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시는 바르셀로나에 남았지만 리스펙트는 사라졌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15만 여명의 소시오가 구단의 지분을 나눠 갖고, 투표로 의사결정권을 갖는 FC 바르셀로나는 축구계에 사회적 기업, 협동 조합 형태의 구단이 이룰 수 있는 모범을 보였다. 

2008-09시즌 FC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라리가 클럽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은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이 됐다. 

스페인은 유로2008과 유로2012도 연속 우승해 세계 축구를 제패했는데, 이 중심에 FC 바르셀로나가 자체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육성한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카를레스 푸욜 등이 있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의 재능을 확인하고 일찌감치 영입해 단계적으로 성장시킨 것도 '라 마시아'였다.

바르셀로나는 2014-15시즌에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하며 영광의 시대를 연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8-09시즌과 결이 달랐다. 외부 영입 선수가 중심이었다. 차비 에르난데스의 대체 선수는 라마시아가 아니라 세비야에서 영입한 크로아티아 미드필더 이반 라키티치였다.

♦︎ 바르사는 왜 리빌딩에 실패했나

공격진엔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밀려나고, 이삭 쿠엔카, 크리스티안 테요, 제라르드 데울로페우 등 라마시아에서 기대했던 선수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 브라질 공격수 네이마르가 메시와 '남미 트리오'를 구성했다. MSN 트리오는 바르사는 물론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공격 조합으로 불렸다. 

그러는 사이 바르셀로나는 라마시아를 등한시했다. 이 과정에 바르사 회장 선거가 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과 새로운 황금기를 이끈 조안 라포르타 회장이 물러나고 산드로 로젤 회장,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 부회장 체제가 정권을 잡은 뒤 바르셀로나의 남미 선수 영입 정책이 가속화됐다. 로젤이 나이키 브라질에서 축구계 경력을 쌓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본래 라포르타 캠프에 있던 로젤은 호나우지뉴 영입의 공신이었으나 라포르타가 카탈루냐 주지사에 욕심을 내자 싸운 뒤 반대파가 됐다.

브라질 스타 네이마르 영입에 성공한 것은 메시의 장기적 후계자를 찾았다는 점에서 성과라 할 수 있지만, 그는 결국 2017년 여름 파리생제르맹으로 떠났다. 바르사 팬들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바이아웃 이적 사건'을 낳았다. 네이마르 영입에 쓰인 이적 자금과 이면 계약이 수사 대상이 되었고, 로젤 회장의 집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젤 회장은 결국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바르토메우 부회장이 회장직을 승계하면서 구단 운영은 더 망가졌다. 라마시아 디렉터는 1군 주요 선수와 연결된 특정 에이전트의 선수를 대거 받아들였고, 훈련 방식도 전통적 가치를 잃었다는 지적이 따랐다. 불필요한 남미 선수 영입이 B팀의 효율성과 라마시아 출신 유망주들의 성장을 저해했다. 

▲ 바르셀로나, 무엇을 위해 거액을 쓰나 (오른쪽 바르토메우 회장)


♦︎ 무너진 라마시아, 잃어버린 레전드

그러는 사이 바르사의 철학과 정신은 서서히 무너졌다. 로젤 회장이 집권한 뒤 요한 크루이프는 명예회장직을 잃었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휴식이 필요하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차비와 이니에스타는 후계자를 만나지 못하고 카타르와 일본으로 떠났다. 차비는 감독 경력을 시작했으나 현 정권 하에 복귀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4-15시즌 트레블 달성 이후 바르사가 겪은 것은 예의 없는 이별과 이적 시장에서 깊은 고민 없이 내려진 거액 지출이다. 2015년 여름 차비가 알사드로 떠났고, 데울로페우, 페드로, 데니스 수아레스, 아다마 트라오레, 테요, 산드로 라미레스, 마르크 바르트라, 마르틴 몬토야, 알렉스 송, 무니르 엘하다디 등이 떠났다. 

아스널에서 영입한 알렉스 송과 수비수 토마스 베르말렌은 대표적 실패 사례다. 바르사는 황금기의 주역들이 은퇴하는 팀이 되지도, 유럽에서의 마지막 팀이 되지도 못했다. 다니 아우베스는 여전히 건재한 기량에도 2016년 유벤투스로 떠났고, 바르사는 여전히 그 공백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2017년 팀을 떠난 뒤 돌아오지 못한 터키 윙어 아르다 튀란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세비야에서 전성 시대를 열었던 알레시 비달도 제대로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채 내보내야 했다. 그나마 성공적인 영입이었던 브라질 미드필더 파울리뉴는 다시 중국으로 갔다. 

2019년 여름 영입한 프렝키 더용은 적합한 위치에서 뛰지 못해 애매한 선수가 됐고, 앙투안 그리즈만은 여전히 메시 중심 바르사 공격진에서 100%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여름이 그 중 최악이다. 필리페 쿠치뉴는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바르사를 8-2로 대파하는 데 일조하며 임대 신분으로 빅이어를 들었다.

▲ 몇 안되는 영입 성공작 아르투르를 바르토메우의 회장직 때문에 잃은 바르셀로나


♦︎ 아르투르를 피야니치와 바꾼 희대의 코미디 그리고 메시의 이적선언

브라질 미드필더 아르투르 멜루는 바르사의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미래였으나 바르토메우 회장이 임기 중 탄핵을 피하기 위한 회계 장부 문제로 유벤투스로 보내졌다. 아르투르를 내주고 나이가 더 많고, 황혼기를 바라보는 미랄렘 피야니치를 영입한 것은 희대의 코미디다. 바르토메우 회장은 영입 자금은 분납으로 장부에 표기되고, 이적료 수입은 분납으로 받아도 일시금으로 수익에 반영되는 점을 노려 이 말도 안되는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안수 파티와 더불어 바르사가 어려울 때 제 몫을 한 카를레스 페레스는 로마로 이적했고, 2014-15시즌 트레블의 주역 라키티치는 2019-20시즌 내내 우울한 시간을 보내다 쓸쓸하게 세비야로 돌아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리오넬 메시가 스스로 팀을 떠나고 싶다는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티키타카 시대, 바르사 시대의 종언은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문제가 결정적 원인이다. 구단의 발전과 성장보다 회장 선거를 둘러싼 카탈루냐 내부의 정쟁이 앞선 결과다. 협동 조합 형태 운영으로 '클럽 이상의 클럽'이라 자부하던 바르사의 가치는 '축구 보다 정치가 중요한 팀'으로 변질되며 세계 축구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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