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동엽 감독은 1983년 MBC 청룡을 지휘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한 뒤 최초로 감독에서 물러난 주인공이다. '그래, 짤라라 짤라'는 1995년 펴낸 그의 자전 에세이다(왼쪽). 키움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은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유니폼을 벗은 역대 8번째 감독이 됐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아니, 한국시리즈 준우승한 감독을 내쳐?"

비즈니스로 움직이는 프로야구 세계라고는 하지만 4일 키움 히어로즈의 감독 교체 소식은 야구계와 팬들에게 충격파로 다가왔다. 키움 구단은 장정석 감독과 결별하고 손혁 SK 투수코치를 새 사령탑으로 맞이한다고 발표했다.

모든 이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새로 들어오는 손혁 신임 감독보다는 떠나가는 장정석 감독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는 상황. 처음 소식을 접한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아니, 왜?"

장 감독은 2017년 히어로즈 사령탑에 올라 2017년 7위, 2018년 4위에 이어 올해 팀을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끌어올려 준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물론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4전 전패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FA 전력 보강 하나 없는 구단의 선수들로 이만한 성과를 냈다면 상식적으로는 쉽사리 납득이 어렵다. 포상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구단에서 돌아온 선물은 "재계약 불가" 통보였다. 키움 구단은 이에 대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설명만 하고 있다.

가을은 이별의 시간이자 잔인한 계절이다. KBO리그 역사를 보면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유니폼을 벗은 것은 장 감독만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7명이 있었고, 장 감독은 8번째 인물이 됐다.

▲ 1980년대 MBC 청룡 감독을 맡은 고 김동엽 감독이 깁스를 한 다리를 이끌고 나와 목발을 짚은 채 뒤돌아선 심판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김 감독은 쇼맨십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KBO
①1983년 MBC 김동엽 감독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우승을 하지 못해서 물러난 최초의 주인공은 '빨간 장갑의 마술사' 고(故) 김동엽 감독이다.

1983년 MBC는 전기리그에 어수선했다. 원년에 감독으로 3년, 선수로 1년 계약을 한 백인천이 구단과 연봉협상 마찰을 빚으면서 4월에 건강상의 이유로 휴가 형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6월 30일 선수 자격으로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유백만 코치와 한동화 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전기리그를 치르던 MBC는 6월 9일 김동엽 감독을 전격적으로 영입했다. 1982년 해태 창단 감독이었지만 13경기 만에 경질된 김 감독은 1983년 청룡 유니폼을 새롭게 입고 승천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기리그 막바지 5경기를 지휘한 뒤 후기리그에서 30승19패 1무를 기록하면서 우승해 전기리그 우승팀 해태와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격돌하게 됐다.

김 감독은 원년에 자신을 자른 해태를 상대로 필승 각오를 다졌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내리 패했고, 4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5차전에서 패하며 1무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김 감독은 1995년 펴낸 자전 에세이 '그래, 짤라라 짤라'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 때문에 졌다"고 설명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1억 원의 보너스로 지급한다는 약속을 했다" 소문이 퍼졌는데, MBC는 보너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결국 선수들이 동요하면서 사기가 꺾인 채 3연패를 하자 구단 사장이 뒤늦게 "우리는 2억 원을 준다고 하라"고 말했다. 이때 김동엽 감독은 "늦었습니다. 2억원이 아니라 10억원을 준다고 약속해도 뒤집긴 힘듭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MBC는 김동엽 감독을 경질하고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우승을 이끈 어우홍 감독에게 1984년 새 지휘봉을 맡겼다. 김동엽 감독은 KBO리그 역사에서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유니폼을 벗은 최초의 감독이 됐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 김영덕 감독. 김 감독은 198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삼성과 결별했다. ⓒKBO
②1986년 삼성 김영덕 감독

삼성은 1986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와 만났다. 광주에서 1차전을 패하고 2차전을 이겨 1승1패로 균형을 맞췄지만, 대구 안방에서 3차전과 4차전을 내리 내주고 잠실에서 열린 5차전에서 2-5로 패하면서 1승4패로 무릎을 꿇었다.

김영덕 감독은 1982년 OB 감독으로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인물이다. 당시 삼성을 상대로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자 1983시즌이 끝난 뒤 삼성은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면서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1985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을 휩쓸며 한국시리즈를 없애면서 통합우승을 달성했지만,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고 1986년에도 해태에 무기력하게 패하자 결국 이별을 하게 됐다.

물론 후기리그가 채 끝나기도 전에 김영덕 감독은 "삼성과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먼저 공언을 하면서 결별을 암시했다. 당시 구단과 파워게임을 펼치면서 MBC행을 의중에 두고 이런 발언을 했는데, 삼성도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굳이 김 감독을 붙잡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유니폼을 벗은 역대 2번째 감독이 됐다.

그런데 김 감독은 MBC행이 불발되면서 1년간 야인으로 지내야 했고, 1987년 빙그레 이글스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 삼성 정동진 감독은 1990년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키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LG에 4연패로 물러나면서 해고됐다. ⓒKBO
③1990년 삼성 정동진 감독

1989년 삼성 지휘봉을 잡은 정동진 감독은 정규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태평양의 돌풍에 무너지며 다음을 기약했다. 이어 1990년에도 정규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행 티켓을 잡았다. 전년도와는 달리 준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를 2연파하고,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3연파했다.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LG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4전 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5전 전승으로 사기가 하늘을 찔렀지만,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0-13으로 대패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2차전과 3차전에서 2-3으로 1점차로 패했고, 안방인 대구에서 열린 4차전마저 2-6으로 내주고 말았다.

삼성은 결국 계약기간이 1년 남은 정동진 감독에게 경질의 칼날을 들이댔다. 삼성은 무엇보다 재계 라이벌 LG에 패한 것이 뼈아팠다. LG가 MBC를 인수해 프로야구에 뛰어든 첫해 단숨에 우승을 차지한 반면, 삼성은 1982년, 1984년, 1986년, 1987년에 이어 한국시리즈 무대에서만 5번째 실패를 했다. 합리적 성품에 지략가였던 정동진 감독은 가을야구에서 돌풍을 이어갔지만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치면서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객관적 전력의 열세를 딛고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오른 정 감독에 대한 동정론과 삼성 프런트의 조급증에 대한 비난이 동시에 일기도 했다.

▲ 김성근 감독은 2002년 LG를 한국시리즈로 이끌면서 '야신'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삼성에 패해 준우승을 하면서 경질됐다. ⓒKBO

④2002년 LG 김성근 감독

LG는 2001년 이광은 감독이 물러난 뒤 지휘를 한 김성근 감독대행에게 2002년부터 정식 감독 지휘봉을 맡겼다. 김 감독은 정규시즌 66승61패6무를 기록하며 4위로 포스트시즌 턱걸이를 한 뒤 포스트시즌에서 돌풍을 이어갔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2승무패로 꺾고, 플레이오프에서 KIA를 3승2패로 물리치면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김성근 감독이 이끈 LG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김응용 감독이 지휘한 삼성을 맞아 선전을 펼쳤다. 1승3패로 뒤진 상황에서 5차전을 잡고 2승3패로 따라붙었고, 6차전에서도 9회초까지 9-6으로 앞서 승부를 7차전으로 몰고 가는 듯했다.

그러나 9회말 삼성 이승엽이 LG 마무리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을 때려냈고, 이어 마해영이 바뀐 투수 최원호를 상대로 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 삼성을 한국시리즈 무대 첫 우승으로 이끈 김응용 감독은 승장 인터뷰를 하면서 맞은 편 덕아웃의 패장 김성근 감독을 향해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는 찬사를 보냈다. 김성근 감독에게 '야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발단이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의 벌떼 마운드 운용과 혹사 논란, 지나친 스몰볼 등에 반감을 가진 LG 구단 고위층에서 LG가 추구하는 야구의 색깔과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시리즈 직후 해고를 통보했다. 시즌 도중 야구장에 플래카드까지 걸며 김성근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던 LG 팬들이 많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LG의 투혼에 감동한 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해고한 LG 구단을 향해 격렬한 저항을 하기도 했다.

▲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오른쪽)은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에 9차전 혈투 끝에 패하면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곧바로 삼성 구단 사장으로 영전했다. 사진은 사장으로서 팀 간판스타 양준혁에게 시상을 하는 장면. ⓒ삼성 라이온즈
⑤2004년 삼성 김응용 감독

김응용 감독은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우승 청부사로 불렸다. 해태를 아홉 차례나 우승시키면서 20세기 최고의 승부사로 칭송 받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한이 맺혀 있던 삼성은 2001년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패하면서 첫 아픔을 겪은 김응용 감독은 2002년 마침내 우승에 성공하면서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비원을 풀어줬다. 개인적으로도 V10을 달성했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은 2004년에 다시 한 번 실패를 맛봤다. 현대를 상대로 무려 9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2승3무4패로 패하면서 생애 두 번째 한국시리즈 준우승 감독이 됐다.

삼성은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김응용 감독에게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당시 선동열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승격하면서 김응용 감독에게는 야구인 출신 최초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선물했다. KBO 역사상 5번째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유니폼을 벗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유일하게 영전을 한 케이스로 남아 있다.

▲ 삼성 선동열 감독은 2005년과 2006년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연패로 준우승에 그친 뒤 삼성 유니폼을 벗었다. ⓒ삼성 라이온즈
⑥2010년 삼성 선동열 감독

선동열 감독은 2005년 지휘봉을 잡자마자 삼성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는 2010년 다시 대권 도전에 나섰다. 페넌트레이스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뒤 두산과 매 경기 혈전을 펼치면서 3승2패로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플레이오프 혈전의 여파는 컸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SK를 상대로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자 삼성은 다시 선동열 감독과 결별을 선택했다. 당시 충격적 뉴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은 2009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27억 원의 조건으로 장기 계약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5년 계약 첫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한 뒤 12월 30일 해고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준우승 직후 4명의 감독을 바꾸는 역사를 썼다.

▲ 두산 김진욱 감독은 2013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3승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⑦2013년 두산 김진욱 감독

두산은 2013년 김진욱 감독 지휘 아래 다시 한 번 미러클 신화에 도전했다.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넥센과 혈투를 벌이며 3승2패로 이겼고, 플레이오프에서는 LG를 3승1패로 물리쳤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두산은 예상과는 달리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삼성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1~2차전을 잡고 3차전을 내줬지만 4차전에서 2-1로 이겨 3승1패로 앞선 상황.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2001년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5차전에서 5-7로 패하면서 일이 꼬였다. 6차전 2-6, 7차전 3-7로 지면서 우승을 삼성에게 내주고 말았다. 3승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친 것은 한국시리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감독이 교체되지는 않았다.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까지 갔다. 감독 부임 후 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데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듯했다. 계약기간도 1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마무리 캠프 이틀 전에 해고 통보를 받고 말았다.

▲ 장정석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한국시리즈가 히어로즈와 작별 무대가 됐다. ⓒ한희재 기자

그리고 이번에 키움 히어로즈의 장정석 감독이 김진욱 감독의 뒤를 이어 역대 8번째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유니폼을 벗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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