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지혁.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고척돔, 정철우 기자]"백업 요원에겐 긴장도 사치죠."

두산 류지혁은 이른바 '슈퍼 백업'으로 통한다.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류지혁은 팀 내야에 구멍이 생기면 언제든지 출격을 준비한다.

그가 등장하는 시점은 주로 초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수비로 한 점을 막겠다는 전략을 쓸 때 류지혁이 출장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백업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백업으로 치른 큰 경기가 수도 없이 많다.

궁금했다. 백업 선수들은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가 더 떨리지는 않을까. 한번의 실수로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지혁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업 요원에겐 긴장 같은 건 사치다. 단 한순간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야기를 좀 더 이어 갔다.

"내가 선발로 나가는 선수라면 경기장 분위기도 살피고 관중들의 응원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경기가 주는 중압감 때문에 긴장도 많이 할 것 같다. 하지만 백업 선수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여유다. 시간이 있으니 분위기도 신경 쓰고 주위도 둘러보는 것"이라며 "백업 선수는 언제 투입될지 모르기 때문에 경기 한 순간 한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에 나서게 되면 딱 하나만 생각한다. '내 앞으로 오는 공만 놓치지 말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선다. 그렇게 집중하는 상황에서 관중들의 함성이나 응원은 들리지 않는다. 오직 경기 한 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에 떨릴 여유조차 없다."

경기 흐름이나 분위기 싸움 같은 것에 휘둘릴 틈도 따로 없는 셈이다. 언제든 베스트 컨디션으로 나서야 하기 때문에 좋은 흐름 속에서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백업 선수들이 할 일이다. 긴장감 따위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김인태도 같은 말을 했다.

김인태는 "백업 선수는 딱 하나만 보고 들어간다.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긴장과는 다른 기분으로 경기에 나선다. 절박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류지혁과 김인태는 이번 한국시리즈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류지혁은 실책 없이 2경기를 잘 치러 냈다.

김인태는 2차전에서 극적인 동점 희생플라이로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김인태는 "그때 타석에 들어갈 때도 한 가지만 생각했다. 어떻게든 공을 외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긴장하지 않았다. 절박했다. 좋은 결과가 나와 다행"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주목은 덜 받지만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순간에 투입되는 백업 요원들. 그들에겐 긴장도 사치로 느껴질 만큼의 절박한 심정이 있었다. 결국은 누가 더 절박하냐에 따라 승패도 갈리는 것이 아닐까.

스포티비뉴스=고척돔,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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