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제공|CGV아트하우스

[스포티비뉴스=유지희 기자]"밀당은 여느 멜로 작품에서나 볼 수 있지 않나.", "나는 연인뿐 아니라, '나 자신에서 비롯되는' 관계에 집중했다."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 제작 무비락 정지우필름 필름봉옥)은 멜로영화이지만 그 흔한 밀당이 없다. 주인공들 만남과 이별에 영향을 주는 큰 외부 자극도 없다. 그들 자신의 '내면'에서 오롯이 관계가 출발하고 끝이 난다. 그래서 로맨스는 외피일 뿐이다. 정지우 감독은 멜로를 끌어왔지만, "인간 내면의 풍경에 따라 변하는 관계"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그 안에 감춰뒀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처럼, 우연히 만난 두 사람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가 오랜 시간 엇갈리고 마주하길 반복하며 사랑을 그려나가는 이야기.

지난 1999년 '해피엔드'로 데뷔한 후부터, 정지우 감독은 '사랑니'(2005) '은교'(2012) 등 욕망과 금기에 천착한 작품들을 내놨다. '유열의 음악앨범'에는 전작들과 같은 '파격'이 없다. 하지만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스포티비뉴스가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던 정지우 감독을 만났다.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제공|CGV아트하우스

이하 정지우 감독 일문일답이다.

-'침묵'(2017) 이후 꽤 빨리 신작을 들고왔다.

"영화 만드는 게 재밌다. 자주 하고 싶지만 워낙 큰 돈이 드는 거라서 생각보다 뚝딱 안 된다. 제작사인 무비락 김재중 대표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만들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환경이 다 맞춰졌다."

-영화의 출발점은.

"제안을 받고 2년 전 초고를 읽었는데, 이런 말 하는 게 민망하지만, 관객으로 보고 싶었다. 사실 처음엔 만들 자신이 없었다. 너무 어렵더라."

-왜 어렵다고 생각했나.

"누가 만들어도 그렇게 여길 거다. 이런 소재, 이런 정도의 자극을 다루는 건 쉽지 않다. 또 음악 영화이고 시대극이기 때문에 예산이 적을 수 없다. 제작비는 많이 들어가는데 흥행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게 모순적이지 않나. 그래도 이런 영화를 좋아하고, '이런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동류의 장르를 14년 만에 선보인다. '사랑니' 이후 너무 오랜만 아닌가.   

"멜로 형태의 작품들을 해와서 지금 해도 나름 일리가 있지 않나.(웃음) '은교'도 그런 셈이고. 내게는 멀리 있던 정서가 아니었다."

-로맨스물을 14년 만에 만든 소감은.

"더 나이 들었기 때문에 조금 더 원만한 상태의 정서가 있더라. 내 지인은 영화를 보고 '송곳 같지 않다'는 말을 했는데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예전에는 훨씬 더 예리하고 예민하게 굴었다'고(웃음). 지금은 더 부드러워졌다."

-마치 한 발자국 떨어져 현우와 미수의 사랑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기존 멜로 작품 표현과 다르고, 여기에서 설렘을 약하게 느끼는 관객이 있을 텐데.  

"100% 취향 차이다. '새롭다'와 '낯설다'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다'는 건 내가 만든 방식일 수 있는데 우리가 그런 영화를 안 본 지 좀 됐을 수도 있다. '어느 게 더 낫다'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만 '다른 걸 봤다'는 건 창작물로써 장점이 될 수 있는 요소다. 본 걸 또 보는 것만큼 지루한 게 없지 않나."

-영화를 만들면서 '사랑니'를 다시 떠올렸을 텐데.

"최근 '사랑니'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필름 상태로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좋더라. 그 나이대의 내 기세가 느껴지기도 했다(웃음). 이해와 묘사에 대한 기운이 지금과 굉장히 달랐다. 더 '청춘' 영화였던 것 같다."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는 누구나 겪는 첫사랑, 또는 '청춘과 사랑' 소재다. 자전적인가.

"구체적 사건은 자전적이지 않은데 본질적 면에선 그렇다.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에 대한 관심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다. 관계는 상대, 그리고 상대의 어떤 행동 때문에 정의된다는 걸 누구나 다 알지 않나. 그래서 그 지점은 내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관계를 망치는 이유가 내면에 있다면', '관계를 변화하는 요소는 내 속의 어떤 것이라면' 이런 물음과 고민을 해왔다. 그런 지점이 스며들고 녹아있다면, 충분히 자전적인 것 같다."

-현우와 미수의 관계는 외부 사건 자체에 영향 받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 내면의 속도에 따라 흘러가더라.

"이성뿐 아니라 친구, 부모 관계도 그렇다. 관계에 반복적으로 미치는 자신만의 어떤 요소가 있다. 미수는, 종우(박해준) 대사처럼, '기쁜 일은 그저 기뻐하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건 죽을 것처럼' 하는데 그건 반복적 습관이라 생각한다. 모두에게 있는 점이다. 그 습관을 본인이 인식하는 과정이 있다면, 관계가 훨씬 더 원만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생각한다. 덜 슬퍼할 수 있다."

-이런 고민은 언제부터했나.

"어느 순간, 내 내면의 풍경에 대해 자꾸 고민하게 됐다. 내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상대방과 더 부드럽고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참 그게 안 되더라."

-현우와 미수는 외부 자극이 발생하면, 바로 반응하기보다 먼저 스스로 침잠하고 그 결과를 밖으로 발산한다. 그래서 서사들은 자극적이지 않고 농도가 옅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더라.   

"정확히 딱 그 지점을 그리려 했다. 굉장히 선명한 자극을 (직접적으로) 영화 안에 끌어오는 건 개인적으로 난이도가 쉽다고 생각한다. 선명하고 굵은 그림이 그려지면, 내면이 흘러가는 과정도 덜 보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사를 미묘하게 옅은 농도로 그리려 했다."

-영화는 미수의 시선인데 현우의 서사를 가져간다. 무엇을 의도했나.

"서술 방식을 정확히 그렇게 택했다. 현우의 서사 라인 없이 미수의 내면을 그리는 건 정말 어렵다. 마음의 풍경을 그린다는 건 그만큼 더 미묘하고, 모호하고, 확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수의 마음 풍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건 현우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미수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영화 전체 이야기의 구조였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미수인 건가.

"그렇다."

-애초 시나리오는 새드엔딩에 가까웠는데.   

"감독마다 작업 스타일이 다른데 어떤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감독은 편집실에서 화학적으로 크게 움직인다. 나는 후자다. 사실 뭔가를 크게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둘이 헤어졌고, 인생이란 건 너무 씁쓸한 거야'와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각자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둘의 관계가 성숙해가고 있다'는 걸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결말로 끝났어도 비관적이지 않다. 이 영화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제공|CGV아트하우스

-미수를 연기한 김고은에게 구체적으로 연기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디렉션은 어떻게 했나.

"얘기를 많이 나누긴 했지만, 예를 들어 '지금 미수 상태가 안절부절 못해'라는 정도로만 말했다. 그걸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 그건 배우가 그리는 부분이다."

-김고은은 어떻게 연기하던가.

"정말 빼어난 배우다. 예를 들면, '은자(김국희)가 감당하고 있는 현실에 미수는 기분이 나빠, 그래서 폭력은 아니더라도 바닥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라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김고은이 그걸 연기로 보여주더라. 뛰어난 배우다."  

-김고은은 '은교'로 데뷔했다. '은교' 이후 6년 만에 만난 김고은은 어떤 배우가 됐나.

"'20대에 뭔가 평범한 고민을 거쳐온 게 너무 좋았다. 배우들은 밖을 쉽게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세상이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위험한데, 김고은은 그 나이에 걸맞게 자신의 세계를  넓히려 노력했던 것 같더라. 그런 시간에서 고민과 아픔을 겪은 게 좋았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판타지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김고은은 연기를 '스스로' 하고 있는 느낌이더라. 데뷔작을 함께 해서 느낌이 남다를 텐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배우로서 자신의 길을 가는 거다. 배우는 그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안심되더라."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제공|CGV아트하우스

-정해인은 드라마에서 멜로를 많이 보여줬지만 스크린, 더구나 정지우 감독 작품에선 어떻게 비춰질지 예상이 잘 안 됐다. 캐스팅 이유는 뭔가.

"드라마와 영화를 구분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해인의 진심 어린 태도, 그거면 됐었다. 그걸 믿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작품 촬영 순서로 치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유열의 음악앨범'-'봄밤'(2019)이다. 정해인의 궤적을 따라가면 물론 연기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몸통은 변하지 않는다. 그 모든 작품에는 정해인의 '진심'이 담겼다. 실제 무대인사를 가도, 팬들과 악수를 해도 언제든 마음을 다해 한다. 그런 점이 내게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정해인이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어떻게 비춰지길 바랐나.

"현우 대사 중에 '나는 세상에 한, 두 가지만 있으면 되는데'라는 게 있다. 실제 인간 세상에선 거짓말이다. 누가 그 말을 하면 심지어 재수 없을 수 있다.(웃음) 인간이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더 가지고 싶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현우는 그 말이 진심이고, 정해인이라서 믿어진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는 정해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현우에 담으려 한다. 감독이 생각하는 경계 안에서 그런 얼굴을 끄집어낸다는 건 어려운 작업일 수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기술적 평가라면 점수로 매길 수 잇지만, 연기는 그럴 수 없지 않나. 하지만 정해인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핵심은 '진심'이기 때문에 불만이 없었다. 정해인은 사인을 할 때도 진심을 다하는 사람인데.(웃음)"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유열의 음악앨범'은 지난 28일 개봉했다.

스포티비뉴스=유지희 기자 tree@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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