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의 오오렐레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전북 현대는 지난 두 시즌 우승 레이스를 다소 싱겁게 끝내버렸다. 2017시즌엔 제주 유나이티드와 승점 9점, 2018시즌엔 경남FC를 무려 21점 차이로 따돌리고 K리그1 챔피언이 됐다. 전북이 독주하면서 사실상 견제나 도발은 무의미했다.

2019시즌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25라운드 종료 시점까지 순위표 최상단엔 전북이 아닌 울산 현대의 이름이 있었다. 울산이 16승 7무 2패로 승점 55점을, 전북은 지난해보다 조금 고전해 15승 8무 2패 승점 53점을 기록했다. 특히 울산은 5월 12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11라운드에서 전북을 2-1로 꺾더니, 전주성에서 열린 7월 14일 21라운드에서도 1-1로 비기며 상대 전적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분명 지난 몇 시즌과 달랐다.

그리고 지난 16일 26라운드에서 전북과 울산이 만났다. 직접 순위 경쟁을 벌이는 팀간 경기엔 '승점 6점'이 걸렸다고들 한다. 상대의 발은 묶어둔 채 치고 나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북이 추격하며 분위기를 바꾸거나, 혹은 울산이 선두를 공고히 지키거나. 이 경기엔 꽤 큰 의미가 있었다.

▲ 활발하게 움직인 문선민 ⓒ연합뉴스

"전북에서 보내는 첫 시즌인데 팀에 오래 있었던 선수들을 보면 큰 경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더 뜨겁게 준비하는 것 같다. 이 팀이 강팀이라고 느낀다. 나도 전북 DNA를 터득하고 있다." - 문선민

전북은 과연 승부처에서 강했다. 전북 선수들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중요한 경기를 앞두곤 팀 내 분위기가 변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우승과 경기 경험들이 모인 결과물일 터. 중요한 일전에서 3-0 승리를 따내며 선두 탈환에 성공했다.

간절하게 준비한 이들은 또 있었다. 바로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모인 1만 8101명의 관중이다. 금요일 저녁에 열린 경기, 그것도 퇴근 시간에 바투 붙은 밤 7시에 킥오프하지만, '전주성'엔 이번 시즌 2번째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맞대결이 갖는 중요성과 팬들의 기대감을 반영한 수치였을 것이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거쳐선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전주성은 평소보다 더 뜨거웠다.

▲ 전북 팬들을 웃게 한 그 이름, 로페즈. ⓒ한국프로축구연맹

전반은 팽팽했지만 후반 들어 전북 쪽으로 경기가 기울었다. 후반 5분 전북이 전방 압박에 성공하고 문선민이 돌파를 시도하던 와중에 윤영선의 자책골이 나왔다. 전북 서포터가 모인 N석에는 하나의 걸개가 솟았다. '주민규 들리냐.' 지난 21라운드 맞대결을 염두에 둔 '반격'이었다. 당시 주민규는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 전북의 골망을 흔든 뒤 손을 귀에 가져다 댔다. 아마도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실점 직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전북 팬들을 향한 '도발'이었다. 전북 팬들은 그날의 주민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불과 110여 초 뒤 전북의 득점포가 또 불을 뿜었다. 전북이 첫 번째 득점을 자축하던 '오오렐레' 세리머니는 환호성에 묻혀 흐지부지 끝이 났다. 득점자 로페즈의 이름을 시원하게 연호하고 나서 다시 한번 '오오렐레'가 전주성을 울렸다.

3번째 골로 전북 팬들의 어깨엔 힘이 더 들어갔다. 후반 18분 로페즈가 쐐기 골을 넣자, 일부 전북 팬들은 피치를 등진 채 3번째 '오오렐레'를 시작했다. 더이상 경기를 볼 필요도 없다는 일종의 승리 선언이다. 전북은 그동안 승점 3점이 꽤 익숙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년과 다른 경쟁 구도 속에 그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타이밍이었다.

▲ '잘 가세요' 전북 팬들의 걸개.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그 한 마디였었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인사만 했었네."

승리를 만끽하기 위해 전북 팬들은 또 일을 벌였다. 경기 종료로 향하자 관중석에서 휴대폰 플래시가 켜지기 시작하더니, 추가 시간 4분쯤엔 이현의 '잘있어요'가 경기장을 울렸다. 원래는 울산의 응원가로 잘 알려진 그 곡이다. 울산 팬들은 홈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잘 가세요~, 잘 가세요'를 부르며, 패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원정 팀과 작별한다. 이번엔 전북 팬들이 울산 팬들의 쓰린 상처에 소금을 비비며 '잘 가세요'를 불렀다.

전북 팬들의 응원에 독이 오른 것 같았다면 과한 인상일까? 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싸움. 이번 경기는 전북의 완승이었지만 울산과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북으로서도 안심하긴 이르다. 완승 분위기에서 확실히 기를 꺾고 가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간 느껴보기 어려웠던 선두 경쟁은 팬들마저 뜨겁게 만들었다.

26라운드가 한창이던 17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K리그1,2 모두 지난해 기록한 총 관중을 일찌감치 넘어섰다는 것. 26라운드 6경기 가운데 4경기만 치른 시점에서 지난해 124만 1320명 총 관중을 넘어 125만 575명을 기록하게 됐다.

2019시즌의 관중 증가는 K리그를 즐기는 이들이 늘었다는 '결과'기도 하지만, 동시에 K리그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전북 팬들의 얄미운 도발들이 반갑다.

투쟁심 없는 경쟁 구도란 싱거울 수밖에 없다. 전주성에서 굴욕을 맛보고 돌아온 울산 팬들이 전북을 안방에서 꺾고 "잘 가세요"를 돌려주길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까. 전북의 팬들도 울산 원정에서 다시 한번 "잘 있어요"를 외치며 우승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을 것이다. 전북과 울산은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해서 맞대결을 한 번 더 앞두고 있다.

▲ 전북의 3골 차 완승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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