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경미 감독. 제공|넷플릭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나쁘지 않으면 평범한 것보다 이상한 게 좋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이 화제다.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6부작 시리즈는 지난달 25일 처음 공개된 뒤 국내 인기콘텐츠 상위를 지키고 있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능력자 안은영을 주인공 삼은 '명랑 히어로물'을 내세웠지만,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의 레이어는 사실 조금 더 복잡하다. 쫀득하고도 투명한 질감의 젤리들이 톡톡 튀는 판타지 명랑만화를 연상시키지만, 이건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여자 안은영의 성장드라마이자 히어로물이며, 신선한 얼굴이 쏟아져나온 학원물이자, 상실과 죽음의 기운이 서린 오컬트물이며 미스터리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 연출자는 영화 '비밀은 없다' '미쓰 홍당무'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 이미 전작을 통해 강렬한 이야기와 캐릭터, 독특한 취향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여성감독은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라는 심정으로 분연히 일어나 플라스틱 광선검을 들고 젤리들과 싸우는 '이상한 여자' 안은영을 그려보였다. 그가 전해준 '보건교사 안은영' 탄생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

▲ '보건교사 안은영'. 제공|넷플릭스
-원작의 어떤 면이 가장 흥미를 느껴서 영상화 작업에 참여하게 됐나.

"원작에 있는, 시리즈 1~2부에 해당하는 학교를 부수고 튀어나오는 거대한 괴물을 보고 싶었다.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다."

-학교를 부수고 싶었나. '미쓰 홍당무' 시절부터 학교에 대한 애증이 느껴진다.

"학교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즐거웠던 기억도 있고 싫었던 경험도 있고 잘못됐다고 느꼈는데 대항하지 못했던 데 대한 억울함도 있다. 그때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립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그 모든 걸 다 터뜨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중 가장 중심이 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면?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캐치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자기의 능력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이 사건을 겪으면서 스스로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간다는 성장드라마가 지금 우리들에게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것과 하고 싶은 것의 괴리가 큰 사람에게 움직임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이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구조적으로 엮었다.

사실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는 소설에는 없는 부분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것을 장차 히어로물로 발전시키기 위한 프리퀄로 접근할 때 성장드라마에 소설 속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 했다 하니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 저의 마음 상태와도 비슷했다. 제가 '보건교사 안은영'을 준비하면서 팀이 꾸려지고 캐스팅도 다 되고 촬영 한 달을 앞두고 중도하차를 결심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있어서. 모든 걸 중단하고 떠나려고 했을 때, 그래도 해야한다고 결심하며 책임감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다. 그런 것들이 안은영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저의 경험이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를 만들게 해줬다."

▲ '보건교사 안은영'. 제공|넷플릭스
▲ '보건교사 안은영'. 제공|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은 명랑히어로물이라고는 하지만 여성 히어로와 오컬트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떤 장르라 생각하며 만들어갔나.

"명랑 판타지 오컬트 성장 드라마? 사람들한테 좀 낯선 구조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뻔뻔한 만화같이 가보자고 생각했다. 어차치 판타지이고 만화적 요소들이 원작부터 있었으니까 원작을 등에 업고 시리즈도 만화같이 팍팍 튀어보자 생각했다. 원작 소설의 에피소드를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로 짜서 묶으면서 보통 기존 드라마처럼 과정이나 캐릭터의 마음이나를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게임을 하듯 에피소드별로 클리어하면 다음 단계로 진전하듯이 처치하고 완수하면 다음 미션으로 가는 것처럼 해보자 했다."

-그로인해 생기는 호불호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이 호불호는 소재 때문이 아니라, 시리즈물로 영상화하며 생긴 것 같다. 소설은 시리즈물보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기획 단계에서 이에 대한 고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판타지물이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다. 넷플릭스 물이라 기존 영화처럼 여러 검열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됐다. 이런 기회가 인생에 흔치 않을텐데 '난 모르겠다,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했다.(웃음)

저는 늘 호불호가 있었다. 늘 안고가는, 은영의 숙명과 같은 저의 숙명이라 생각하며 저의 기회를 즐기고 싶었다."

▲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경미 감독. 제공|넷플릭스
-'나쁘지 않으면 평범한 것보다 이상한 게 좋다'는 대사는 감독의 취향을 관통하는 말 같다.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고.

"제가 늘 하고싶은 말이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것들에 대해서 점점 더 배타적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점 양극화되는 세상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세상이 그렇게 이상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원작소설을 빌려서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매력적인 이상함으로 가득차있달까. 생략이 과감한데 심지어 오프닝도 없다.

"오프닝은 계획이 있었다. CG욕심을 부리다가 예산이 다 CG로 들어가버렸다. 다른 시리즈 볼 때 오프닝 나오면 그렇게 부럽다. 약속을 지켜야 하는 예산이 있는데 저의 욕심은 자꾸 생기니까 포기할 것을 찾는다. 재배치를 하게 되는 중에 오프닝이 희생됐다. 그래서 젤리가 좀 생겼다.(웃음)"

▲ '보건교사 안은영'. 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와 작업 스타일이 잘 맞았나보다. 기존 미디어와의 차이를 어떻게 느꼈나.

"많이 다르다. 공개되기 전 거쳐야 되는 검열 절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시작 전에 넷플릭스와 제작사가 합의한 바이블이 있다. 제가 투입되며 그 바이블도 조금 달라졌다. 작품을 위해 최대한 열어준다. 흥미로웠던 것이, 우리나라는 영화 하나를 만들 떄 여러 사람이 책임을 진다. 합의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많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때 결정권 가진 사람이 많으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넷플릭스는 책임지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가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떄 그 과정이 어렵지는 않다. 편했다.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 빨리 결정할 수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를 만들면서 그것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극장용 영화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굉장히 다르다. 극장용 영화는 사운드, 어둠을 과감하게 쓸 수 있다.그런데 넷플릭스 시리즈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매체를 통해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즐기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환경을 고려해 안전한 수위로 낮춰야 한다. 재난 시퀀스라든지 괴물 소리나 음악을 웅장하게 빵 끝냈으면 할 때는 아쉬웠다. 이것이 극장용 영화가 사라질 일은 없겠다 한 이유다. 극장의 영화가 주는 체험은 넷플릭스와 다른 것 같아서."

[인터뷰②]로 계속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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