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범근과 이영표가 한국 축구를 위해 고언했다.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한준 기자] "조금 더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해 배고팠으면 좋겠다."

차범근은 솔직했다. 볼프강 레헌호퍼 주한 독일대사관 일등서기관이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이긴 경기를 말하며 "독일 축구가 한국에게 한 수 배웠다. 독일이 한국의 투지와 의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겸손한 말씀이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며 말을 이었다. 립서비스성 발언이었지만, 여전히 한국 축구의 갈길이 멀고, 한국 축구가 독일 축구에 배울 점이 훨씬 더 많다는 현실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4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5층에서 열린 저먼 페스트 앳 롯데월드타워 행사는 주한독일대사관과 롯데가 함께 기획한 독일 문화 행사다. 독일 맥주를 마시며 독일 축구를 즐기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이 행사에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과 이영표가 참석했다.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1호 한국인 선수이자, 유럽 무대에서 인정 받은 첫 번째 한국 선수다. 1970~1980년대에 세계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던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선수로 인정 받았고,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다. 이제는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다. 손흥민이라는 걸출한 후계자도 등장했다.

차범근은 그럼에도 아직 한국 축구가 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범근은 선수들의 정신 자세에 대해 아쉬움을 말했다. 요즘 말로 '꼰대'스러울 수 있지만, 차범근은 그 생각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유럽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축구가 발전했다는 간접적 증거다. 더 많은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뛰었으면 좋겠다.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 시대는 내가 가진 생각이나 내가 한 것이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서 상당히 배고파했고, 목 말라 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축구 아닌 다른 것을 나로 하여금 할 수 없게 만들고, 축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는 시대적으로 국가관이나 사명감이 강했다. 한 순간도 팬들의 사랑 잊지 않았고 그래서 잘 뛸 수 있었다."

▲ 독일 문화 행사에 참석한 차범근과 이영표 ⓒ한준 기자


차범근 감독이 현역이던 시절은 헝그리 정신이 자연스러웠다. 저성장 시대를 맞은 요즘 세대에는, 당시의 교훈이 통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요즘에는 노력하라, 간절하라는 말보다 즐기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차범근은 아랑곳않고 말을 이었다. 

"젊은 선수들, 우리 아들(차두리)만 해도, 제가 가끔 아들에게 얘기를 하면, 우리 아들이 반기를 많이 든다. 그래도 좀 사명을 갖고 책임을 가지라고 하는데, 후배들이 축구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자기가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해서 간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해서 배고팠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후배들에게 하고 싶다. 배고픈 것을 경험한 사람은 배고픔이 어떤 건지 안다. 요즘에는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어려운 배고픈 경험을 많이 안 했기에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져달라는 말 전하고 싶다."

이영표는 공격수와 미드필더 포지션에는 유럽 진출 선수가 많은데, 이영표와 같은 수비수 포지션에는 배출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지도자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한국 축구 지도자들의 분발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수는 과거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표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제가 뛸 때의 저보다 좋은 능력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국 선수들도 발전하지만 해외 선수들도 발전한다. 공격수는 창의적인 모습, 타고난 것과 개인적 능력이 필요하지만 수비수들은 어떻게 잘 배우냐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 좋은 선수들을 키우기 위해 수비적으로 좋은 방법의 지도력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 좋은 지도자가 많이 계시지만 좋은 수비를 가르치는데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커버하는 지 가르치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선수에게 무엇을 더 요구하기 보다 지도자에게, 특히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게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선 어느 한 분야의 성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수들은 더 간절해야 하고, 지도자들도 더 공부해야 하며, 산업적으로, 행정적으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차범근과 이영표는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상업적으로나 전력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구단을 사유화할 수 없는 제도를 유지한 독일 모델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작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사회자의 말대로 "축구 토론회"같았던 분위기가 차범근과 이영표를 통해 연출됐다.

스포티비뉴스=잠실,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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