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현록, 장진리, 강효진, 박소현, 정유진 기자]2019년의 방송가엔 올해를 넘겨서도 잊지 못할 드라마들이 작정이나 한 듯 쏟아져나왔다. 종편드라마의 새로운 역사를 쓴 'SKY캐슬'을 필두로 모두를 위로한 KBS2 '동백꽃 필 무렵'까지, 나만 보기 아까운 작품들이 안방극장을 풍성하게 채웠다. 때로는 냉혹하게, 때로는 센스있게, 때로는 따뜻하게 시청자들을 어루만진 웰메이드 드라마들은 스포티비뉴스 기자들에게도 2019년의 행복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2019년에 만난 인생 드라마들. 우리가 거기에 빠진 이유는 이랬다. 

▲ 'SKY캐슬'. 제공lJTBC
◆ JTBC 'SKY캐슬'(2018.11.23. ~ 2019.02.01)

"이런 자비없는 통속극을 보았나! 'SKY캐슬'(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제작 HB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은 2019년을 연 강렬한 출발이었다. 맨발로 눈밭을 걸어나간 김정난이 제 목을 향해 장총 방아쇠를 당기며 끝난 첫 회를 보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려 다음을 안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런 '미친엔딩'을 19회까지 매번 선보일 줄이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니셜을 붙인 그들만의 성에 사는 이 드라마의 잘난 주인공들은 독특하게도 제 자식을 서울의대 보내는 게 지상목표였다. '입시지옥'이 관용어로 쓰이는 처참한 교육현실을 지나 온 시청자에게 이 어찌 구미가 당기지 않을까. 독보적 속도감과 몰입감은 회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입시코디, 답안유출 같은 교육이슈가 바탕이지만, 출생의 비밀, 신분세탁, 복수와 자살, 살인사건과 범인찾기를 아우르는 막장 치트키를 곁들이면서도 품격을 유지했다.

폭발하면 본색을 드러내는 '아갈머리' 곽미향(염정아) 여사, 올백 올블랙의 카리스마 김주영(김서형)쌤 투톱은 물론이고 성인 아역 할 것 없이 꽉꽉 들어찬 구멍없는 연기 향연은 보는 맛을 제대로 살렸다. 이들이 핏줄까지 비치는 클로즈업에 불꽃튀는 말싸움·눈빛싸움은 물론이고 머리채 잡고 뒹구는 슬랩스틱 몸싸움까지 불사하니 매회 입을 떡 벌리고 그저 지켜보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1.7%(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출발한 시청률이 오르고 또 올라 23.8%에 이른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올해의 첫 본방사수 드라마. 단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교육막장스릴러가 한 회 만에 EBS공익드라마로 뒤집힌 마지막회였다. 그래도 절망하진 말자는 메시지였을까. 아직은 작가님의 뜻을 잘 몰라 다시보기 정주행은 19회까지만 한다." (김현록 기자)

▲ '눈이 부시게'. 제공lJTBC

JTBC '눈이 부시게'(2019.02.11. ~ 2019.03.19)

"솔직하게 고백한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타임슬립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국민 배우'라 불리는 김혜자가 왜 타임슬립물을 선택했는지 궁금했고, 다음엔 시간 여행을 통해 '김혜자'라는 한 인물을 같고도 다르게 연기하는 김혜자와 한지민의 합이 흥미로워졌다.

마침내 '눈이 부시게'(극본 이남규 정수진, 연출 김석윤, 제작 드라마하우스)가 타임슬립물이라는 탈을 쓰고 노년의 알츠하이머를 그리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뒤통수까지 얼얼한 기분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어떤 순간에도 삶은 애틋해야 마땅하다. '눈이 부시게'는 '인생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는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대사를 기점으로 판타지를 그리는 줄 알았던 '눈이 부시게'는 극사실주의 작품이 된다. 아나운서를 꿈꾸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는 20대 혜자(한지민)와 시계를 수백 번 되돌린 대가로 늙어버린 혜자, 그리고 사실은 알츠하이머에 걸려 조각난 기억을 맞추는 혜자(김혜자)는 '삶', 그리고 '나이듦'이 무엇인지 역설한다. 걱정 뿐인 젊음은 쓰러지지 않고, 불빛을 잃어가듯 흐릿해지던 노년은 찬란할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눈이 부시게'는 김혜자의, 김혜자를 위한, 김혜자에 의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의 부침에도 제자리를 지켜온 대배우의 존재감은 드라마 이상의 감동을 준다.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가라'는 말이 주는 감동은, 김혜자의 대체불가 연기가 있기에 완성됐다." (장진리 기자)

▲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제공ltvN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06.05. ~ 2019.07.25.)

"세 여자가 주인공인데 캔디도 없고, 백마 탄 왕자도 없다. '기승전 로맨스'도 아니다. 그렇다고 스릴러, 서스펜스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여자 셋이 치열하게 포털 점유율로 싸우는 드라마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권영일, 제작 화앤담 픽쳐스)의 'www'는 볼수록 'woman, woman, woman'으로 보인다.

첫 회부터 '여주인공 금기사항'을 깼다. 배타미(임수정)는 '애인'이라는 표현으로 성 정체성에 '편견 없는 사람'임을 알리며, 송가경(전혜진)은 담배를 물고 등장했다. 이에 질세라 차현(이다희)은 분노조절장애 폭행 전과범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이 어마어마한 세 사람이 포털사이트를 이끄는 숨은 손들이다. 이들은 치열한 '점유율 전쟁'을 이어가면서, 자신들의 전문성과 도덕, 성공을 '여성 중심적'으로 보여준다. 그 안에서 '실검', '악플' 등 사회 이슈를 짚으면서 메시지도 준다.

'검블유'는 초지일관 성 역할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송가경은 호스트바에서 외모 품평하는 남성 접대부를 제대로 응징했고, 한술 더 떠 그의 시어머니는 남성 누드 모델을 물건처럼 대한다. 배타미와 차현이 야구 배트를 들고 차를 부수며 복수하는 장면은 아직도 '검블유'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로맨스 역시 '결혼'이라는 고리타분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송가경은 전남편 오진우(지승현)와 이혼 후 연애를 시작, 차현은 '듣보배우' 설지환(이재욱)에게 지하철 광고를 선물하는 등 '능력 있는 여친' 역할을 톡톡히 해내더니, 나이 37세에 '고무신'을 신게 된다.

메인커플 서사는 더 특별하다. 배타미는 10살 어린 박모건(장기용)과 잠자리 후 "실수였다"고 쿨하게 대한다. 오히려 애걸하는 쪽은 남자쪽. 박모건은 스스로 배타미의 '어장 속 물고기'가 되는 것을 자처한다. 이처럼 세 주인공은 일과 사랑 모두 '주도권'을 행사했고 '주체성'을 실현시킨다.

'로맨스'보다 더욱 환호받은 것은 세 주인공간 '워맨스'였다. 누구랑 붙어도 환상 '케미'를 자랑하는 모든 '여x여' 조합은 '워맨스'로 매료되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드라마 '장모님이 왜 그럴까'는 '막장 클리셰'를 범벅해 '깨알재미'를 만들었고, 이다희는 SNS에 이재욱을 '내 배우'라며 '망붕러'를 생성하더니 결국 '어하루' 백경을 만들어 냈다.

기존 한정적이었던 여성 캐릭터를 독립적, 진취적으로 만들면서 재미까지 풍부한 '검블유'. 나무랄 데 없는 드라마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청률이다. 높은 화제성에도 불구, 시청률은 3%대를 유지했다. 그런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명드', 안 본 사람만 손해지 뭐."(정유진 기자)

▲ '호텔 델루나'. 제공ㅣtvN

tvN ‘호텔 델루나’(2019.07.13. ~ 2019.09.01.)

"7월 중순에 시작해 9월에 마무리된 ‘호텔 델루나’(극본 홍정은 홍미란, 연출 오충환 김정현,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지티스트)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드라마였다. 판타지, 호러, 로맨스, 코미디를 한데 모아 계절감을 겨냥해 트렌디한 ‘요즘’ 시청자 취향에 짜릿하게 명중시켰다. 7.3%로 시작해 12%까지, 올해 tvN 드라마 중 최고이자 역대 6위에 해당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아이유의 불패신화, 여진구의 2연타, 홍자매의 부활을 이끌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귀신들이 찾아드는 비밀스러운 호텔’이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쌓아올린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과 ‘톡톡’ 튀는 대사, 2019년에서야 비로소 구현된 판타지 비주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귀신들의 이야기다.

1~3회 분량으로 치고 빠지는 각 귀신들의 사연이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요즘’ 시청자들의 속도감을 만족시켰고, 이 귀신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연을 담아서 잘 짜놓은 서사가 심금을 울렸다. 각각의 사연을 감싸고 있는 메인 스토리인 장만월(아이유)의 비밀스러운 과거는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를 자극했다.

특히 아름답고 괴팍한 호텔 주인 장만월의 매력은 시청자들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만큼 강력했다. ‘아이유 화’된 장만월의 소소한 캐릭터 디테일이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데다, 슬픈 사랑의 운명을 타고난 지배인 구찬성(여진구)의 듬직하면서도 청초한 매력이 두 사람의 조합으로 더욱 빛을 발한 것은 물론이다.

비록 홍자매는 해피엔딩이라고 말했으나, 새드엔딩으로 느껴지는 결말까지 모든 시청자를 납득시킬 만큼 완벽한 마무리였기에 아련한 여운과 함께 개운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엔딩에도 새로운 주인이 등장했듯, 언젠간 새로운 호텔에서 펼쳐질 흥미로운 사연들과 재회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강효진 기자)

▲ '동백꽃 필 무렵'. 제공lKBS

KBS2 '동백꽃 필 무렵'(2019.09.18. ~ 2019.11.21.)

"우리의 삶을 한 가지 장르로 정의할 수 없듯이,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제작 팬엔터테인먼트)도 '로맨틱 코미디'나 '장르물' 같은 범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올해 방송된 지상파 미니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23.8%)을 기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잃고 '동백이', '용식이', '필구'로 불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옹산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됐다.

공효진부터 강하늘, 고두심, 이정은, 김강훈, 오정세, 손담비, 염혜란 등 모든 출연진이 각자의 서사를 안고 허투루 소비되지 않았다. 각자의 '인생 캐릭터'를 하나씩 얻어갔다. '연기 좀 살살 하라'라는 기분 좋은 원성도 쏟아졌다. 하도 울고 웃기는 바람에 엉덩이를 확인해야 할 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은 사람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로맨스와 갈등, 위기를 적절히 버무렸다. 성실하게 살아간 보통 사람을 향한 찬사가 녹아있었다. 여기에 글자만 봐도 눈물이 나는 '엄마'를 전면에 세웠다. 딸이 자신의 팔자를 닮을까 두려웠던 엄마, 그런 엄마를 원망하며 홀로 아들을 키워낸 엄마, 유복자를 그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게 키워낸 엄마까지. 우리는 여러 엄마를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마주할 수 있었다. 흔히 드라마 전개를 위해 소모적으로 쓰이는 '민폐 여주인공'도 없었다. 맹수 같은 동백은 자신을 스스로 지켰다.

'동백꽃 필 무렵'은 KBS가 올해 내놓은 최고의 히트작이자, '지상파의 위기'라 불리는 시대가 원하는 가장 모범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와의 적절한 공조도 이뤄졌다. 심지어 '나인 써? 난 텐 써' 같은 대놓고 한 PPL까지 재치있었다. 드라마 인기로 촬영지인 포항까지 북적거린다.

거창하게 시작하긴 쉬워도 근사하게 끝내기는 참 어렵다. '동백꽃 필 무렵'은 끝까지 야금야금 부지런히 그 일을 잘 해냈다. 마지막 회에 본인이 던진 '떡밥'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매조진 작가의 힘과 그 재밌는 대본을 고스란히 살린 배우들의 노력을 꼭 느껴주길. '동백꽃 필 무렵'의 유일한 단점은 21부가 없다는 점이다."(박소현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현록 장진리 강효진 박소현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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