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롯데 허문회 감독(왼쪽)과 1986년 청보 허구연 감독 ⓒ고봉준 기자·KBO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선수 시절 별명은 '허물렁'. 사람 좋고 물렁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속이 단단한 남자다. 롯데 허문회(48) 감독은 아직 지는 느낌을 경험하지 못했다. 지휘봉을 잡자마자 연전연승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준비된 감독. 아직 5경기밖에 하지 않았지만, 사령탑 데뷔 후 5연승 고공비행이다.

역사가 눈앞이다. 이 부문 역대 최고 기록은 1999년 고(故) 김명성 감독이 작성한 6연승. 롯데를 마지막 한국시리즈 무대로 이끈 해였다.

롯데는 12일 사직에서 지난해 챔피언 두산을 만난다. 만약 두산전에서 승리한다면 허문회 감독은 김명성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감독 데뷔 최다 연승 역대 2위인 5연승에서 멈출게 될지, 아니면 역대 최고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새 역사에 도전할 찬스를 얻을지, 그의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허문회 감독의 5연승을 계기로 역대 KBO 감독들의 데뷔 연승과 연패의 역사를 다시 탐험해 본다. 

▲ 롯데 선수들이 올 시즌 연일 드라마 같은 승부를 펼치면서 개막 이후 5연승을 달리며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로이스터 넘은 허문회…김명성 6연승 도전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지난해까지 한번이라도 지휘봉을 잡은 감독(감독대행 제외)은 모두 59명. 여기에 올해 새 감독 4명이 추가됐다. KIA 맷 윌리엄스, 삼성 허삼영 감독, 키움 손혁 감독, 그리고 롯데 허문회 감독이다. KBO리그 역대 감독은 이제 총 63명으로 늘어났다.

이들 중 지난해까지 감독 데뷔 후 4연승 이상 기록한 인물은 단 2명. 공교롭게도 전임 롯데 감독들이었다. 1999년 개막 6연승의 김명성 감독과 2008년 개막 4연승을 기록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다.

1998년 중반 롯데 감독 대행을 맡았다가 1999년 정식 사령탑에 오른 김명성 감독은 그해 시즌 개막전인 4월 3일 사직 두산전에서 승리한 뒤 4월 10일 잠실 LG전까지 6연승 무패 가도를 달리며 역대 1위 기록을 남겼다.

롯데는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 꼴찌 팀. 그러나 1999년 김명성 감독이 지휘한 롯데는 개막부터 연승 드라이브를 걸더니 결국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진출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1승4패로 물러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김명성 감독은 롯데 역사상 4번째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이끈 인물로 남아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해, 벌써 21년 전의 일이다.

불행하게도 김명성 감독은 2001년 7월, 경기가 없던 날 남해로 바다낚시를 떠났다가 호흡곤란 증세로 갑자기 숨을 거뒀다. KBO리그 역사에서 현역 감독이 세상을 떠난 것은 김명성 감독이 유일하다.

2008년 롯데는 KBO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를 영입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에게 ‘노피어’ 정신을 이식하며 화끈한 신고식을 했다. 개막전인 3월 29일 대전 한화전 승리를 시작으로 4월 2일 사직 SK전까지 4연승을 질주했다.

김명성 감독의 6연승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감독 데뷔 4연승은 지난해까지 역대 2위 기록. 2001년부터 2007년까지 8개 구단 체제에서 '8888577' 순위를 찍으며 암흑기에 빠져 있던 롯데를 가을야구로 인도했다. 이에 보답하듯 롯데팬들은 사직구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올해 허문회 감독이 로이스터 감독을 뛰어넘으며 역대 2위로 올라섰다. 5월 5일 시즌 개막전인 수원 kt부터 10일 사직 SK전까지 5연승을 올리며 '역대 감독 데뷔 최다 연승' 리스트에서 로이스터를 3위로 밀어냈다.

◆ 데뷔 3연승 이상 감독 9명 중 8명 가을티켓, 5명은 KS행

지난해까지 KBO리그 감독 데뷔 후 3연승 이상 기록한 인물은 총 9명이었다. 그 중 8명은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2015년 개막 3연승을 기록한 롯데 이종운 감독만 그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5년 롯데는 개막 3연승 후 1패, 다시 2연승을 거두며 초반 5승1패로 쾌조의 출발을 했으나 결국 봄에만 반짝 불어닥친 찻잔 속에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뒷심 부족으로 8위로 끝났다.

▲ 두산 김태형 감독은 데뷔 첫해 개막 3연승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곽혜미 기자
<역대 감독 데뷔 최다 연승>

①6연승=1999년 롯데 김명성 감독

②5연승=2020년 롯데 허문회 감독

③4연승=2008년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

④3연승=2015년 두산 김태형 감독, 2015년 롯데 이종운 감독, 2012년 SK 이만수 감독, 2005년 삼성 선동열 감독, 2000년 LG 이광은 감독, 1999년 한화 이희수 감독, 1993년 삼성 우용득 감독

이들 중 5명은 팀을 한국시리즈 무대로 이끌었다. 1993년 삼성 우용득 감독(준우승), 1999년 한화 이희수 감독(우승), 2005년 삼성 선동열 감독(우승), 2012년 SK 이만수 감독(준우승), 2015년 두산 김태형 감독(우승). 결과적으로 3명은 데뷔 후 연승 분위기를 살리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 청보 허구연 감독, 역대 최다 7연패

KBO리그 역사상 감독 데뷔 후 최다 연패 기록은 1986년 청보 핀토스 사령탑에 오른 허구연 감독이 갖고 있다. 7연패다.

1985년 시즌 도중 삼미를 인수해 후기리그부터 프로야구에 뛰어든 청보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10월에 허구연 해설위원을 감독으로 깜짝 선임했다. 라면과 청바지가 주력 사업이었던 청보는 프로야구 코치 경험은 없지만 원년부터 해박한 야구 지식으로 명해설을 해온 허구연 위원을 곧바로 감독으로 기용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1951년생으로 당시 나이 만 34세. 1986년생인 박병호(키움)가 올해 감독에 오른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는 것과 지휘봉을 잡는 것은 달랐다. 1986년 개막전인 3월 29일 대구 삼성전에서 5-6으로 1점차 패배를 당한 뒤 4월 5일 인천 빙그레전까지 7연패의 늪지대에 빠졌다.

4월 6일 춘천구장에서 신생팀 빙그레를 상대로 천신만고 끝에 연패에서 탈출했다. 8회초까지만 해도 3-8로 끌려가 8연패가 눈앞. 그러나 막판 극적인 대역전 드라마를 찍었다. 8회말 3점을 뽑아 6-8로 따라붙은 뒤 9회말 양승관의 끝내기 3점홈런이 터지며 9-8로 역전승을 거둔 것. ‘7전8기’로 첫 승을 거둔 허구연 감독은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 2017년 SK 사령탑에 오른 트레이 힐만 감독은 KBO리그 데뷔 후 6연패에서 시작했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곽혜미 기자
<역대 감독 데뷔 최다 연패>

①7연패=1986년 청보 허구연 감독

②6연패=2017년 SK 트레이 힐만 감독

③5연패=2019년 kt 이강철 감독, 2017년 넥센 장정석 감독, 1988년 MBC 유백만 감독

⑥4연패=1989년 OB 이광환 감독

허구연 감독의 7연패 뒤를 이어 2017년 SK 와이번스 사령탑에 오른 트레이 힐만 감독이 6연패를 당해 역대 2위에 올랐다. 로이스터 다음으로 KBO리그 역대 두 번째 외국인 사령탑이 된 힐만 감독은 그해 3월 31일 개막전에서 kt에 2-3으로 패하더니 4월 7일 인천 NC전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반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4월 8일 NC전에서 9-2 승리를 거둔 뒤 10경기에서 9승1패를 기록한 것. 그리고는 그해 5위로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2018년에는 역대 외국인 감독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의 역사를 쓴 뒤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힐만 감독에 묻혔지만 2017년에는 또 다른 초보 사령탑의 혹독한 신고식도 있었다. 넥센 히어로즈 새 선장이 된 장정석 감독은 개막 이후 5연패부터 시작했다. 그해 성적표는 7위. 2018년 4위로 가을무대에 올랐고, 계약 만료해인 2019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히어로즈는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장정석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손혁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데뷔 후 5연패의 쓴맛을 본 감독은 장정석 감독 외에 2명 더 있다.1988년 MBC 유백만 감독과 2019년 kt 이강철 감독이다. 지난해 이강철 감독은 개막 5연패에 이어 12경기에서 2승10패로 부진한 출발을 했지만 뒷심을 발휘하며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kt는 올해도 초반 행보가 무겁다. 개막 3연패로 시작하더니 5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1승4패. 지난해 기억을 되살려 다시 반격의 마법을 부릴지 궁금하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