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대형 계약 이후 매년 내리막을 타고 있는 크리스 데이비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아주 정교한 타자는 아니었지만 두 번이나 홈런왕을 차지했다. 메이저리그(MLB) 경력을 시작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83경기에서 때린 홈런만 203개였다. 팬들은 화끈한 그의 방망이를 좋아했다.

크리스 데이비스(34·볼티모어)의 이야기다. 볼티모어는 이 올스타 1루수가 수준급 장타력을 꽤 오랜 기간 이어 갈 것이라 전망했다. 그래서 2016년 시즌을 앞두고 큰 마음을 먹고 계약서를 내밀었다. 7년 총액 1억6100만 달러(약 1911억 원)의 보장 계약이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공교롭게도 그 계약서에 사인한 뒤 매년 내리막이다.

데이비스의 홈런 개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16년 38개, 2017년 26개로 떨어졌다. 그때도 "부진하다" 난리였는데 돌이켜보면 양반이었다. 2018년은 16개, 지난해는 12개까지 추락했다. 역대급 리그 홈런쇼에 데이비스는 철저한 들러리였다. 원래 정교하지 않았던 데이비스의 2018년 타율은 0.168, 지난해는 0.179였다. ‘먹튀’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그의 이름 앞에 붙었다. 

사실 지난해가 바닥인 줄 알았고, 한때는 팬들의 동정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었다. 데이비스는 올 시즌 15경기에서 타율 0.122에 머물고 있다. 홈런은 하나도 없고, 타점도 하나뿐이다.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는 0.357이다. 수준급 선수 타율과 비슷하다. 

급기야 자리도 잃고 있다. 볼티모어는 이제 더 이상 데이비스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차피 리빌딩을 진행하는 팀이다. 더 젊은 선수들을 내야에 포진하고 있다. 부진이 출전 기회 감소로, 그리고 출전 기회 감소가 타격감을 저하시켜 다시 부진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악순환의 고리다. 

여론은 물론 언론까지 돌아섰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는 20일(한국시간) 데이비스의 급격한 입지 상실을 지적하면서 “모든 퇴보는 그가 구단 역사인 7년 1억61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은 2016년 1월부터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이나 장기 연장 계약 후 기대에 못 미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더 특별한 최악 계약으로 남을 전망이다. 데이비스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5시즌에서 533경기에 나갔으나 타율 0.196에 머물고 있다. 2할도 채 되지 않는 타율에 홈런을 비롯한 장타까지 뚝 떨어졌다. 이 기간 데이비스의 장타율은 0.379다. 믿을 수 없는 숫자다.

통계전문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집계 결과, 7년 계약 후 데이비스의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는 -3.2다. 보통 대체선수는 25인 로스터의 백업 선수 혹은 그 조금 아래의 가치를 갖는다. WAR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은 25인 로스터에 들어 있어봐야 팀에 손해만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이 수치가 극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사실상 1911억 원이 제대로 효과 한 번 보지 못하고 증발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최근 볼티모어의 움직임을 보면 더 그렇다. 볼티모어가 7년 계약이 끝나기 전 데이비스를 방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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