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이 평양~베이징~서울을 거치는 이동 경로에 피로가 누적된 채 17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이성필 기자, 이충훈 영상 기자] "우리가 계획했던 시나리오를 잘 알고 지연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축구대표팀이 평양 원정을 마치고 17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16일 오후 5시가 넘어 평양에서 항공기로 출발해 중국 베이징에서 환승해 돌아왔다. 숙소에서 나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대표팀은 출발 전부터 고생길이었다. 북한으로 통하는 육로나 서해 직항로는 일절 허용되지 않았고 제3국인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평양으로 향하는 수고를 거쳤다.

대표팀은 국제연합(UN)의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모든 장비와 유니폼 등을 철저하게 확인했다. 전략물자로 예상되는 용품은 통일부의 까다로운 승인도 거쳤다. 선수들의 심박 수, 이동 거리 등을 확인하는 위성항법장치(GPS)도 모두 검수를 거쳤다. 그나마 2017년 4월 평양에서 열렸던 2018 여자 아시안컵 예선 경험으로 준비는 수월했다.

하지만, 문제는 14일 평양 도착 후였다. 베이징에서 중국 국적기인 중국국제항공공사(에어 차이나)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받는 과정부터 숨이 막혔다. 예상 도착 시각보다 10분이나 빠른 오후 4시10분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미 북한 비자 신청 과정에서 신상을 정확하게 적어 제출했었지만, 순안공항에서의 심사는 남달랐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방문 목적에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경기라고 적었는데 틀렸다고 다시 적어 제출하라고 하더라. 워낙 분위기가 작은 것이라도 꼬투리를 잡히면 안 되기 때문에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웃긴 것은 비자 신청에서도 같은 사항이 있었고 문제가 없었는데 입국 심사는 또 달랐다. 정말 황당했다. 일부 선수들도 계속 썼다"고 전했다.

소지한 물품 역시 신고 대상이었다. 애초에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는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 맡기고 들어갔고 책도 반입 금지라 트레이닝복이나 양말, 속옷 등이 전부였지만, 정확한 숫자까지 적어 제출하라며 시간을 보냈다. 한 관계자는 "예전 방북과는 달랐다. 책 한 권 없이 옷만 가져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뭐라도 걸릴까 싶어 조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15일 북한과 경기를 0-0 무승부로 끝낸 한국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자연스럽게 이동이 늦어졌고 6시40분에야 공항을 출발해 7시30분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졌던 평양의 거리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오후 6시30분으로 계획됐던 파울루 벤투 감독과 이용(전북 현대)의 공식 기자회견은 7시55분에야 시작됐다. 대표팀이 계획했던 7-8시, 한 시간 훈련 계획은 깨졌다. 8시25분에야 훈련이 시작됐고,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9시15분에 끝났다. 9시50분에 숙소로 이동해 10시5분에서야 도착한 후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대표팀이 세웠던 계획은 무용지물이 됐다.

다른 관계자는 "북한의 의도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는 알기 어려웠지만, 우리의 노출을 막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다면 경기장에서의 무관중이라니, 생각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라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해외 원정을 가서 공항에서 두 시간 반이 넘도록 잡혀 있던 경험은 처음"이라며 북한의 꼼수(?)에 혀를 내둘렀다.

호텔에서는 거의 감금 수준에 가까웠다고 한다. 숙소였던 고려호텔 출입문 주변에는 보위부 요원이 진을 쳤다고 한다. 방에서 나와도 비슷했다. 고려호텔 지하에 있는 기념품점도 대표팀에는 '접근 금지'였다. 단체 이동 외에는 방 안에 틀어 박혀 지내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한다.

선수단장이었던 최영일 부회장은 "호텔 안에 외부인을 출입시키지 않았다. 대부분 선수단만 있었고 (북한 측)정부 인사들과 같이 있었다"며 밀착 감시에 그 어떤 것도 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여자 아시안컵 예선 당시와 비교하며 "삭막했다. 춥더라"고 북한의 냉대에 대해서도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이성필 기자, 이충훈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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