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어떤 이유로 문득 떠오르는 노래들. 그 노래들을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소개합니다.

▲ 이문세 5집 표지.

[스포티비뉴스=연예 에디터]<1>이문세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아침 출근길. 자동차 보닛 위에 떨어져 있는 연한 보라색 꽃잎. 라일락이 어느새 지고 있다. 외출이 금기시되던 엄혹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봄이 왔고, 부지불식간에 맞이한 봄은 라일락 꽃잎을 떨어뜨리며 벌써 떠날 채비를 한다. 봄을 채 즐기지도 못했는데.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으로 시작하는 노래.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떠올랐다. 이문세 5집(1988)에 수록된 이 노래는 고 이영훈이 노랫말도 쓰고 멜로디도 만들었다. 젊은 날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곡으로, 떠나간 연인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원망이 시적인 노랫말에 배어 있다.

이문세와 한창 콤비를 이루던 80년대, 이영훈의 작업실은 서울 대학로에 있었다. 평소 산책하며 사색하기를 좋아했던 고인은 대학로에서 밤새 작업을 하고 푸른 새벽이 오면 걸어서 집으로 가곤 했다. 대학로를 나서 창경궁 앞을 지나 광화문에 다다르면 다시 광화문 사거리를 거쳐 덕수궁이 있는 정동길을 걸었다. 5월 혜화동, 동숭동 주택가엔 라일락이 피었다.

벚꽃이 물러가면 피어나는 라일락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도심 빌딩의 화단에도 있고, 아파트 단지 정원에도 있으며, 골목길 단층집 마당에도 있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잊을 수 없는 기억에/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라일락 꽃 향기를 맡으면 그녀가 떠오르고, 눈부신 5월의 햇살처럼 쏟아지는 그리움에 버스 창에 기대어 눈물 짓고 만다. 라일락은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라 그리움의 정서를 담을 수 있었다. 어디서나 떠오르는 그의 얼굴을 다른 꽃이 아닌 라일락에 투영한 것이리라.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떠가는 듯 그대 모습/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그리움에 길을 나서 가로수 나무 아래 서면, 그의 모습은 떠가는 듯 하고, 밤새 그리움에 고통 받다 아침 산책길에서 맞는 차가운 가을 비바람에 그리움을 애써 씻어내곤 했을 터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우 우 여위어 가는 가로수/그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우 우 아름다운 세상/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우 우 저 별이 지는 가로수/하늘 밑 그 향기 더 하는데/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세상은 아름답지만 사랑을 잃은 남자는 슬펐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리움은 씻겨지지 않았고, 그 그리움이 오롯이 노래에 담겼다. 길을 걸으며 만났던 아름다운 풍경과 상념들은 그렇게 노래 곳곳에 담겼다.

P.S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에 나오는 가로수는 어디에 있는 나무일까. 마로니에공원에 늘어선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이다.

스포티비뉴스=김원겸 기자 gyumm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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