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고 박무승 감독이 20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황금사자기 준결승전에서 광주진흥고를 3-0으로 꺾은 뒤 눈물을 훔쳐내고 있다. ⓒ목동, 고봉준 기자
[스포티비뉴스=목동, 고봉준 기자] 카리스마 넘치게 선수들을 지휘하던 중년의 사령탑은 경기를 마친 뒤 벅찬 가슴을 안고 감독실로 향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10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벌건 두 눈을 연신 닦아내던 지휘관은 “이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면 안 되는데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면서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해고 박무승(48) 감독. 일반 야구팬들에겐 낯설기만 한 이름이다. 현역 시절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야구공을 내려놓은 무명의 포수였기 때문이다.

오랜 무명 생활과 숱한 지도자 경력을 거친 뒤 지난해 김해고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2003년 창단한 김해고의 사상 첫 4강행 그리고 결승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김해고의 역사가 새로 쓰인 날은 광주진흥고와 준결승전이 열린 20일이었다. 이날 김해고는 광주진흥고를 3-0으로 꺾고 그토록 그리던 결승행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박 감독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이번 황금사자기에서 사상 첫 전국대회 결승행을 이뤄낸 김해고 선수들. ⓒ곽혜미 기자
경기 후 만난 박 감독은 “여느 해보다 힘들었을 올해 동계훈련을 견뎌낸 선수들이 정말 대견할 따름이다. 마치 우승을 한 듯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김해고는 사실 전국대회에서 늘 약체로 분류됐는데 올해 이렇게 결승까지 올라섰다. 개인적으로도 감독으로서 이렇게 큰 대회에서 뜻깊은 일을 해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야구 명문 마산상고와 경성대를 거친 박 감독은 곧바로 상무에서 군 복무를 이행한 뒤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이름은 박지영(5년 전 박무승으로 개명). 또래들에게 밀리지 않는 건장한 체구를 지녔지만, 1군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 단 하루도 1군 경기를 뛰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 박 감독은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모교인 마산용마고를 시작으로 홍익대와 충주성심학교 그리고 덕수고에서 제자들을 길러냈다.

▲ 김해고 박무승 감독. ⓒ목동, 고봉준 기자
박 감독은 “여러 학교에서 코치와 감독으로 지내며 정말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특히 홍익대에선 장채근 감독님, 덕수고에선 정윤진 감독님으로부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은 바로 충주성심학교에서의 지도자 생활이었다. 박 감독은 “1년 반은 코치로, 1년 반은 감독으로 학생들과 동고동락했다. 충주성심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청각장애를 지닌 선수들로 구성돼있다. 그래서 말이 아닌 눈빛과 몸짓으로 작전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눈과 눈을 통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덕수고로 자리를 옮겨 3년간 수석코치를 지낸 박 감독은 지난해 김해고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날짜는 6월 22일. 공교롭게도 이번 황금사자기 결승일과 같다.

박 감독은 “곰곰히 생각해보니 결승 날짜가 1년 전 김해고 부임일과 같더라. 운명 아니겠는가”라며 웃었다.

▲ 학부모들이 손수 준비한 응원 플래카드를 들고 황금사자기 결승 진출을 자축하고 있는 김해고 선수들. ⓒ목동, 고봉준 기자
김해고를 사상 첫 전국대회 결승으로 올려놓은 박 감독은 22일 오후 6시30분 목동구장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른다. 상대는 최재호 감독이 지휘하는 강릉고. 아직 사령탑으로서 경력이 적은 박 감독과 달리 최 감독은 덕수고와 신일고에서 숱하게 우승을 경험한 베테랑이다.

박 감독은 “최재호 감독님은 설명이 필요없는 고교야구계 명장 아니신가. 함께 우승을 놓고 다툰다는 점만으로도 영광이다”면서 “많은 분들께선 ‘고교야구 전국대회 결승전은 재미가 없다’고 하신다. 본선을 치르는 동안 에이스들이 너무나 자주 등판해 정작 결승전에선 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황금사자기는 우리학교 김유성과 강릉고 김진욱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다. 고교야구의 진수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고의 경기를 팬들께 보여드리겠다”고 출사표를 올렸다.

스포티비뉴스=목동, 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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