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5개월 전 70억 원의 몸값으로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던 김민재(가운데, 등번호 4번). 현재는 203억으로 크게 뛰었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최근 들어 한국 축구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큰돈을 향해 중국, 중동을 가는 경우와 K리그에서 적당히 경력을 쌓은 자원들이 일본에서 이름값을 높이거나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일종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경우다.

유럽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은 미국프로축구(MLS)나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스위스 슈퍼리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벨기에 주필러리그 등 중소 리그에서 실력을 쌓아 빅리그로 가거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프랑스 리그앙 등 '유럽 5대 리그'로 향한다.

거액을 손에 넣는 중국, 중동행은 비판의 대상에 오르고는 했다. 물론 선수의 선택은 자유다. 주변에서는 모르는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정말로 뛰고 싶은 무대라고 할 수도 있다. 날이 갈수록 살림이 쪼그라들어 실력 이상의 연봉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K리그에서 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생길 수 있다.

축구는 세계와 연동하는 스포츠다. 중국, 일본 등 인접국에서 거액을 써서 리그 발전을 꾀하는 반면, 산업적 구조가 취약해 (모기업이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이 아니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국내 상황에서는 고연봉자군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추정치'로 산업 규모를 재미있게 가늠하던 리그를 구성원들의 반대가 정말 심했던 연봉 공개로 얼어 붙게 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선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리인들의 생각은 확고하다. 많은 선수와 일했던 A대리인은 "프로축구연맹이 재정 투명화, 구단 운영비 대비 선수 인건비가 과하다는 생각으로 연봉 공개를 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일부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적 시장이 얼어붙은 지는 오래됐고 좋은 선수는 타 리그로 나간다. 선수 팔아서 구단 재정 연명하는 셀링리그로 알아서 유도한 것 아닌가. 거액으로 선수를 판 구단의 재정이 나아졌는가"라고 주장했다.

물론 상업적 가치만으로 모든 것을 따지기는 어렵다. 팬의 사랑을 먹고 사는 '국가대표급' 선수라면 더 그렇다. 국가대표의 행동이 파장을 낳고 영향력을 뿌린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좋은 실력을 두고 '도전'이 아닌 '안주'를 택했다는 편견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국가대표급 자원들이 유럽이 아닌 중동이나 중국을 택한 뒤 도전 의식이 없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 황희찬(왼쪽)은 손흥민(오른쪽)과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뛸까. ⓒ한희재 기자

'괴물'로 불리는 김민재(24, 베이징 궈안)이 그랬다. 김민재는 지난 2019년 1월 전북을 떠나 베이징 궈안(중국)으로 이적했다. 이적료 578만 달러(약 70억 원)로 전북에 큰돈을 안겨다 줬다. 하지만, 왓포드(영국) 진출이 가능했음에도 베이징을 택해 비난을 온몸으로 맞았다. 김민재의 구상에 유럽이 있지만, 당장은 아니라는 계획이 있었어도 왓포드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에 무조건 가라는 여론은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화끈하게 쐈다.

흥미롭게도 1년 5개월이 지난 현재, 김민재에게는 왓포드가 아닌 손흥민(28)의 토트넘 홋스퍼가 진출 팀으로 거론되고 있다. 에버턴, 아스널 등 중상위권 구단에 PSV에인트호번(네덜란드), FC포르투(포르투갈), 라치오, 인테르 밀란(이상 이탈리아)까지 튀어나왔다. 강등권을 허덕이던 왓포드가 아닌 최소 중상위권이나 자국 리그 최고 명문 팀들이다. 이적료는 1천350만 파운드(203억 원)나 된다.

김민재에 대한 호평은 같은 전북 출신 이재성(28, 홀슈타인 킬)에게도 닿아 있다. 이재성은 지난해 여름부터 프리메라리가 세비야가 지켜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올 1월 초에는 왓포드, 웨스트햄도 이재성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브라이턴 호브 알비언으로 확대됐다. 프리미어리그 최종 입성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끝없이 도전하는 의식 그 자체는 호평받아 마땅하다.

차분하게 오스트리아 무대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CL)를 경험한 황희찬(24, 잘츠부르크)의 행보도 반가운 일이다. 비싼 수비수 페어질 판 데이크(29, 리버풀)와 칼리두 쿨리발리(29, 나폴리)를 제치는 능력은 울버햄턴, 에버턴, 아스널, 라이프치히를 유혹했다.  

둘 외에도 국내 팀 제안을 마다하고 신트트라위던(벨기에)에서 계속 도전을 택한 이승우(22)나 주전 경쟁을 택한 이강인(19, 발렌시아CF)의 의지도 반가운 일이다. 이는 똑같이 유럽 진출을 노리는 황인범(24, 밴쿠버 화이트캡스) 등 다른 선수들에게도 적용된다.

2년 전, 한국 축구는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 후보 독일을 2-0으로 잡는 파란을 일으켰다. 투지와 선진 축구 흐름을 이식한 선수들의 노력이었다. 다만, 스웨덴과 멕시코를 상대로 종이 한 장 차이로 졌다. 그들 대다수는 유럽파였고 우리는 손흥민과 기량에 정점을 찍었던 구자철(31, 알 가라파), 기성용(31, 마요르카)만 있었을 뿐이다. 기성용은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손흥민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유럽이나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기술적으로 우위를 보였다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는 16강 좌절이라는 냉정한 결과로 나왔다.

하지만, 빅리그에 가겠다는 지금의 도전 의식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팬들에게는 유럽 큰 무대에서 뛰는 볼거리를, 대표팀의 전력을 탄탄하게 해주는 기대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들이 국내 팬들의 밤잠을 더 설치게 만들 그 날을 기대한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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