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정우영, 10일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마치고.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2019년 LG 트윈스는 세 팀이 승률 0.600을 넘기는, KBO리그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승률 인플레 시즌에서 79승 1무 64패로 3위에 올랐다. 팬들은 LG를 '강팀 판독기'라 불렀다. 

LG와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팀은 전부 '톱3'다. LG는 SK와 두산에 각각 6승 10패, 키움에 7승 9패로 밀렸다. 여기서 발생한 승수 -10은 6위 아래 하위권 상대로 채웠다. kt부터 롯데까지 5개 팀으로부터 +25를 만들었다.

충분히 성공적인 시즌이었지만 포스트시즌 전망까지 밝지는 않았다. SK 두산 키움 '톱3'상대 약세가 계속된데다, 정규시즌 마지막 주는 타선이 힘을 잃었다. 마지막 7경기에서 2승 5패했고 득점은 10점 뿐이었다.

9월 타율 0.421로 상위 타순을 이끌던 주전 유격수 오지환이 빠진 기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남은 주전 선수들도 대부분 감이 떨어진 상태로 포스트시즌을 준비해야 했다. 불펜 투수들은 시즌 초반부터 혹사 논란에 휘말렸다. 팬들과 현장의 시각은 평행선 마냥 차이가 컸다. 

반대로 NC는 시즌 막판 경기력이 오르는 중이었다. 어쩌면 와일드카드 결정전 최초의 업셋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혹은 기대 속에 포스트시즌이 막을 올렸다. 

▲ LG 구본혁은 주전 유격수 오지환의 부상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웠다. 유지현 코치는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야구장 안에서는 강한 선수"라고 구본혁을 설명했다. ⓒ 곽혜미 기자

◆ 엇갈린 시작, 튼튼한 구본혁과 위태로운 고우석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하루 앞둔 2일 LG는 잠실구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올 시즌 주장 김현수가 꾸준히 강조한 대로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읽혔다. 

데뷔 후 처음 포스트시즌을 경험하는 신인 정우영, 새로운 마무리 고우석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과 말투로 취재진을 만났다. 정우영은 능청스러운 여유로 자신감을 보였고, 고우석은 무심한 듯 당당했다.

2일 김현수는 오지환 대신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게 된 구본혁의 자신감을 올려주기 위해 수비 훈련에서 "좋아졌다"는 말을 반복했다. 구본혁은 3일 경기를 앞두고 "(오)지환이 형 빨리 왔으면 좋겠다"면서도 "키움 친구(송성문)한테 물어보니 포스트시즌이라고 공이 다르게 오지는 않는다더라. 첫 타구만 잘 처리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1회부터 첫 타구로 팝업 플라이가 나왔다. 구본혁은 이날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공격에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4회 선두타자로 나와 안타로 출루했고, LG는 여기서 2점을 달아났다.

▲ LG 고우석은 포스트시즌 4경기에서 2세이브 1패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 곽혜미 기자
케이시 켈리의 6⅔이닝 1실점, 차우찬의 1⅓이닝 무실점 투구로 승기를 잡은 LG였지만 9회 믿었던 고우석이 흔들리면서 잠시 위기를 맞이했다. 1사 1, 2루에서 김태진의 빗맞은 안타가 나와 만루가 됐다. 고우석은 박석민과 노진혁을 모두 우익수 뜬공으로 잡고 첫 포스트시즌 세이브를 완성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박용택은 "우리끼리는 어렵게 가다 역전당하면 안되지만, 이렇게 위기를 겪어 보고 막는 것도 좋다고 했다"며 웃었다. 고우석 역시 좋은 경험이 됐다며 늘 그렇듯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렇게 보였다. 

▲ LG 류중일 감독(왼쪽)과 키움 장정석 감독. ⓒ 곽혜미 기자

◆ "3승으로 플레이오프 가겠습니다"  

류중일 감독은 미디어데이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5일 준플레이오프 출사표를 던지면서 "3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규시즌에서 3위 키움에 7경기차 4위였던 LG지만 언더독을 자처하기보다 당당하게 맞섰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젠체하는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으나 류중일 감독의 "3승" 발언이 향하는 곳은 선수단과 팬들이었고 당사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포스트시즌은 전쟁이라고 떠들면서 경쟁심을 부추기는 동시에 '이 바닥 겸손해야 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대답이었다.  

결과를 떠나 경기 내용은 키움과 대등했다. 선발투수들의 압도적인 투구가 LG의 가장 큰 힘이었다. 1, 2차전 경기 양상은 비슷했다. 1차전 선발 타일러 윌슨은 8이닝 동안 7회를 빼고는 매번 주자를 내보내면서도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득점권에서 맞은 안타는 단타 하나가 전부. 이마저도 2루 주자의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차전 선발 차우찬은 박병호를 세 번 만나 전부 커브로 헛스윙 삼진 처리하는 과감한 승부로 7이닝 1실점을 완성했다. 2경기 합계 선발 15이닝 1실점. 그러나 LG는 고척돔 원정경기를 전부 키움에 내줬다.

2차전까지 나머지 4이닝 동안 불펜에서 나온 실점이 5점이었다. 고우석이 ⅔이닝 2실점, 김대현이 ⅓이닝 2실점, 송은범이 ⅔이닝 비자책 1실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절대적인 신뢰를 받던 고우석의 연이은 부진이 치명타였다. 

▲ LG 타일러 윌슨(왼쪽)과 차우찬. ⓒ 곽혜미 기자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 1사 만루 위기 자초에 준플레이오프 1차전 끝내기 홈런 허용, 2차전 동점 적시타 등 결정적인 상황에서 정규시즌의 위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고우석은 정규시즌 71이닝 동안 홈런을 단 4개만 맞았고, 득점권 피안타율은 0.105에 불과했다.

3차전에서 진해수(1⅓이닝)-정우영(⅔이닝)-고우석(1이닝)의 3이닝 무실점에 힘입어 4-2로 승리한 LG, 4차전은 5회까지 5-3 리드를 잡았다. 그런데 결과는 5-10 역전패. 이번에도 불펜 뎁스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LG가 차우찬을 6회 1사 1, 3루에서 투입하는 강수를 둔 끝에 동점을 허용한 반면 키움은 다양한 유형의 불펜 투수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해 LG 타선을 침묵에 빠트렸다. 

시즌 불펜 평균자책점은 키움이 3.41, LG가 3.78로 큰 차이가 아니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키움에서 20경기 이상 출전한 불펜 투수 전원이 3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반면 LG는 고우석(1.52)과 김대현(2.17), 진해수(3.43)의 지분이 절대적이었다. 

류중일 감독이 섣불리 3승 선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전력에서 키움이 더 우세했다. LG는 단기전에서 그 차이를 메우지 못했다.   

▲ LG 선수단이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마치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곽혜미 기자

◆ 81승 1무 67패에서 배운 것 

LG는 지난 2년 동안 가을 야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LG 선수들의 포스트시즌 경력은 NC와 키움 선수들과 비교할 것이 못 됐다. 김현수, 김민성, 박용택 정도를 제외하면 큰 무대가 낯선 선수들이 많았다. 올해 처음 포스트시즌에 나서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신인 구본혁과 정우영은 물론이고 입단 9년째인 이우찬, 12년째인 전민수도 이번에야 가을 야구에 데뷔했다. 포수 김재성과 내야수 신민재, 투수 배재준 고우석 역시 큰 무대 경험이 일천했다.  

LG는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그동안 출전 기회가 없던 선수들을 내보냈다. 전민수가 처음으로 대타 기회를 받았고, 박지규가 1루수로 나왔다. 선발 임찬규는 물론이고 이우찬과 배재준이 드디어 마운드를 밟았다. 비록 1경기 '맛보기'였을지 몰라도 선수들이 느끼는 분위기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 LG 류중일 감독(가운데). ⓒ 곽혜미 기자
포스트시즌 5경기 가운데 4경기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구본혁은 "큰 경기 경험이 확실히 중요한 것 같다. 해보니 알겠다며 뿌듯해 했다. 포수 유강남 역시 "젊은 투수들이 많이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며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발전할 선수들을 기대했다. 

LG 선수단은 포스트시즌 합숙을 마치고 11일 해산했다. 포스트시즌 포함 149경기를 치러 81승 1무 67패를 거둔 류중일 감독은 "더 재미있게 오래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1, 2차전 1점 차 패배가 정말 아쉽다"면서 "그게 다 팀의 힘이다. 내년에는 우리 LG도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얘기했다. 

차명석 단장은 "열흘 정도 휴가다. 휴가를 마치고 감독님과 머리를 맞대고 내년을 위한 본격적인 구상을 시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LG는 20일부터 잠실에서 마무리 훈련을 시작한다. 28일부터는 캠프 명단을 추려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내년 준비에 들어간다. 내년 스프링캠프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호주다.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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