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규리. 제공|남규리 프로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카이로스'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남규리가 이런 모습을 보이리라 생각지 못했다. 22일 종영하는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극본 이수현, 연출 박승오 성치욱)는 시청률만이 아쉬웠던 올해 연말의 발견이었다. 1달의 시간차를 두고 통화를 하게 된 두 사람이 서로의 미래를 바꿔가는 이야기는 매회 거듭된 반전으로 마니아들을 붙들어놨다. 

그중에서도 남규리가 연기한 강현채는 처음과 끝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다. 유괴로 아이를 잃고 절규하다 제 삶을 놓아버린 줄 알았던 바이올리니스트는 알고보니 반전의 핵심이었다. 멀쩡히 살아있던 이 아름다운 소시오패스는 심지어 아이를 안고서 다른 남자와 함께 웃고 있었다. 강현채를 만나 남규리 또한 배우로서의 반전을 보여줬다. 

"선택이 아니라 도전이었어요." '카이로스'를 만난 건 그녀에게 여러 고민이 있던 시절이었다. '내 뒤에 테리우스' '붉은 달 푸른 해' '이몽'을 마치고 공백기를 가지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할 무렵이었다. 시놉시스를 보고 "'타임 크로싱'이란 소재가 심장에 쿵 하고 박히는 것 같았다"는 남규리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라는 단어가, 제 배우 인생에 기회의 신이 있다면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고 말했다. 남규리가 지닌 '오묘함'이 강현채에 딱이라는 박승우 PD의 말도 용기를 줬다. 

두려웠던 도전을 멋지게 해낸 남규리는 이윽고 찾아온 '카이로스'와 작별이 잘 실감나지 않는다는 남규리는 "그냥 또 하나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보고싶을 때 꺼내어 보려 한다"고 했다. 

▲ 남규리. 제공|남규리 프로필

-대본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처음하는 아이를 잃은 엄마, 바이올리니스트, 소시오패스까지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마음이 컸어요. ‘내가 배우로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한 인물에 다양성을 담을 수 있는 강현채라는 캐릭터에 매료됐어요. 드라마에서 처음 등장하는 여성 소시오패스 캐릭터라 신선했어요. 여성이 주체적인 캐릭터였거든요. 그리고 악역에 대한 묘한 갈망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후회없는 삶을 살고싶다고 말하잖아요. 누구나 지금하는 선택들 혹은 그때의 선택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지 않을까? 상상을 하잖아요. 과거의 선택으로 미래가 바뀐다는것이 참 흥미로웠어요 작가님의 세계관이 느껴졌어요~ 제가 그동안 해왔던 크고 작은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끌림이 오더라구요."

-첫회 아이를 잃고 오열하는 신이 상당했는데 어떻게 준비했는지?

"아이를 잃은 슬픔은 경험해 보지 못했고, 그 어떤 학습으로도 표현할 수 없겠다고 알고 있었어요. 결혼은 안했지만, 아이를 참 좋아해요. 가족이 여섯 식구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남다른 것 같아요. 조카들도 너무 좋아하거든요. 내가 낳은 나의 소중한 아이를 잃었다면 저 또한 그런 상실감 당연히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순 없지 않을까. ‘내가 현채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소시오패스란 것도 대본은 읽었지만 감정의 저 뒤편으로 밀어넣고, 진심으로 아이를 잃은 마음으로 살다가 촬영장으로 향했어요. 진심으로 현채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현채로 살았어요."

-캐릭터의 변화를 어떻게 그려나갔나요.

"캐릭터 감정변화부터 폭이 참 다양했어요. 일관성이 있는 듯 없는 듯 반전에 반전이 있었죠. 제 스스로 현채라는 캐릭터를 합리화시키고 설득하는게 우선이었어요. 현채는 사랑없이 자란 인물이에요. 그래서 사랑도 모르고, 나쁜 게 나쁜 건 줄도 모르는. 현채가 되기 위해 현채의 서사를 만들었어요. 저렇게까지 살게 된 이유, 불쌍한 여자, 삶을 대하는 방법도 무엇이 맞고, 진심인 건지도 모르는 여자예요. 목적이 뚜렸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너무나 일상적이라 생각을 하며 가끔은 일상생활을 한다라고 생각하고 접했어요. 

저의 다양한면을 꺼내서 하고싶은 연기의 70퍼센트만 하자 라고 생각했죠. 제 자신을 누구보다 믿었어야 했어요. 자존감이 높아야 두려움없이 강현채로 살 수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드러내놓고 악을 저지르며, 자극하고 짓밟는 악역이 아닌 너무나 정상적일 것 같은 여자가 저지르는 지극히 일상적인 연기 강현채는 늘 아무렇지 않았죠. 그게 곧 강현채였고,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엔 정말 나쁜 악역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현채에겐 본인보다 소중한 게 없었던 거니까요."

-사이코패스 캐릭터인데 연기하며 힘들지 않았나요?

"드라마를 보며 내가 준비한 현채와 감독님의 현채가 조화롭게 표현된 것을 확인하는데 기뻤어요. 현채의 광기에 어느 날은 쾌감을 느끼고, 어느 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 날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현채 역에 너무 빠져있어서 남규리로 돌아오는 게 힘들었어요. 결국 응급실을 세 번이나 다녀왔고,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져서...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어요. 그래도 제겐 너무 소중하고, 값진 작업이었어요. 어떤 모습도 공들이지 않은 감정선이 없었어요.

예를 들면 애리와 편의점씬에 의외로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그 한 씬을 놓고, 스무시간을 연습했어요. 누군가를 하대하는게 너무 익숙치 않았고, 자칫하면 층층히 쌓아가는 강현채란 캐릭터에 굉장히 거부감이 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빌런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 열심히 준비했어요."

-선한 얼굴로 살벌한 연기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요

"감정이 명확하다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건 너무 잘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현채는 목적이 있고, 본인만이 가진 매력을 잘 알고 그것들을 무기로 삼는 법을 아는 영민함을 가졌거든요. 심리전에도 굉장히 빠른 캐릭터예요. 도균과 서진의 대화하는 차이만 봐도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요. 특별히 쎄보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똑바로 쳐다보고 진짜라고 믿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시청자 반응은 살피나요? 시청자 반응도 좋았는데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었나요?

"'현채 역할에 남규리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가 없다.' 이만큼 영광스러운 댓글이 있을까요.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 그 배우 외에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 없단 건 너무 기분 좋은 칭찬같아요."

▲ 남규리. 제공|남규리 프로필

- 현채는 서도균을 사랑한 걸까요? 그렇다면 김서진은요? 현재는 둘 중 누굴 선택할까요. 

"사랑했어요. 과거 씬에서도 터져 나오는 슬픔을 감독님께서 편집으로 잘 없애주셨어요. 드라마에 다 나오지 않았지만, 현채는 도균을 사랑하고, 미안해 했어요. 김서진이 변해서 놀란 게 아니에요. 원래 안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친절하고, 자상하게 변하니까 의아했던 거고, 의심을 했던 거죠. 현채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봐요. 둘 다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현채는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가 없어요."

- 강현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강현채는 정신적 트라우마랑 유년시절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과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어요. 빨리 드러나지 않고 퍼즐처럼 천천히 드러났죠. 그래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은 행동을 한 게 맞아요. 현채의 숨은 이야기와 성장 배경으로 인한 결핍은 트라우마로 이어졌고, 감정없는 사람으로 살게 된 서사가 있는 캐릭터였어요. 아쉬운만큼 더 매력적인 빌런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 현채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면요?

"처음부터 니가 선택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해. 어디서든 진짜 사랑을 받을수 있었으면 좋겠어. 진심을 이길수 있는 건 없어. 네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 카이로스를 통해 전하고싶은 메세지가 뭘까요.

"과거를 잊으면 안돼요.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있는거죠. 어떤이들은 힘든 건 다 잊어버려. 앞으로만 잘살자 라고들 이야기하곤 하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했던 기억, 잊고싶은 아픔, 고통, 추억, 기억 모두 제 것이고 저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힘들었던 삶도 인생이기에 그래야 좋은 날엔 더 활짝웃고, 감사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강현채 같은 자존감은 좀 색달랐어요. 저를 많이 채찍질하고 자책하는 편인데, 보이지 않게 긴장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강현채를 연기하며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보단 여성의 주체적인 단단함에 매력을 느꼈어요. 제가 만난 강현채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 말고, 제 안의 세상에서 스토리가 많은 캐릭터예요. 현채의 모든 것에 개연성을 만들었어요. 현채를 연기하며 다채로움을 배운 것 같아요."

- 드라마 결말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해준다면?

'예상 할수 없었죠. 현채는 분명 해피엔딩은 아닐 거라 생각했거든요. 드라마에선 보통 해피엔딩이나 권선징악인데 묘한 여운을 남겼어요. 묘함으로 시작했고, 묘함으로 여운을 남겨서 드라마에서 보기드문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결말은 방송으로 확인해주세요."

- 한달 전이나 한달 후의 사람과 연락할 수 있다면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가요.

"한달 후의 나와 통화하고 싶어요. '코로나19 확진자 많이 줄어들고 있니?'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분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잖아요. 빨리 소중한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도해요."

▲ 남규리. 제공|남규리 프로필

-가수로 데뷔해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어요. 

"가수출신 꼬리표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나를 따라 다녔어요. 매번 편견과 부딪혀야했어요. 그런데 가수출신 꼬리표를 단번에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연기할 수 있음에 모든 것에 감사했어요. 연기할 때 정말 좋거든요. 체력적으로 몸은 힘들어도 만족스러운 연기를 하고 온 날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에요. 어느 순간 어떤 상황도 작품도 평가도 겸허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나만의 노력과 신념으로 하다보면 언젠가는 알아주시는 분들이 생기겠지. 진심은 통하게 되어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달려가고 있어요."

-씨야 재결합 계획이 최근 무산됐는데요.

"내게 있어 노래와 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울메이트인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어요. 씨야 활동을 위해 녹음해 둔 곡이 있어요. 팬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료 배포하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서 아쉬워요."

-아내이자 엄마를 연기했어요. 결혼과 아이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결혼과 아이, 가족은 하늘이 주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오래 전 깨달았어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이 무겁고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해 왔어요. 이젠 좀 밝은 캐릭터,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독특한 캐릭터를 하고싶어요. 저만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독창성을 표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최근 '온앤오프'에 출연했는데 출연하고픈 다른 예능이 있나요?

"'삼시세끼'와 '윤식당'을 너무 재밌게 봤어요. 요리를 못하는데, 차승원 선배님이 요리를 너무 잘하셔서 보는 내내 감탄했거든요. 선배님 요리 보조라도 하며 옆에서 배우고 싶어요. 윤여정선생님이 나오셨던 윤식당도 다시보기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몰라요."

2020년 어떤 해였나? 2021년 목표, 활동 계획

"2020년은 '카이로스'로 정말 기회의 신이 와준 것 같아요. '슈가맨'을 통해 추억을 소환하고, 카이로스를 통해 내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었어요. '온앤오프'를 통해 대중과 한 층 가까워질 수 있었던 저에겐 또 다른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2021년은 한 발 더 나아가 저만의 긍정에너지와 저만의 분위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묵묵히 노력하며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남규리의 인생 지향점은 뭔가요?

"좋은 배우,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싶어요."

▲ 남규리. 제공|남규리 프로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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