은 "어린 선수들이 편하다. 분위기 자체가 편안하니까 형들에게 이야기하기 좋은 분위기다. 팀 분위기가 희훈이 형으로 인해 편해지니까. 저희가 먼저 하기 전에 희훈이 형이 '파이팅을 넣어'버리니까 저희도 더 하려고 하게 된다. 그렇게 팀 분위기가 좋아지더라"고 설명했다.

정태욱도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차근차근 성장한다. 정태욱은 "큰 성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걸음은 뗐다는 생각은 든다"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올해만 벌써 K리그 11경기를 포함해 15경기에 나섰다. 정태욱은 "공중볼에선 저 스스로도 자신감이 많다. 그거 하나라도 나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이어 정태욱은 "제가 느끼기엔 느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힘이 붙으면서 평균은 하는 것 같다. 느리진 않은 것 같다"며 주력도 큰 문제는 없다고 자신했다.

▲ 세트피스는 나의 힘, 높이 솟구친 정태욱(가운데) ⓒ대구FC

◆ 목표: 11경기 무실점, 공격 포인트 5개

시즌이 절반쯤 지난 시점. 대구도 주전들의 줄부상 속에 위기를 맞았다. 정태욱 역시 6월 말부터 출전이 불가능했다. 정태욱은 "몸이 좋든 안 좋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고 아쉽다. 저희는 올해 분위기가 좋았고 위기가 와도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팀으로 가려면 반등할 수 있는 힘이 생겨야 한다. 이기겠죠. 다음 경기부터. 어제 경기도 이겼으면 했는데 5위로 내려앉은 상태라서. 경기도 많이 남았고 충분히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팀에 신뢰를 보냈다.

복귀와 함께 힘을 보태는 것이 목표다. 정태욱은 우선 수비수로서 본연의 임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태욱은 "수비니까 무실점이 많아지면 그런(영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실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골키퍼나 수비수에게는 공격수가 골을 넣는 것만큼 중요하다. (남은 18경기 가운데) 욕심을 보태서 11경기는 무실점을 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대구에 주고 싶은 또 하나의 선물은 세트피스에서 나오는 공격력이다. 정태욱은 "(세트피스에서 공격하고 싶은)욕심이 있다. 세트피스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어떻게든 세트피스를 만들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공격 포인트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항상 있는데 쉽진 않다. 올해 대구에 오면서 생각한 것은 공격 포인트는 5개였다. 리그에선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건 채우고 가야될 것 같다"며 목표를 밝혔다. 

정태욱은 "세징야나 대원이, (강)윤구 형 누가 차든 킥이 날카롭다. 세트피스 훈련도 많이 시켜주신다. 그래서 더 날카롭지 않은가 싶다. 형들이 다 넣고 싶어하는 생각이 다 있다. 다 골을 넣으려고, 어떻게든 머리에 맞추려고 하는 것 같다. 기회가 있긴 했는데 아쉽다. 헤딩 기술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골대에 맞은 것도 제가 제대로 박았다면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연습하다 보면 빛을 발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또 하나의 목표는 팬들을 위해 좋은 경기력으로 결과를 내는 것. 그리고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정태욱은 "저희가 잘해드려야 할 것은 경기력, 이겼을 때 함께 즐거워하고, 저희가 나갔을 때 팬들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홈에선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하면서 사인도 해드리려고 한다"고 말한다.

90분 풀타임 뛰고 나가면 힘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정태욱은 "아니다. 저희는 이렇게 많이 찾아와주시고 관심을 주시는 게 더 해드리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 사인을 전부 다 해드리고 싶은데 버스 출발 때문에 가야 할 때 죄송하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정태욱의 마음 속엔 '대구 팬'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스포티비뉴스=대구,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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