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위기 상황에서 팀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SK 박민호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강판된 김정빈(26·SK)의 얼굴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26일 인천 LG전에서 팀이 5-0으로 앞선 7회 마운드에 오른 김정빈은 1사 만루 위기에 몰린 끝에 강판됐다.

올 시즌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오른 김정빈은 이날 경기 전까지 21경기에서 21⅓이닝 동안 단 1실점도 하지 않았다.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이었다. 그런데 1사 만루라면 실점 확률이 높았다. 팀이 5-0으로 앞서고 있었기에 후속 투수는 1점을 주더라도 대량 실점을 막는 투구를 계산하기 마련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김정빈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박민호(28·SK)는 점수를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1사 만루에서 대타 정근우와 상대한 박민호는 초구부터 거침없이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며 끝내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2S의 유리한 카운트를 잡고 패스트볼 승부를 벌이다 5구째 체인지업으로 헛방망이를 이끌었다. 

LG가 다시 좌타자인 김호은을 대타로 냈지만 박민호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집어넣더니 결국은 3구만에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하고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김정빈의 실점 위기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환한 미소를 지은 김정빈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박민호를 보고 90도로 인사를 했다. 정작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긴 박민호는 아직 경기의 긴장이 풀리지 않는 듯한 인상이었다.

올 시즌 SK 불펜은 지난해 맹활약했던 셋업맨들이 죄다 부진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무리 하재훈은 블론 세이브만 6번을 기록한 끝에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팀 내에서 가장 홀드가 많았던 서진용도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아슬아슬한 행보다. 김태훈은 선발로 전향했다 다시 불펜으로 돌아왔고, 정영일도 컨디션이 쉽게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박민호만 분전하며 팀 불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박민호는 지난해 47경기에서 50⅓이닝을 던지며 3승1패4홀드 평균자책점 2.68을 기록했다. 홀드가 많지 않았지만 항상 궂은 일을 담당하며 팀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염경엽 감독은 지난해 캠프부터 박민호를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카드로 전략적 육성했다. 묵직한 구위에 땅볼 유도 능력이 있고, 여기에 성품도 침착해 이 임무를 맡길 수 있는 적임자라고 봤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박경완 수석코치 역시 박민호를 주자가 있는 위기 상황에서 써 톡톡히 재미를 봤다. 박민호는 23경기에서 22⅓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42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올해 벌써 5개의 홀드를 수확하며 지난해 기록을 넘어섰다. 초반에 구속이 다소 올라오지 않으면서 고전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어느새 정상을 찾았다. 140㎞대 초반만 나와도 구위가 좋아 공략하기 쉽지 않은 선수인데 이제는 그런 구속이 나오고 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 빛난다. 박민호는 올해 23번의 등판에서 승계주자가 무려 15명이었다. 보통 이닝이 시작될 때 투수를 교체하는 것을 선호하는 SK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그중 홈을 허용한 주자는 딱 2명이었다. 승계주자 실점 비율은 13.3%로 특급 수준이다. 

26일 현재 12명 이상의 승계주자가 있었던 리그 불펜투수 11명 중 실점 비율이 20% 아래인 선수는 박민호가 유일하다. 동료들의 평균자책점을 지켜주는 소중한 투수이자,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리그 최고의 해결사인 셈이다.

SK는 현재 사실상의 집단 마무리 체제를 선언했다. 박민호는 위기 상황에 선발을 구원하는 첫 번째 셋업맨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위치에서 1이닝을 책임지는 셋업맨이 될 수도 있다. 현재 SK 불펜투수 중 구위가 가장 좋다고 해도 무방해 다양한 위치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박민호는 필요할 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투수로 준비를 모두 끝냈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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