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고유라 기자] 일본 스포츠잡지가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현역 일대기를 다뤘다.

일본 '주간베이스볼'은 6일 편집자 칼럼에서 '주니치의 수호신으로 한 세기를 풍미한 선동열'이라는 제목으로 선 전 감독을 다룬 기사를 게재했다. 위 매체는 "선동열은 한국 프로야구 통산 146승40패 132세이브를 기록, 한국 역사상 최강의 투수로 숱한 위업을 세웠고 일본 야구계에서도 활약한 우완투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동열은 아마추어 때부터 남다른 존재였다. 광주일고 전국대회 우승, 고려대 1학년 때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절대 에이스로 군립했다.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했고 한국야구위원회의 특례를 받아 1985년 중반부터 해태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그해 25경기 7승4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1.70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을 달성했다. 이듬해인 1986년에는 24승6패 6세이브 214탈삼진 평균자책점 0.99로 다승,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까지 투수 3관왕에 올랐다"고 전했다.

위 매체에 따르면 선동열은 최고 속도 155km의 직구와 날카롭게 옆으로 미끄러지는 고속 슬라이더 제구력이 압권. 위 매체는 "선동열은 한국에 적이 없다는 소문이 일본 타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선동열은 1991년 한일 프로야구 슈퍼게임에서 3이닝 동안 5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 충격투를 선보였다. 일본의 4번타자 오치아이 히로미쓰는 '슬라이더가 경이롭다. 한국 1위라는 평판은 틀리지 않았다'고 경탄했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이어 "선동열은 '자신의 힘을 일본에서 시험해보고 싶다'며 해외 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일본으로 이적한 첫 선수로서 주목도가 높았다. 그러나 1996년 그를 기다린 건 시련이었다. 1996년 5승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5.50의 성적으로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자신의 부진을 연구하고 일본을 배우면서 이듬해에는 일상회화가 될 정도로 일본어 실력을 키웠다. 1997년에는 나고야돔에서 38세이브를 올려 세이브왕에 올랐다"며 일본에서 활약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선동열은 일본에 친근한 인사로도 알려졌다. '일본에서 차별을 느낀 적이 없다. 일본, 일본인은 훌륭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알려져 있다. 은퇴 후 삼성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는 주니치 시대 팀메이트였던 오치아이 에이지, 다네다 히토시 등을 삼성 코치로 초빙하며 한일 야구의 가교 역할을 했다. 한국 야구 발전에도 필수적인 존재"라고 덧붙였다.

스포티비뉴스=고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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