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영수(가운데)가 26일 고척돔에서 열린 키움과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후배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현역 최다승 투수' 배영수(38·두산)가 은퇴를 택했다. 두 갈래 길이 있었지만 배영수다운 길을 선택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열리기 전 배영수에게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한 가지는 플레잉코치를 하며 좀 더 선수 생활을 이어 갈 길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은퇴 후 코치를 하는 것이었다.

배영수는 큰 고민 없이 두 번째 제안을 받아들였다. 후배들을 위해 물러서는 것이 더욱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정적 계기는 한국시리즈 4차전이었다. 연장 10회말 김태형 감독이 마운드 방문 횟수(2회) 초과로 마무리 이용찬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김 감독은 곧바로 배영수를 호출했다. 보통 믿음이 아니면 어려운 결정이었다.

배영수는 제 몫을 200% 해냈다.

박병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샌즈를 투수 땅볼로 유도하며 경기를 매조졌다.

배영수는 경기 후 "신이 주신 기회였다. 다행히 내가 막아 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룰 수 있는 것을 다 이룬 느낌이다"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진로를 결정한다면 플레잉코치보다는 은퇴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후배들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배영수가 플레잉코치로 남아 1군에 등록되게 되면 누군가 한 명의 2군 선수는 기회를 잃게 된다.

단순히 자신의 기량을 선보일 찬스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배영수 스스로는 금전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연봉 5000만 원 미만 선수는 1군에 올라오면 5000만 원을 기준으로 일일 계산을 해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배영수가 앞길을 열어 준다면 반대로 그 선수는 기회와 함께 금전적 이득도 볼 수 있게 된다.

배영수는 한국시리즈 직후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했지만 플레잉 코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후배들을 위해서도 이제는 자리를 비워 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비운 자리를 가능성 있는 젊은 후배들이 채우며 팀이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나의 은퇴가 2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자신의 말을 지키며 은퇴를 선택했다.

배영수는 올 시즌 두산에서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꾸준히 1군 엔트리에 등록돼 있었다. 김태형 감독이 불펜에서 보여 주는 배영수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바로 코치를 제안한 것도 그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배영수는 늘 그랬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기로 했다. 개인 기록과 명예만 생각했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했지만 배영수는 배영수다운 길을 걷기로 했다.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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