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힌 특급 유망주 이건욱은 건강을 되찾으면서 SK 마운드의 주요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부러웠던 랍스터 회식이네요. 회식에 참가한 건 처음인데…”

SK는 매년 미 플로리다 베로비치 1차 전지훈련 종료를 앞두고 선수단 회식을 한다. 질 좋은 랍스터를 직접 공수해 선수단, 그리고 베로비치 훈련 시설 관계자들과 함께 나누며 우정을 다진다. 20일 이상 이어진 타지 생활에 지친 선수들을 격려하는 차원, 2차 캠프로 가기 전 결산의 자리를 마련하는 의미도 있다. 코칭스태프도 이날만큼은 선수단의 저녁 일정을 자율에 맡긴다.

그런 회식 자리에서 감격의 표정을 짓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이건욱(25)이었다. 이건욱은 “랍스터 회식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욱은 베로비치 캠프 참가가 세 번째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문은 곧 풀렸다. 이건욱은 이전 두 번의 캠프에서는 모두 부상으로 조기 귀국했다. 랍스터 회식까지 머물지 못했다. 이건욱은 “두 번 다 일주일을 버티지 못했다. 짐을 좀 풀려고 하면 다시 싸곤 했다”고 씁쓸해했다.

세 번째 캠프에서 맞이하는 첫 랍스터 회식은, 이 특급 유망주의 파란만장했던 부상 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동산고 시절 청소년 대표팀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던 이건욱은 SK의 2014년 1차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 관계자들은 “전면드래프트였다면 지명을 못했을 텐데, 1차 지명이 부활해 다행”이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입단 후 팔꿈치 수술, 발목 부상 등이 겹치며 점점 잊힌 유망주가 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 6년을 싸운 특급 유망주

김광현 이후 SK 최고 계약금(2억 원)에서 보듯 실적과 자질은 충분했다. 그런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고교 시절 많이 던진 이건욱의 팔꿈치는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2014년 플로리다 캠프에 갔으나 팔꿈치 문제로 조기 귀국한 뒤 수술대에 올랐다. 그래도 이때는 희망이 있었다. 팔꿈치 문제만 해결되면 그 다음부터는 별다른 문제없이 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운의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시련은 연쇄적으로 찾아왔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은 이건욱은 2015년 복귀했다.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2015년 가을 교육리그에 참가했다가 발가락 골절상을 당했다. 이건욱은 “그냥 러닝을 하고 있었는데 뚝 하고 부러졌다”고 떠올린다. 개인적으로도 황당한 부상이었다. 그렇게 2016년 준비에 차질이 생겼고, 이는 2군에서 들쭉날쭉한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은 상대 타자가 기가 막히게 던지다가도, 어느 날은 코칭스태프의 기가 막힐 정도로 부진했다.

▲ 이건욱은 팔꿈치 부상, 발가락 골절, 옆구리 부상 등 숱한 부상이 잠재력을 가로막았다 ⓒSK와이번스
2017년 다시 베로비치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옆구리 부상으로 또 조기 귀국했다. 좀 될 만하니 눈이 좋지 않아 경기에 뛰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다. 강화SK퓨처스파크에서는 “참 안 풀린다”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지긋지긋한 부상 악령에 강화 숙소 생활이 길어지며 이건욱의 의지도 꺾여가고 있었다. 1군 출장은 2016년 1경기, 2017년 2경기였다. 그마저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갈 곳은 이제 군대밖에 없었다.

동기들이 하나둘씩 1군에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 이건욱은 1군에서 별로 보여준 것이 없는 2군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현실적으로 군 문제를 해결한 뒤에도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서서히 방출 명단에 가까워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매일 훈련에 매달렸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적을 이겨내기 위한 사투에 들어갔다.

인천에서 일과를 마치면 강화SK퓨처스파크로 향했다. 길이 좋지 않아 왕복 4시간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밤늦게까지 2시간 정도 훈련을 하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주말에도 어김없이 강화를 찾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인천 시내의 한 고등학교에 가 공을 던졌다. 자연히 생각할 시간도 많았다. 이건욱은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 사이 이건욱의 몸과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건강해지고 있었다.

극적인 플로리다 티켓… SK 선발진의 외형을 바꾸다

“건욱이는 어때?”

염경엽 SK 감독은 지난해 11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유망주캠프 당시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확정 소식을 들은 직후 곁에 있던 송태일 SK 육성팀장에게 딱 한 마디를 던졌다. 강화에서 이건욱의 훈련 과정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던 송 팀장은 “페이스가 좋다. 140㎞대 중반까지 던졌다”고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러자 염 감독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플로리다 캠프 명단에 넣자”

단장 시절 이건욱을 눈여겨봤던 염 감독은 그를 예비 선발감으로 점찍었다. 김태훈이 선발로 들어가겠지만, 한 시즌을 풀로 뛰기는 어렵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염 감독 또한 이건욱에 대한 기대치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염 감독은 “건욱이는 선발로 키워야 할 투수다. 다만 시즌 초반에는 2군에서 적응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30명이 간다고 하면, 30번째 선수였다. 극적으로 받은 플로리다행 티켓이었다.

그런 염 감독의 선택이 2020년 SK의 선발 로테이션 판도를 바꿔놓았다. 2년의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이건욱은 스스로 말하는 ‘마의 일주일’을 정상적으로 버텼다. 자체 청백전에서도 위력적인 구위를 뽐내며 코칭스태프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건욱을 2군에서 시작시키려고 했던 염 감독의 구상도 차츰 바뀌었다. 결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건욱은 “1군에서 6선발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신분이 격상되어 있었다.

▲ 아직 경기 체력과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올해 적응기를 잘 보낸다면 내년에는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SK와이번스
그 다음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외국인 선수 닉 킹엄의 부상으로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에 들어갔고, 선발 데뷔전이었던 5월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5⅓이닝 1실점 호투로 데뷔승을 거뒀다.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8경기에서 2승1패 평균자책점 2.78의 호성적을 내고 있다. 이용찬(두산), 케이시 켈리(LG), 양현종(KIA)이라는 검증된 선발을 상대로 팀을 승리로 이끌더니, 6월 26일 인천 LG전에서는 6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역투로 최고의 날을 보냈다.

최고 구속은 140㎞대 초·중반이지만 구속 이상의 힘이 있다는 평가다. “구속에 비해 구위가 남다르다”는 퓨처스팀(2군) 코칭스태프의 칭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타자를 상대로는 슬라이더, 좌타자를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활용하며 피안타율(.189)을 낮추고 있다. 공이 맞아도 멀리 뻗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건욱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에이스 DNA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볼넷이 문제지만 2년의 공백 탓에 경기 체력과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돌려 말하면 앞으로 더 좋아질 가능성을 많이 갖춘 선수다. 이건욱도 “처음 두 경기까지는 던지고 나면 아프고 힘들고 그랬다. 회복도 더디고 그랬는데 지금은 던지면 경기가 끝날 때마다 회복력도 좋아진다. 더 괜찮아지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올해를 정상적으로 마치면 내년에는 ‘대체’가 아닌 ‘정식 멤버’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가능성을 키운다.

이건욱은 첫 승을 거둔 뒤 “오랜 기간 기다려준 구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지도한 코칭스태프는 오히려 “숱한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줘 고맙다”고 말한다. 실제 박종훈의 첫 선발 로테이션 진입은 만 24세, 문승원은 만 28세에 이뤄졌다. 올해가 만 25세인 이건욱은 결코 늦지 않은 시기에 첫걸음을 뗐다고 볼 수 있다. 항상 부러웠던 랍스터 회식은, 건강한 몸이 계속되는 한 이제 매년 찾아올 것이다. /SK 담당기자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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