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일제에 맞선 독립군 최초의 승리.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는 국사책 속 한 줄 요약으로 남은 벅찬 순간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한 명의 장군이 아니라 무명의 용사들이 거둔 핏빛 승리는 뜨겁고 우직하다.

굶주린 아이에게 일본군이 준 건 감자 몇 덩이와 폭탄 꾸러미였다. 형을 지키려 폭탄을 끌어안고 죽은 동생을 가슴에 묻은 황해철(유해진)은 독립군이 됐다. 누나를 지켜보겠다고 가짜 수류탄을 끌어안던 소년 이장하(류준열)도 자라 독립군 분대장이 됐다. 해철이 장하를 친동생처럼 여기게 된 건 운명이었으리라. 독립운동 자금 운반책과 접선하려던 해철은 외로운 작전에 나선 장하를 돕겠다고 나선다. 못마땅해 하던 마적 출신 마병구(조우진)도 뜻을 함께한다. 함께한 건 이들 뿐이 아니다. 배 타던 어부도, 피난가던 농부도 독립군이 됐다. 나라 잃은 설움으로 뭉친 팔도의 무명 용사들은 수백의 일본군 정예부대에게 쫓기며 필사의 작전을 벌인다.

승리의 서사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 수없는 수난과 침탈 속에 건져 올린 승리의 순간은 1700만 신화를 쓴 '명량'으로, '인천상륙작전'으로, '안시성'으로 관객과 만났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속의 빛나는 승리 1920년 6월의 '봉오동 전투'가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첫 전투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피로 쓴 '대한독립만세'. 그 붉은 피가 죽어가는 독립군이 흘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해치운 일본군의 것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명량'의 빅스톤픽쳐스가 제작하고 김한민 감독이 기획한 '봉오동 전투'는 몇몇 대목에서 '명량'을 떠올리게 한다. 비겁하게 우회하거나 우아하게 비유하지 않고 우렁찬 '대한독립만세'를 향해 뚜벅뚜벅 나간다. 걸음걸음에 힘과 무게가 실린다. 처절한 희생보다 꼿꼿한 저항과 통쾌한 승리에 집중한다. 동시에 '봉오동 전투'는 여러 모로 '명량'과 다르다. 무엇보다 역사적 승리를 위대한 1인의 업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농사지을 땅, 죽어 묻힐 땅을 찾고자 전국 각지에서 뜻을 모은 이름없는 독립군들이 '봉오동 전투'의 진짜 주역이다.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벅찬 자부심이 실린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울컥하게 다가온다. 

▲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화면이 기울어진 착각마저 드는 엄청난 경사를 달리며 만들어낸 전투신들은 곳곳에 땀방울이 역력하다. 옥수수 밭과 소나무 숲, 초원과 계곡, 능선들 등 화면 가득한 초록의 자연도 '봉오동 전투'만의 분위기를 만들며, 긴박한 전투 가운데 색다른 감흥으로 남는다. 다만 최후의 전투에 다다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다. 

완급조절이 절묘한 캐릭터들은 두루 매력적이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전설적 독립군 황해철 역의 유해진은 멋지지만 멋스럽지 않게, 묵직하지만 숨막히지 않게 균형을 잡는 중심이다. 엘리트 독립군 이장하 역의 류준열은 별다른 대사 없이도 뜻과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며 배우로서의 힘을 입증한다. 저격수 마병구 역의 조우진도 본능적으로 밸런스를 맞춘다. 악랄한 일본군이나 조연들도 하나하나 존재감이 분명한데, 춘희 역 이재인은 등장마다 눈을 사로잡는다. 곱등이 같은 일본대장으로 분한 박지환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속 일제의 만행은 악랄하다. 굶주린 아이에게 폭탄을 주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양민을 학살하고,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그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절로 끓어오르는 분노는 독립군의 전투신에 고스란히 실린다. 일본군과 싸우는 독립군의 전투도 거침없이 묘사된다. 잔혹하기도 하다. '봉오동 전투'는 그 모두를 뜨거움으로 덮는다. 일본의 무역보복 이후 반일감정이 끓어오른 이때 '봉오동 전투'의 뜨거움이 관객과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8월 7일 개봉. 러닝타임 134분. 15세 이상 관람가.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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