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택은 선수생활 내내 루틴을 지키며 구도자 같은 인생을 살았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스즈키 이치로(47)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1278안타, 메이저리그에서 3089안타를 친 ‘안타 제조기’다. 합쳐서 4367개의 안타를 생산했다.

그는 선수 생활 내내 마치 구도자처럼 자신만의 루틴(routine)을 지키며 전설을 써내려갔다.

홈경기 때는 아침에 카레라이스를 먹고, 방문경기 때는 페퍼로니 피자를 먹었다. 경기 4시간 전에 야구장에 도착하고, 발 마사지를 하고, 스파이크를 닦는다. 그라운드에 나가 훈련하는 모습이나, 타석에 들어간 뒤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동작들은 선수생활 내내 한 치 흐트러짐도 없이 이어졌다.

▲ 미일 통산 4367안타를 기록한 스즈키 이치로는 선수생활 내내 자신만의 루틴을 지켜왔다. 타석에서 준비 동작을 할 때 오른손으로 방망이를 세운 채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 부분의 유니폼을 끌어올리는 동작 역시 그만의 루틴이자 트레이드마크였다.
일본에 이치로가 있다면 한국엔 박용택(41)이 있다.

그는 오후 6시30분에 시작되는 홈경기 때면 오전 11시에 일어난다. 식사를 하고 오후 1시쯤 잠실야구장에 도착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훈련 스케줄에 웨이트트레이닝이 없는 날이면 대신 마사지를 받는다.

언론 인터뷰 시간도 정해져 있다. 오후 2시 30분~3시 사이. 박용택은 KBO리그에서 인터뷰를 가장 잘하는 프로 중의 프로지만, 경기 준비와 자신만의 루틴 시간이 촘촘하게 정해져 있어 홈경기에 앞서서는 장시간 인터뷰를 하기 힘든 선수로 꼽힌다.

3시부터는 타격훈련을 비롯한 단체훈련을 하고, 가볍게 식사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지키는 그만의 루틴이 있다. 30분가량 쪽잠을 자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눈을 감고 있으면 피로가 풀리고 경기 때 집중력이 좋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 박용택은 경기에 앞서 오후 1시쯤 야구장에 도착하면 웨이트트레이닝부터 시작한다. 자신만의 루틴이 촘촘히 정해져 있어 경기 전에는 장시간 인터뷰를 하기 힘든 선수로 꼽힌다. ⓒLG 트윈스
왜 이렇게 수도승 같은 삶을 살아갈까.

박용택은 이에 대해 “이치로만큼 철저하게 루틴을 지키는 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냥 방망이 감이라든지, 몸 상태라든지, 눈 피로도라든지, 최상의 경기력이 발휘되도록 나만의 준비를 하는 거죠. 나이가 들면서 루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같아 간소화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도 자기 전에 반드시 지키는 루틴은 있어요. 다음 날 선발투수가 발표되면 방망이를 들고 그 투수를 상상하며 타이밍을 그리는 작업이죠. ‘이렇게 타이밍을 맞추면 되겠어’라는 그림이 그려져야 잠을 자요. 그 투수를 상대로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플랜이 없으면 잠을 못 자요.”

그는 아침에 잠에서 깬 뒤 침대에서 내려올 때에도 방바닥에 내딛는 첫 발의 순서까지도 정한다. 전날 왼발부터 내려온 뒤 안타를 치면 다음날도 침대에서 내려올 때 왼발부터 내딛는다.

콧수염을 기르거나 깎는 것도 단지 기분이나 멋 때문만은 아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교류하는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애니미즘도 아니다. 수염을 길렀을 때 타격감이 좋았다면 딱 그 모습과 습관에서 변화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 박용택은 항상 야구를 경건하게 대한다. 그라운드는 삶의 터전이다. 액운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사를 지낸 술을 그라운드에 붓고 있다. ⓒ한희재 기자
누군가는 야구 인생 내내 이어져 온 박용택의 고집과 루틴을 보고는 숨이 막힐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박용택이 살아온 처절한 야구 인생이자 그만의 삶의 방식이다.

이제 유니폼을 벗으면 구도자 같은 삶도 끝날까. 엄격하게 짜놓은 틀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구름에 달 가듯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박용택 #엘지트윈스 #안타왕 #은퇴 #이별이야기

<9편에서 계속>

■ '안타왕' 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레전드와 작별을 강요하고 있다. 2002년 데뷔해 2020년까지 줄무늬 유니폼 하나만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LG 트윈스 박용택(41). 수많은 기록과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는 약속대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이제 선수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그냥 떠나 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하다.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이 걸어온 길을 별명에 빗대 은퇴 전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은 2018년 월간중앙 기고문과 기자의 SNS에 올린 글을 현 시점에 맞게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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