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슬프지만 유쾌한 매력적인 세계. '보건교사 안은영'을 이경미 감독과 함께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정유미는 원작자 정세랑 작가와 원작팬은 물론 이경미 감독도 첫 손에 꼽은 '안은영' 그 자체. 정유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만들 수 없었을, 그리고 다른 수많은 매력과 재능이 더해져 완성된 '보건교사 안은영' 이야기. 

"저도 정유미 배우가 딱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참 운이 좋게도 매번 작업할 때 늘 좋은 배우를 만났다. 유미씨와도 작업하면서 '이건 정유미가 아니면 '안은영'을 만들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도 안은영의 광기어린 반짝반짝한 얼굴을 계속 기억해주고 떠올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유미 배우 자체가 굉장히 기분좋아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언급했다시피 정유미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독특한 웃는 표정을 보여준다. 어떻게 디렉션했는지, 어떻게 그 표정을 잡아냈는지 궁금하다.

"유미씨를 프리프로덕션 때 처음으로 만난 게 시나리오 리딩한다고 남주혁씨와 셋이 처음 만난 자리였다. 누구 집을 빌려 만났는데 셋이 만난 게 처음, 각본 보낸 뒤 처음이었다. 어색함을 풀기위해 첫 질문으로 '시나리오 어떻게 봤어요?' 물었다. 유미씨가 시간이 멈춘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딘가를 가만히 보는 거다. 그러곤 '아직 못 읽었어요.' 하고 웃었는데 그 표정이 만화같아서 저도 엄청 웃었다. 은영이가 인표(남주혁)와 처음 충전하고 좋아할 때 그 표정을 주문했다. '그 표정 있잖아 그거 한 번 해보자!' 기억 안난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그 컷을 찍고 너무 좋았다. 그렇게 그 얼굴이 나왔다. 이 얼굴은 시리즈 내내 가져가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6부 엔딩도 그 얼굴로 끝냈다."

-반면 홍인표 역 남주혁은 드라마 보기 전에는 잘 연상이 안 되더라. 캐스팅 계기가 있었나.

"소설을 봤을 때는 중년의 남자를 생각했다. 넷플릭스가 먼저 물어봤다. 남주혁은 어떠냐. 제가 남주혁 배우를 좋아한다. '왜 내가 홍인표는 나이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발상의 전환이 생기면서, 너무 좋아하는 배우라 뛸듯이 좋아하면서 만남이 성사됐다. 그리고 하게 됐다.각본을 쓸 때 주변 사람을 상상하듯이 쓰게 된다. 홍인표는 남편을 상상하면서 쓴 부분도 있다.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옥상에서 인표가 싫다고 하는데 은영이 충전하는 신을 본 남편이 '저같다'고 하더라."

-화수 역 문소리도 인상적이다. 이야기 좀 해 달라.

"특별출연으로 부탁했다. 사실은 2회차 밖에 안된다. 감초처럼 등장하지만너무 중요한 사람이지 않나. 아우라가 있는 포스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했다. 그런데 시리즈물이다보니까 제가 할 일이 많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못했다. 소리씨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소리씨가 다 만들어주셨다. 너무너무 고맙다. 분량이 많지 않은 존재감을 가져야 하는데 배우가 가진 능력이 아니면 해결해낼 수가 없다. 소리씨라서 가능했다.

원래 6부 독대해서 대화하는 중요한 시퀀스를 굉장한 액션신으로 찍을 생각이었다. 8인용 라면을 끓이다가 은영을 맞이해서 침으로 싸운다는 생각이었다. 라면이랑 다 준비했는데 밥먹을 때 콘티를 다시 짜 독대로 바뀌었는데 지금이 훨씬 나은 것 같다. 화수의 액션신은 제가 더 빨리 찍지 못해서 사라졌지만 사실 처음부터 염두에 뒀었다. 의상도 간호사복을 변형시켜서 액션하면 멋있게 소매 바짓단을 넓혔다."

-정세랑 작가, 정유미 배우 등 각 분야의 여성들이 모여 여성 히어로물을 제작한 것이 또 하나의 주목할 부분이다. 어떤 시너지가 생겼나.

"저는 '보건교사 안은영'이 참 좋다. 정유미 배우가 아니었으면 못나왔을 것 같고 정세랑 작가가 아니면 못나왔을 것 같다. 둘이 나와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것이 시너지가 아닐까. 정유미의 만화적 표정. 다른 배우가 했다면 이만큼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상한 경계선을 탈 수 있었을까. 정세랑 작가가 아니면 이렇게 기괴하지만 따뜻하다는 걸 전달할수 있었을까. 만화적 판타지가 가능했다."

"정세랑 작가와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각본을 쓰지는 않았다. 작가님이 4부까지 대본을 쓰신 것과 원작소설을 받았다. 각본을 읽고 소설을 읽으면서 살리고 싶은 부분을 생각해서 제안했다. 소설은 에피소드 별로 옴니버스식 구성인데 이것을 안은영의 성장드라마로 묶어서 구조를 재배치하는, 히어로물 프리퀄 컨셉으로 가보자 했고, 명랑하고 따뜻하지만 그 안에 깔린 죽음과 소멸의 이야기를 읽을수 있었기에 그에 대한 해석을 넣고 싶었다. 제안을 드렸고 좋다는 제작자와 작가의 동의를 얻어 주신 각본과 소설을 바탕으로 구조 작업을 했다. 작가님이 많이 열어주셨다. 하지만 최소한의 것, 이것은 넣어야겠다 하시면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했다. '안은영이 학생을 함부로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어서 기억이 남는다. 목이 긴 여자 크리처를 썼는데 왜색이 짙어 위험하다 해서 뺐다. 그런 최소한의 것들을 주셨다."

-신인 배우들을 과감하게 기용했다.

"학원물이 늘 그렇듯 신인을 발굴하면 좋겠다 해서 처음부터 오디션을 했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이 봤다. 연기 잘 하는 친구는 많았지만, 이 캐릭터에 어울린다, 오디션 모습이 영감을 줄 때 좋아한다. 예를 들면 송희준 배우가 옴잡이로 해서 '오 이런 옴잡이 되게 재밌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캐스팅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친구들 얼굴이 다양해서 외국인이 봤을 때도 구별이 갈 정도로 한국인, 동양인이 이렇게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생김새의 밸런스도 신경을 썼다. 송희준 심달기 경우 미쟝센단편영화제 눈여겨 봐뒀다가 조감독에게 연락해서 오디션 리스트에 넣도록 했다."

-음악이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단순히 음악이라는 장치가 아니라 그 외적으로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랐는지.

"영화 '비밀은 없다'와 음악감독님이 같다. 장영규 음악감독은 음악을 작품을 해석하는 가이드로 쓰는 게 아니라 작품을 해석해 음악을 만드시는 분이다. 저는 음악이 작품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음악이 단순하게 가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레이어를 만들어준다든지, 그림으로만 봤을 때는 캐치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을, 안에 깊숙이 들어있는 씨앗을 음악이 캐치해주길 바란다. 사실 욕심이 많은 것이다. 음악감독님이 그걸해주신다. 저는 안은영이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칼을 들고 옥상에 등장할 때 '와 보건교사다 잽싸게 도망가자' 하는 노래가 나올 거라 상상을 못했다. 여러가지 샘플 음악 중에 그걸 해오셨는데 빵 터졌다. 그걸로 하겠다고 하니 진짜냐고 몇 번 물어보시더라."

-마법봉과 비비탄 총은 기성품인가, 아니면 제작한 것인가.

"아마존에서 샀다고 보여준 무지개색 플라스틱 칼이 있었다. 굉장히 싸다. 거기에 안은영에 맞게 여러나라의 신화, 여전사 신화 속 문양들을 넣어서 손잡이를 새로 디자인해서 조합했다. BB탄 총도 기성 제품이다. 외국 제품인데 은영이 심볼을 스티커로 붙이고 알록달록한 알은 따로 주문했다."

"5부다. 애정이 많은 이유는 은영이가 정말 가슴아픈 일을 겪으면서 본인의 바닥을 치게 된다. 바닥을 쳤기 때문에 결국은 성장하게 된다. 가슴이 아프지만 살면서 바닥을 치는 느낌을 은영이가 대신 살아주는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다. 만들면서는 걱정을 했다. 이게 너무 어두워져서 이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것에서 배신감을 느끼면 어떻게 하지. 사실 5부가 가장 걱정이 많았다. 성장드라마라는 줄기를 가져갈 때 어둠이 있을 때 빛이 있는 것이 맞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완화시키거나 숨기지 말고 바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즌2 계획은?

"아직 제가 들은 바는 없다. 누가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 제가 뭐라고 해야할 게 없다. 시즌2를 갈 수 있게 밑밥은 깔아놨다. 시즌2를 누가하든 너무 막연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누가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어려울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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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