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 가고 있는 SK 김정빈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타자들의 애를 태우는 헛스윙을 보면 얼핏 정우람(35·한화)이 보인다. 우타자를 얼어붙게 하는 몸쪽 빠른 공을 보면 얼핏 박희수(37·SK)도 보인다. KBO리그를 주름잡았던 두 좌완의 장점을 모두 가진 김정빈(26·SK)의 탄생은 올 시즌 SK의 최고 발견이다.

김정빈은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경기에서 1-0으로 앞선 8회 등판, 안타 하나를 맞기는 했으나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고 시즌 6번째 홀드를 기록했다. 팀이 9회 끝내기 역전패를 당해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김정빈으로서는 20경기, 20⅓이닝 무실점을 이어 가는 경기이기도 했다.

대단한 ‘0’의 행진이다. 불펜투수도 10경기, 10이닝 정도는 무실점 행진을 이어 가는 사례가 간혹 있다. 그러나 김정빈은 시즌 개막 후 20경기에서 단 1점의 자책점도 허용하지 않는 가공할 만한 구위를 선보이고 있다. 올 시즌 10이닝 이상을 소화한 KBO리그의 모든 투수 중 0점대 평균자책점은 총 7명이 있으나 평균자책점 0을 기록 중인 선수는 이제 김정빈이 유일하다. 

지난해 캔버라 마무리캠프 당시부터 김정빈을 ‘1군 선수’로 찍고 전지훈련 기간 내내 공을 들인 SK 코칭스태프의 선택은 적중하는 분위기다. 개막 엔트리에 승선했고, 이제는 좌완 셋업맨으로 승격했다. 당초 SK 코칭스태프는 김정빈을 편한 상황에서 올려 1군 무대에 적응할 시간은 준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팀 불펜의 사정, 그리고 김정빈의 안정적인 활약이 계속되자 이제는 필승조로 활용하고 있다.

입대 전부터 구속 상승세가 도드라졌던 투수고, 체인지업의 위력은 2군 시절부터 인정을 받던 투수였다. 대투수이자 체인지업의 장인인 정우람도 김정빈의 체인지업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을 정도였다. 타자들은 김정빈의 체인지업에 대해 “마지막에 공이 붕 떴다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패스트볼과 똑같은 폼에서 나오는데 마지막 궤적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좌타자 상대로는 슬라이더까지 장착하며 약점을 하나 지웠다.

이런 체인지업·슬라이더 승부가 가능한 것은 역시 패스트볼의 위력 덕이다. 평균 143㎞가 넘는 구속은 좌완으로서는 빠른 편에 속한다. 여기에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력도 갖췄다. 부상 전 구속까지 갖췄던 박희수의 로케이션이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다. 아직 기복은 있지만 타자 무릎 높이에서만 형성되면 피안타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구위에 비해 제구가 부족했다는 평가가 늘 따라다녔다. 사실 2군에서 던질 때는 공을 포수 위로 던지는 일도 많았고, 연속 볼넷도 많았던 투수다. 캔버라 유망주캠프 당시까지만 해도 김정빈은 “제구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최상덕 투수코치의 생각은 달랐다. 최 코치는 “존을 넓게 보고 그냥 한가운데 던져라”고 주문했다. 그래도 타자들이 쉽게 덤벼들지 못할 구위를 가지고 있다고 봤다. 

이처럼 생각의 변화, 밸런스 교정 등이 이어지며 지금의 김정빈이 탄생했다. 제대 후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김정빈의 단단한 각오도 성장 속도에 가속도를 붙였다. 0의 행진을 계속 이어 가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5년 이상 SK 불펜을 책임질 수 있는 좌완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은 큰 성과다. 정우람은 군 문제를 해결하고 1군에 돌아온 첫 시즌은 만 30세, 박희수가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로 평가된 첫 시즌은 만 28세였다. 김정빈도 결코 늦지 않다.

2013년 SK의 3라운드(전체 28순위) 지명을 받은 김정빈은 육성선수 신분을 거쳐 2015년 정식선수로 등록됐다. KBO는 “지명은 2013년이지만, 정식선수 등록은 2015년이라 올해까지 신인왕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형준(kt) 이민호(LG) 등이 이끄는 신인왕 레이스에 당당히 합류한 셈이다.

그러나 김정빈은 오히려 팀 성적을 생각한다. “언젠가는 깨질 기록”이라며 평균자책점 0의 행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김정빈은 “신인왕에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결국 신인왕도 팀 성적이 좋아야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팀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왕이면 이기는 경기에서의 경험을 더 많이 쌓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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