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엇갈리는 희비, 요렌테와 판 데이크 ⓒ연합뉴스/AP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승자독식. 축구에서 모든 영광은 승자가 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120분 동안 펼쳐진 이 경기에서 주인공은 둘인 때도 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이하 아틀레티코)는 12일(한국 시간) '적지'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린 2019-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리버풀(잉글랜드)을 3-2로 꺾었다. 1,2차전 합계 4-2로 리버풀을 누르고 8강에 합류했다.

이제 역사는 8강에 오른 아틀레티코를 기억할 것이다. 리버풀 역시 멋지게 싸웠기에, 아틀레티코의 승리가 더욱 빛이 났다.

대비가 명확해 더 멋졌다. 아틀레티코와 리버풀은 자신들의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색깔은 분명히 달랐지만, 목표는 오직 승리였다. 두 명장은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축구로 120분 동안 싸웠다.



◆ 97분 주도한 리버풀

"우리의 진짜 실수는 연장전이 아니라, 90분 내에 두 번째 골을 넣지 못한 것이다. 90분은 엄청났다. 선수들은 좋은 경기를 했다." - 위르겐 클롭 감독

위르겐 클롭 감독은 공격적인 축구를 믿는다. 밀집 수비를 만나면 쉼없이 공격해 상대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를 기다린다. 전반전에만 11개 슈팅을 퍼부었고 43분 조르지뇨 베이날둠의 천금같은 골이 나왔다. 1,2차전 합계 1-1, 원점 복귀였다.

균형을 맞췄지만 기다리는 대신 아틀레티코를 잡으러 나갔다. 경기 내용이 이를 반영한다. 후반전 45분 동안 15개 슛을 더 시도했다. 문제는 골 결정력. 21분 앤디 로버트슨의 헤딩은 골대를 때렸고, 42분 모하메드 살라가 만들었던 완벽한 찬스는 높이 솟았다. 골문으로 향하는 슈팅은 모두 얀 오블락이 막았다. 아틀레티코는 강력한 수비와 역습을 자랑하지만 리버풀은 전방 압박으로 경기 내내 주도권을 유지했다.

연장전에도 리버풀의 축구는 똑같았다. 공격으로 아틀레티코를 뚫으려고 했다. 연장 전반 4분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골이 터질 때까진 리버풀의 경기 전략이 완벽했다. 불안 요소는 시간이 26분이나 남았다는 것이었다. 수비수 페어질 판 데이크도 "에너지로 넘쳤고 찬스를 만들었다. (정규 시간 동안) 모든 것이 갖춰졌지만 두 번째 골만 없었다"며 정규 시간 내 끝내지 못한 것이 부메랑이 됐다고 표현했다.

▲ 이번엔 패한 클롭 감독 ⓒ연합뉴스/EPA

◆ 97분을 기다린 아틀레티코

아틀레티코는 우선 수비였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최근 전방 압박을 자주 펼치지만 '선 수비 후 역습'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이다. 선발로 디에고 코스타와 주앙 펠릭스를 기용해 누르려고 했지만 잘 통하지 않았다. 리버풀의 힘이 워낙 강했다. 시메오네 감독은 후반 11분 교체 카드를 쓴 것을 두고 "코스타와 마르코스 요렌테의 교체는 사실 수비적인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아틀레티코는 '원정 팀의 무덤' 안필드에서 견디기를 시도했다. 

수많은 위기를 넘어야 했다. 10명의 필드 플레이어 모두가 사력을 쏟았다. 120분이 막을 내리고 기록된 '뛴 거리' 통계의 최상단엔 사울 니게스(15.96km), 코케(15.69km), 토마 파티(14.84km)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리버풀에서 가장 많이 뛴 선수는 로버트슨으로 14.19km를 뛰었다. 그리고 시메오네 감독이 "골키퍼계의 메시"라고 표현한 오블락은 9개의 세이브를 하며 최후의 보루가 됐다. 분명 리버풀에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아틀레티코는 언젠가 찾아올 찬스를 기다리며 견뎠다.

연장 전반에 터진 피르미누의 득점. 리버풀에 리드를 안겼지만 동시에 방심도 안겼다. 클롭 감독은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다리가 무거워졌다. 90분 내내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약간 뻣뻣해졌다. 크로스가 같은 질을 유지하지 못했다. 첫 번째 골을 넣었을 때 같은 크로스를 원했다. 아주 좋았다. 선수들이 그것을 잊었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축구에선 상대를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다. 디에고 코스타, 주앙 펠릭스, 앙헬 코레아로 전방부터 압박하려고 시도했다. 리버풀의 2번째 골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2-1을 만들었고, 그 골이 들어갈 때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아틀레티코 파고든 틈은 그곳이었다. 하지만 아틀레티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메오네 감독은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선수들도 반응했다. 연장 전반 7분에 아드리안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고, 요렌테가 득점에 성공했다.

▲ 시메오네의 환호

◆ 23분은 아틀레티코의 뜻대로

고진감래. 요렌테의 득점으로 1,2차전 합계 2-2가 됐지만, 원정 득점을 터뜨린 아틀레티코가 8강에 오를 수 있었다. 아틀레티코는 이제 한결 여유를 갖고 수비하고, 역습을 노릴 수 있었다. 마음 급한 리버풀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장 전반 추가 시간과, 연장 후반 추가 시간에 요렌테와 모라타가 추가 골을 터뜨렸다.

리버풀엔 불운이, 아틀레티코엔 행운이 따른 결과다. 유럽축구연맹(UEFA) 주관 대회에서 '원정 골'은 연장전에도 적용된다. 시메오네 감독은 "우리는 원정 골을 넣을 수 있는 시간이 30분 더 주어졌다. 리버풀은 그 기회가 없었다. 이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연장전에 돌입하는 순간 원정 골 우선 원칙은 사라진다. 조별 리그에서 1위 팀들이 진출과 탈락이 결정되는 것은 2차전을 홈에서 치른다. 원래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조건이 '원정 골' 하나에 뒤바뀌었다.

오로지 운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리버풀이 노출한 한 번의 실수는, 사실 아틀레티코가 경기 내내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기도 했다. 요렌테의 득점은 아틀레티코 선수들의 적극성에서 나왔다. 요렌테가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를 압박하고, 아드리안에겐 코레아가 달려들었다. 아드리안의 명백한 실수지만, 아틀레티코가 포기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실수다.

▲ 모라타(가운데)의 쐐기 골과 주저앉은 고메즈(오른쪽) ⓒ연합뉴스/EPA

◆ "적절한 축구" 클롭 논란의 발언

경기 뒤엔 논란도 일었다. 클롭 감독이 영국 'BT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아틀레티코같은 팀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다. 그런 실력을 가진 팀이 왜 이런 축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코케, 사울 니게스, 마르코스 요렌테 같은 선수들을 봐라. 그들은 적절한 축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진영에 물러나서 역습을 노린다"며 아틀레티코의 경기 운영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논쟁의 핵심은 축구를 보는 두 감독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 아닐까. 클롭 감독은 리버풀은 물론이고 도르트문트에서도 승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밀집 수비를 뚫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격해야 했고, 이를 위해 압박 강도를 높였다. 클롭 감독의 축구는 이제 하나의 '스타일'이다. 클롭 감독이 보기에 시메오네 감독의 스타일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클롭 감독은 볼멘소리를 한 뒤에 "승자가 항상 옳다. 그래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시메오네 감독도 이를 짧게 반박했다.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스타'에 따르면 시메오네 감독은 "리버풀 선수들과 그들의 수준 높은 축구를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단점을 이용해야 한다. 승리하기 위해 경기했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실수'를 언급하는 것에서 시메오네 감독이 축구를 보는 눈을 읽을 수 있다. 2011-12시즌 중반 아틀레티코 지휘봉을 잡은 뒤 시메오네 감독은 강력한 수비와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거나 때론 유도해 공격하는 것을 팀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120분 내내 리버풀과 아틀레티코는 자신의 방식으로 싸웠다. 97분까진 리버풀이 승리를 손에 거머쥐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후 아틀레티코가 자신의 방법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목표는 같지만 너무도 다른 축구. 우리가 리버풀에서 벌어진 120분 경기에 열광했던 이유가 아닐까.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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