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심한 스트레스로 당분간 병원 신세를 지는 염경엽 SK 감독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염경엽 SK 감독은 경기가 없었던 지난 22일 주위에 부지런히 전화를 돌렸다.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위치나 신분은 상관이 없었다. 염 감독은 “지금 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가감 없이 알려달라”고 했다. ‘감독 타이틀’이라는 자존심은 없었다. 그만큼 절박하게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즌 초반 충격의 10연패를 당한 SK는 지난 주 걸린 6경기에서 모두 졌다. 조금 올라가려고 하는 찰나에 다시 연패가 시작된 것이다. 염 감독은 특히 지난 주중 kt와 3연전에서 모두 진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당시 SK는 첫 2경기에서 9회 2사까지 앞서고 있다 결국은 경기가 뒤집혔다. 염 감독은 “상황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 하늘만 쳐다봤다”고 했다.

나름대로 모든 방법을 다 써보고 있었다. 염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베테랑인 최정 김강민을 불러 선수단의 이야기도 들어봤다”면서도 “트레이 힐만 전 감독 당시 선수단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했는지 참고해 그대로 따라도 해봤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지난해 역대급 추락에도 “모두 감독의 책임이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핑계를 대지 않았다. 내가 그걸 가장 잘 안다”고 실패를 오롯이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올해 시즌 초반 부진했을 때도 항상 “성적에 대한 책임은 감독이 진다. 선수들은 부담 없이 뛰어달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선수들이 극심한 부담감에 짓눌려 경기장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된 24일에는 약 10명 정도의 선임 선수들과 저녁 식사 자리도 가졌다. 선수들에게 고기를 사주며 “분위기를 전환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실 이런 회식이 염경엽 감독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뭔가 하나로 뭉쳐보고 싶다는 절박함이었다. 코칭스태프 회의를 통해 외국인 선수 닉 킹엄의 대안을 생각하고, 김태훈을 불펜으로 돌려 뒷문을 보강하는 등 전력 상승 여지를 만들기 위한 여러 대책도 논의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25일, 결국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경기 도중 쓰러졌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심신이 쇠약한 상태로 당분간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염 감독은 지난해 성적 부진 이후 줄곧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캠프 때도 그랬다. 원래 식사량이 적은데 그마저도 먹지 못했다. 여기에 불면증도 심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민이 많다보니 흡연도 늘어났고, 건강 상태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구단에서도 우려가 심했다. 날이 갈수록 확연히 낯빛이 어두워지고, 목소리에 힘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를 매일 보는 취재진도 심상치 않은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죄인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식사를 잘 하셔야 한다”는 기자의 말에 염 감독은 “연패 감독이 무슨 자격으로…”라면서 말을 아꼈다. 주위의 격려와 응원도 성적 추락을 고민하는 염 감독의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내색하지 않았다. 문승원은 25일 경기 후 “잘 몰랐는데 쓰러지시니까 ‘많이 힘드셨구나’는 생각을 했다”고 미안해했다. 선수들은 “감독님이 요즘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고맙다’, ‘미안하다’다”고 말한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어떻게든 기를 살리려는 노력이었다. 코칭스태프 교체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을 지면 된다"고 보호막을 쳤다. 이처럼 200일 이상을 홀로 끙끙 앓던 염 감독은 강제로 휴식을 갖는다.

현재 SK는 리더십 교체 구상이 전혀 없다. 하지만 염 감독은 성적은 감독이 책임을 진다는 말을 몇 차례 되풀이했다. 어쩌면 지금 성적과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는 것에 있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올 시즌 유의미한 반등을 이뤄내지 못하거나, 내년에 대한 뚜렷한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고, 또 그래야 할 수도 있다. 올 시즌 성적이 염 감독의 3년 임기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100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끝까지 달려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건강을 해치면 여러 상황에서의 판단력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팀의 운영을 좌우하는 감독으로서는 치명타다. 한편으로는 쓰러진 염 감독이 SK 선수단의 분위기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감독만큼은 아니더라도, 선수들도 떨어진 개인 성적과 팀 성적에 대해 더 진지한 고민을 해볼 때가 됐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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