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 노정의, 이정은.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여성서사가 아닌 우리의 서사."

4일 오후 서울 용산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간담회에는 세 주연배우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와 박세완 감독이 참석해 영화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했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그 속에서 소녀의 마음을, 무너져가는 자신을, 그리고 뜻밖의 구원을 발견하는 이야기가 먹먹한 감흥과 위로를 안긴다. 세 축을 담당한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를 비롯해 주요 캐릭터들을 여성으로 구성한 점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고요하지만 강렬하게 몰아치는 이야기, 구멍없는 연기가 돋보이는 '내가 죽던 날'은 여성감독인 신예 박지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 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김혜수가 자신의 고통을 꾹꾹 누른 채 소녀 실종 사건을 마무리하게된 형사 현수를 연기했다. 김혜수는 "실제 제가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 드러낼 수 없는 좌절감이나 상처들이 있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고 털어놨다. 이어 "촬영을 하면서, 연기를 하면서 함께 만나는 배우들을 통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따뜻한 연대감이 충만했다"고 말했다.

김혜수는 "제목을 보고 마음을 뺐긴 것 같은 마음이 있었다. 운명같은 느낌이 있었다"면서 "실제로 시나리오를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내가 꼭 해야하는 이야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도 그 시기에 뭔가 위로같은 게 간절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감독, 제작진 등과 수시로 모이고 의견을 교환해갔다며 "이 이야기에서 현수를 포함해 인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급적이면 설정한 모든 것, 보기에 작위적인 모든 것을 최대한 배제하자고 했다. 다른 것은 현수의 상황과 내면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구나 상처가 있지만, 저 역시도 아픈 구석이 있었는데 감독님이랑 극을 풀어가면서 실제 제가 경험했던 감정, 상황 이런 것들을 제안하기도 했다"면서 "잠을 못 자는데 자게 되면 매일 악몽을 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제가 1년 정도 꿨던 꿈이었다. 그런 것들이 배역과 결과적으로 유기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 영화 '내가 죽던 날' 이정은.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건의 소리없는 목격자 순천댁으로는 '기생충'으로 그 저력을 알린 배우 이정은이 나섰다. 내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인물을 연기한 이정은은 "목소리를 잃은 연기를 한 배우들이 있다"면서 "잘 듣고 잘 반응하려 했던 것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랫동안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후시에서도 많이 고민했다. 힘들게 낯설게 나오는 소리를 만들려 했다.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면서 "언어가 없는 순간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다보니 필체는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고도 언급했다.

순천댁은 몸을 못 쓰는 조카를 홀로 돌보며 살아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정은은 "공연을 할 때 사지를 못 쓰는 장애인을 데리고 사는 어머니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뮤지컬 '빨래'라는 작품"이라면서 "그 작품을 할 때 그런 분들의 삶이 어떤 것인가 굉장히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 그런 경험이 농익어서 이 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상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중에는 상대방을 그런 입장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니가 남았다는 말을 해주는 심정을 이해하는 순간부터 표정이라든지 이런 걸 신경쓰지 않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영화 '내가 죽던 날' 노정의.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노정의는 섬의 절벽 끝에서 사라져버린 소녀 세진 역을 맡았다. 그는 대선배 김혜수, 이정은과 호흡에 대해 "처음에는, 오른쪽에 교장 선생님 두 분이 있는 마음으로 부담이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이어 "선배님과 함께하는데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담이 컸다"며 "처음에는 그냥 부담이었다가, 나중에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부족한 걸 채워나가고 배워나가고 제가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고 감사한 작품이겠다. 그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강조했다.

노정의는 또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당시에도 상처가 있어서 그 마음을 세진으로 승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은 어린 아이의 상처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표정과 상처를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을 중점에 됐다"고 말했다.

올해 스물이 된 노정의는 "스무살이 돼서 제 각오는 없다. 잘 따라가고 싶다. 선배님들의 뒤를. 너무 잘 해주신 것을 부족하지 않은 후배가 돼서 그 길을 걸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왼쪽)와 이정은.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특히 김혜수와 이정은은 형사 현수와 순천댁이 만나는 한 장면을 촬영하면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서로를 마주했던 순간 똑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일화을 돌이켜 눈길을 모았다.

김혜수는 "한동안 손을 잡고 아무 말 안하고 한참 울었다. 그때 저도 현장에서 처음 경험하는 굉장히 특별한 아주 특별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며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혜수는 "저희끼리는 무언가 정말 말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온전히 공감하고 공유하고 소통하고 연대했던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정은 외에 김선영 배우와도 정말 친구처럼 촬영했다며 "보석같이 소중한 동료를 만나고 값진 친구를 얻은 느낌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은 역시 당시를 떠올리며 "어떤 감정이었을까 되짚어 보면 극 속의 배역도 배역이고 배우로서도 저희 둘 다 같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혜수 씨는 스타로서 50여년(?)을 살았고, 위치는 달랐지만 시대를 같이 살아왔다. 연대가 이뤄지는 순간, 그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꼈다"면서 "어떤 일을 겪고 왔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우리가 우리 뒤의 세대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들을 한참 하는 나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정은은 "그런 중에 노정의씨를 만나서 새로운 인생. 인생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나 그런 순간이 좋은 경험이었고 받은 에너지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 영화 '내가 죽던 날' 박지완 감독.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여성들 캐릭터들이 주요 서사를 책임지는 '내가 죽던 날'을 두고 '여성서사' '여성영화'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박지완 감독은 "여성서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며 "자기 삶에서 위기에 몰려 있는 어려운 사람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안고 남의 인생을 들여다볼 때 알 수 있는 것을 다루다보니 여성들을 캐스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혜수가 맡은 형사 현수가 서사를 이끌어가는 데 대해 "기본적으로 모든 이야기가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형사라는 직업이 남의 인생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은 직업이라 생각한다. 현수는 베테랑이고 경력이 많은 형사인데 자신의 상황 때문에 잠시 쉬고 있는 상황이다. 전과 같이 범죄를 다루는 접근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남의 상황,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혜수는 이와 관련해 "여성 서사가 아닌 우리들의 영화,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역시 "지금은 여성서사라고 불리지만 더 많이 나와서 여성서사로 안 불리고 우리들의 서사로 불리는, 입체적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가 죽던 날'은 오는 11월 12일 개봉을 앞뒀다.

▲ 왼쪽부터 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 노정의, 박세완 감독, 이정은.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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