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희. 제공|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2년여 전 분노 유발자에게 이렇게 설렐 줄이야.

공개 이후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에서 가장 '멋진' 캐릭터를 꼽으라면 바로 정재헌이 아닐까. 국어교사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욕망이 괴물로 나타나는 아포칼립스에서 와이셔츠 차림에 진검을 휘두르며 이웃을 지키는 남자다. 다른 이들을 향한 섬세한 배려, 나긋한 말투, 안타까운 로맨스와 처절한 희생까지, 시리즈를 정주행한 이라면 그를 잊기 어려울 것이다.

원작에서도 팬들이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멋진 캐릭터, 재헌을 연기한 이는 바로 배우 김남희. 연출자 이응복 PD와의 인연과 신뢰가 그를 '스위트홈'과 이어줬다. tvN '도깨비'에선 한 회에 짧게 등장했고, tvN '미스터 션샤인'에선 모리 타카시란 역대급 악역으로 시선을 붙들었던 그에게 완전히 다른 변신의 기회가 주어진 셈. 김남희는 "저희 팀 남자 배우들도 멋있닥 한 캐릭터"라며 "감사하게도 하사받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멋진 캐릭터에 저를 염두에 두시고 작품을 만들어 주셨어요. 연극 경험이 있으니 문어체 같은 대사도 잘 표현이 되겠다면서요. 그런데 운동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액션의 선이나 순발력 같은 게 떨어지니까. 감독님은 그걸 채우는 건 연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덩치를 키우고 상암동에 있는 검도장에서 연습을 했고요, 스텝 한 발짝 한 발짝을 연습하면서 현장에서도 많이 연습했어요."

이응복 PD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각별하다. '도깨비'부터 '미스터 션샤인', '스위트홈'까지 세 작품을 함께한 그를 두고 '이응복이 페르소나'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남희는 "감사한 표현이다. 하지만 '너는 내 페르소나' 하고 표현하신 적은 없다"면서 "감사하지만 세 작품 한 다른 선배도 계신데 저만 부각된 것 같아 영광 아닌 영광"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페르소나도 좋지만 좋은 파트너로 존재해서 꾸준히 함께 할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다짐했다.

"멜로 우리나라 멜로드라마 거장이시잖아요. 아름다운 연출, 여심을 훔치는 멜로의 이미지가 있는데, 그 안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위험할 수 있는 새 장르로 도전하신 데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어쩌면 우리나라 최고 감독이 잃을 준비를 하고 먼저 도전을 해야 후배나 다른 연출에게도 도전의 장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그 팀에 선택받아 합류해 감사드리고 또 감동입니다."

▲ '스위트홈'에서 정재헌을 연기한 김남희. 제공|넷플릭스
강렬했던 빌런 모리 타카시와 진검을 든 따뜻한 남자 정재헌, 두 상반된 캐릭터를 두고 김남희는 "개인적으로 둘 다 너무 좋아한다. 최악의 모습과 최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도 말했다. 배우의 악역과 선역에 경계가 없다는 건 이응복 PD와도 동감하는 부분. 김남희는 "모리타카시를 할 때는 모리 타카시가 제일 멋있었다. 악랄하고도 지능적인 게 뇌섹남 같기도 했다"고 고백하며 "재헌을 할 때는 재헌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어체를 연상시키는 '멋짐' 포인트는 되려 담백하게 연기하려 했단다. "대사보다 그 정서에 집중하는 포인트가 있다. 오글거리는 대사들을 멋있는 척 하고 분위기를 잡았으면 오글거려서 못 보셨을 것"이라고 했다.

"재헌 캐릭터가 멋있잖아요. 반전의 이미지를 느낄 때가 인간이 가장 매력을 느낄 때가 아닌가 해요. 초반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뻣뻣한 국어선생님, 말투도 재미없고 인상이 묘하죠. 낯선 여자에게 엘리베이터에서 친한 척 하고. 그런 이 사람이 칼을 쓸 줄 아네, 목소리가 좋네, 액션을 하고 사람을 구하네 하면서 매력을 느끼신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양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담백하게 천천히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 '스위트홈'에서 정재헌을 연기한 김남희. 제공|넷플릭스
윤지수(박규영)와 첫 만남부터 주님의 뜻을 운운하는 재헌을 두고 이른바 '기독교 빌런'을 예상한 이도 많았다. 그 이질적인 첫 느낌은 뜻하지 않게 담긴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김남희는 "첫 촬영이 엘리베이터에서 지수를 만나는 날인데 생각대로 연기가 잘 안 됐다"며 "묘한데 그냥 이 콘셉트로 가보자 했다. 그게 반전이 되는 좋은 포석이 된 것 같다. 원래 더 따뜻하고 친절해야 하는데, 이 사람 사고치나 문제있나 하는 느낌으로 반전이 됐다. 예쁘게 봐주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렇게 발전하는 윤지수와 러브라인은 정재헌에게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한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내내 붙어다니는 관계라 털털한 박규영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과감하고 자유롭게 연기했다고. 그러나 김남희는 "러브라인을 드러낸 장면은 마지막 장면 하나 뿐"이라며 "의도하지 않았는데 관객이 '썸'으로 봐주신 것"이라고 재헌의 마음을 설명했다.

"위급한 상황에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기는데, 그걸 정리하기도 전에 자꾸 괴물을 만나고 탈출해야 하니까요. 재헌도 지수도 정신이 없었을 거고요. 수술 이후 재헌의 마음이 지수에게 가는데, 마지막으로 고백했을 때는 재헌이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하고 따뜻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 고백하지 않았을까 해요. 애틋하게 봐주시는데, 의도보다 더 애틋하게 봐주시는 경향이 있어요."

정재헌은 목소리 덕에 100% 완성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직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는 재헌에 대한 믿음과 호감을 더해주는 요소. 타고난 목소리가 발성 훈련으로 다듬어진 것이라는 김남희는 "연기 시작하고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는 매번 들었다"면서도 "오해는 말아 달라. 목소리가 좋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기력이 좋아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장점이자 콤플렉스였다"고 털어놨다.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모습으로 찬사를 받은 김남희지만, 그는 연기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며 각오를 다졌다.

"저는 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처럼 봐주시는 게 배우 하는 입장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무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는 세상에 나온 배우보다 그렇지 않은 무수한 무명배우가 많잖아요. 저도 그 중 하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꿈을 갖고 연기하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멋지고 예쁘다, 이런 말보다 '연기는 잘한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려 합니다."

▲ 김남희. 제공|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TMI 1. 과거 알콜중독이 있었던 재헌은 소주를 한잔 따라놓고 혀로만 살짝씩 맛본다. 감질났던 김남희가 밝힌 실제 주량은 소주 2~3병. 밤새 먹자 하면 밤샘도 가능하다.

TMI 2. 정재헌 아닌 김남희의 욕망따라 괴물이 된다면 예상하는 결과는 '나태괴물'. 무익하지만 무해한, 평생 놀 수 있는 괴물이 되고싶다고. KCC 신혼부부 광고 속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김남희는 "대한민국 모든 남자를 대변했다 생각해 달라"며 "그런 괴물이 되고 싶어하는 그런 인간들이 많을 것 같다"고 귀띔.

TMI 3. '정재헌, 얼굴에 점찍고 돌아와라'라는 요청이 빗발치지만 김남희가 밝힌 시즌2 합류 가능성은 0%. "결정된 바 없지만 0%가 확실하다"며 확인사살.

TMI 4. 팔이 잘리는 최후의 장면은 셔츠에서 한 손을 빼고 연기하는 '원초적' 방법으로 촬영했다. "셔츠가 몸에 붙어 배가 좀 조였다"는 게 쿨한 후기. 처절한 촬영엘리베이터 액션신은 촬영 두 번 만에 완성했다.

TMI 5. 아파트 군상에서 김남희와 가장 닮았을 것 같은 캐릭터는 뜻밖에 이도현이 연기한 은혁. "저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마냥 이기적은 놈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생존해야 한다는 갑작스런 따뜻한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렇게 따뜻하게 행동은 못 할 것 같지만"이라고.

▲ '스위트홈'에서 정재헌을 연기한 김남희. 제공|넷플릭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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