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영화 '82년생 김지영'은 2019년 가을의 핫이슈다. 동명의 원작소설부터 뜨거운 지지와 지독한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이야기의 영화화는 결정부터 뜨거운 이슈였다. 드디어 완성돼 관객과 만난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분위기도 후끈하다. 이런 저런 말들에도 불구, 개봉 첫 주 가뿐히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시동을 켰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관객들의 지지도 남녀를 크게 가리지 않고 있다. 

신예 김도영 감독은 그 뜨거운 과정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이토록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인가, 새삼스러울 만큼 따뜻하고 품이 넓다. 배우 출신으로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던 그는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꿈꾸던 연출을 시작했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에 녹였다. 외적 논란 때문에 메가폰을 잡기 두려워히지 않았다는 감독의 고민은 다만 에피소드로만 이어지는 원작을 영화답게, 의미있게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탓하기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풍경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감독의 첫 목표는 이미 달성한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두고 벌어지는 일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은 김도영 감독은 "남자든 여자든, 눈을 떠서 주변을 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탄생부터 의미있는 작품이다. 잘 되어야 더 의미있을 것도 같다. 이제 시작일 텐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은 아니다. 영화를 만들게 되기까지도, 수많은 분들이 시작했다. 주변 풍경을 보기 시작했기에 영화까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우리는 그 길에서 반 보 정도 내디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메가폰을 잡으려고 마음먹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나.

"진심으로, 외적 논란 때문에 메가폰을 잡는 걸 두려워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원작이 관심을 받으니까 내 역량에서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원작에 큰 서사가 없다. 영화는 에피소드 없이 나열만 할 수가 없다. 이런 부분에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했다. 한예종 전문사 과정을 했는데, 교수님께 여쭸다. '할만한 이야기야?' 하시기에 '하고 싶습니다' 했더니 '그럼 하면 되지' 하시더라. 그 말씀이 힘이 됐다. 이 영화로 엄청난 걸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책의 독자이자 팬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역량에서 하자. 큰 욕심 갖지 않고 하자. 조심스럽고 귀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의 의도와 상관없이 온갖 편을 가르는 상징이 되고 있다. 연출자로서 가슴아프지 않나.

"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두고 벌어지는 일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서사 자체의 태생적 운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를 거쳐갔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진 순간이 있다. 처음에 제가 영화를 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 영화가 나를 택했고 이 제작사를, 이 사람을 택했고 상업영화로 전개되면서 나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논란이 있었지만 논란 속에서도 어떤 분들은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까지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바람이 있다. 책을 처음 봤을 때 그랬던 것처럼."

-'82년생 김지영'에는 이른바 '빌런'이 없다. 남성 캐릭터들도 어느 하나 악한 캐릭터 없이 좋은 사람으로 묘사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떤 사람이 특별히 악하거나 하기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관습이나 문화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는 것이 와닿았다. 어떤 인물을 나쁘게 그리면 그 인물 때문에 지영이가 아픈 것 같지 않나. 우리 주변 풍경이 어떠한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남주 작가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식초에 담긴 오이' 얘기다. 아무리 싱싱한 오이여도 거기에 담겨 있으면 피클이 되어가지 않나. 우리 상황도 그럴 수 있다. 주변 사람을 보면 악의가 있어서 상처를 준다기보다 서툴거나 잘 모르거나 문화에 젖어있을 때가 많다. 책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고, 그런 걸 지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출처|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원작과 가장 차별화한 둔 지점은?

"책과 차별점을 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이 기본적으로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작소설 영화화는 부담이 있다. 특히 사랑을 받은 원작은 평생 비교당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저같은 경우 첫 장편영화라 부담이 있었다. 차별화하기보다는 책에서 이해했던 내용들을 되짚고, 제가 아는 선에서 아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위로를 얻었다. 그 결말이 좀 씁쓸했는데 영화에서는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했다."

-책의 어떤 부분이 공감과 위로가 됐나.

"저의 경험과도 겹쳤다. 막내동생이 81년생이다. 제가 7살이나 많은데도 막내동생의 경험과 많이 다르지 않구나 했다. 책의 담담한 문구가 울림이 있었다. 격하거나 그러지 않고 담담하게 흘러가면서 생각을 하게 됐다."

-원작엔 없는 지영이 '맘충'이라는 비난을 받는 장면의 경우엔 어땠나. 이른바 혐오의 시대를 향한 목소리로도 들린다.

"영화상 클라이막스다. 지영이가 어떤 말을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단지 싸운다? 욕을 해준다? 고민을 했다. 더 앞으로 가는 건 무엇일까.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가기도 그랬다. 가장 정곡을 찌르는 말은 무엇인가. 어떻게 혐오에 맞설까 생각하며 대사를 생각했다. 버전이 많았는데 현재의 것을 택했다."

-극중 김지영은 스스로 도태됐다고 생각하다가 글을 쓰며 그것을 풀어간다. 감독의 경험은 어땠나.

"저도 이 사회에 있으니까, 비슷한 일련의 과정을 겪었다. 때로는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포털에 나오는 많은 사건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운이 좋구나 생각하며 지내왔다.

소설을 보고 공감하시는 분들이 보면서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저도 잘 지내다가 육아가 시작되면서 경력 단절이 오고 이걸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 욕망을 어떻게 좇을 수 있을까 하다 다행히 글을 쓰게 됐고 영화학교에 들어갔고 많은 영화가 공감을 얻으며 여기까지 오게 됐다.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제가 영화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40대 중반이 넘어서였다. 그 나이가 되면 새로운 걸 추구한다는 게 쉽지 않다. 제가 그런 도전을 하면서 한 생각은 그랬다. 이 나이에 '대단한 감독이 되겠다'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가야겠다, 많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그 방향에 의미를 둬야하는 게 아닐까. 엔딩을 정하며 지영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천천히 돌리는 것,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 출처|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타이틀롤 김지영 역에 정유미를 캐스팅했다. 실제 미혼이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역할은 처음 하는 배우다.

"배우는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삶도 연기를 한다. 중요한 건 좋은 배우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삶과 비슷하지 않더라도 좋은 배우는 해 낸다. 정유미는 좋은 배우다. 결혼하고 나이를 낳지 않았어도 그 인물을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정유미 배우는 전형적이지 않은 느낌이 있다. 프레임 안에 딱 잡히지 않는, 규정되지 않는 느낌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에 어울리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지영은 평범한 인물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연기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정유미를 보면서 그 사람에게 있는 투명함이 드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밝고 활기차다가도 돌아서면 촥 가라앉을 수 있는데, 그런 걸 잘 표현해주셨고 담고 싶었고 잘 그려내주셨다."

-연기적으로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었나.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정유미 배우 자체로 존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 장면마다 해야 하는 목적을 공유하고 정확하게 해 주셨다. 현장이 좋았다."

-공유의 캐스팅도 몹시 절묘하다. '도깨비' 이후 차기작 아닌가.

"솔직히 너무 감사했다. 3년 만에 돌아오는 작품으로 이 작품, 더군다나 주인공도 아니고 서브인데 택해주셔서 너무 놀랐고 고마웠다. 공유 배우는 스타지만 '도가니'라는 영화를 선택하거나 하듯 사회적 의제에도 관심이 있고 균형이 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만나뵈었을 때는 너무 좋았다. 이 작품을 굉장히 지지해 주셨다. 이 역에 동의하는가가 중요했는데 흔쾌히 그러셨다. 아쉬웠던 게 영화에서는 공유 장면, 대사 몇개가 편집됐다. 그런 장면에서 보면 공유 배우가 더 평범한 한국 남편을 연기했다. 어떤 의미도 잘 알고 이해하셨다. 그래서 참 좋았다. 저도 도깨비, 신계에 계신 분인가 했는데 막상 만났더니 평범함이 안에 있고,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균형감각이 있고 연기에 대한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연기에 대한 태도도 좋았다. 감사드린다."

출처|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김미경 배우가 연기한 김지영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은 '눈물 버튼'이나 다름었다. 친정어머니 생각도 났을 법하다.

"많이 떠올랐다. 엄마는 엄마여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저희 아이들도 저를 엄마로만 생각하지 제가 오롯이 혼자일 때 삶을 모르지 않나. 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 것 같다. 부모님의 꿈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고 주변 분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했다. 지영의 어머니가 한약을 집어던지는 장면은 외할머니 빙의 장면보다 먼저 찍었다. 눈물이 나서 스태프가 많이 힘들었다. 김미경 선배님이 연기를 잘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도 너무너무 놀랐다. 김미경 배우 같은 국보급 연기자가 있다는 게 너무 감사드린다. 굉장히 집중하셨고 그냥 좋았다. 끝나고도 지켜본 사람 모두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감정적으로도 변하게 된다. 그런 장면이 곳곳에 많았다."

-다른 배우들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그렇죠?(웃음) 제가 연극계에 오래 있었으니까 연기 잘하는 배우님들을 확보해 둔 상태였다.

아직 많이 나오지 않은 배우님들을 쓰고 싶었다. 이 영화가 더 현실에 붙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연기력인데 다들 너무 잘했다. 제가 연극계 오래 있고 그런 게 장점이었던 것 같다. 그런 배우들을 알고 있었고 캐스팅할 수 있었다. (지영의 언니 은영으로 나오는) 공민정 배우는 독립영화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오디션 때 제가 울었다. 영화에서는 잘렸지만 동생 안아주는 장면이 있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은영이는 이럴거야 하는 활기참, 재기발랄함, 똘똘함이 특별히 연기하지 않아도 풍겼다. (지영의 상사 김팀장 역) 박성연 배우 경우도 대학로의 연기신 중 하나다. 아직 성연이가 안 떴길래 '너는 나와 함께' 그랬다. 지금도 많이 나오시지만 가치가 있는 귀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구석구석 아끼고 사랑하는 배우들이 있다. 저만의 비밀 리스트인 셈이다. 특별출연한 염혜란 배우는 연극도 같이 한번 했고, 성설하고 좋은 배우인데 알아서 잘 뜨고 있더라. 그 외에도 너무 같이 하고 싶은 배우들이 많이 있다. 이번에는 못했지만 언젠가 같이할 수 있겠죠.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오래 배우생활을 하다가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첫 장편영화를 내놨다. 카메오로라도 등장할법 했는데 연출만 했다.

"저는 연출하면서 연기할만한 능력은 없는 것 같다. 연출하는 데도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고,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감독을 하니까 연기를 안한다고 생각은 안했다. 배우일 때보다는 연출이 저에게 맞는 옷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저는 주로 연극을 했다. 무대는 가끔 그립지만 매체는 긴장이 된다. 연출을 하면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는 즐거움, 끌어내는 즐거움이 컸다.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있었다. 내가 연출이 잘 맞나보다 생각했다."

-어떻게 배우에서 감독으로 전향했나.

"원래 학부를 연출 전공으로 들어갔다가 연기 수업을 들었는데 마법같았다. 너무 신기했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서 동굴에 들어가서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듯이 십몇년을 헤매다 온 것 같다.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출연한) 배우님들 칭찬 받을 때마다 뿌듯하다. 연극을 계속 하다가 임신을 계획하면서 처음으로 쉬었다. 뭔가 하고 싶어서 단편을 찍었는데 그 영화가 미쟝센영화제에 가면서 뿌듯하고 신났다. 생각보다 잘 맞는 옷처럼 느껴졌고 그 후로는 생각을 했다. 육아가 시작되면 시간이 줄어든다. 작업을 할 수도 없고, 답답하니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소 본 희곡이나 시나리오 형태로 쓰게 되지 않나. 또 만들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 단편을 만들었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배우로의 경험이 도움이 되나. 정유미 공유 모두 신뢰를 표현하더라.

"저도 공배우 정유미 배우 신뢰가 있다. 당연히 제가 연기를 하면서 느낀 경험이 굉장히 도움이 됐다. 배우와 소통할 때, 연출의 언어와 배우의 언어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배우의 언어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이 엄청난 장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배우들과 현장에서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신인 감독으로서 고충은 혹시 없었나.

"신인감독이라 외롭다기보다 이렇게 큰 프로덕션을 경험한 적이 없어 현장이 낯선 부분이 있다. 스태프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가 너무 커지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제작사 대표님들의 응원을 엄청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은 응원과 지지가 중요했다. 주변에서 많이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한걸음씩 갔던 것 같다."

-남성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

"제 주변 사람들이라 그런가. 다 좋았다. 특히 의외로 40대 50대 남자분들도 의외로 재미있게 보시고 그래서 굉장히 좋아하셔서 저도 의외의 반응이다 생각했다. 그분들에게 가서 닿는다면 좋겠다. 가장 좋아하시는 분들은 친구와 어머니 세대지만 남자들 반응도 괜찮았다. 선택해서 보시는 분들은 많은 생각을 하면서 보실 수 있는 것 같다."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나.

"저에게 들려오는 말들이 듣고 싶었떤 말이다. '위로가 됐다', '내 아내, 내 딸, 우리 엄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좋겠다. '이 영화로 뭔가 어떻게 해봅시다'보다는 여자건 남자건 눈을 떠서 주변을 보기를 바랐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