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 제공ㅣ리틀빅픽처스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세 명의 자매가 있다. 자매가 아니었다면 엮일 일도 없이 다른 활동 반경을 두고 사는 이들이다. 오손도손한 코믹물의 세 자매였어도 좋았을 조합의 배우들이지만, 이들은 잘못된 어디서부턴가 리셋하고 싶은 현실 그 자체를 살아내고 있는 위기의 세 자매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2D를 보러 들어가서 4D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27일 개봉한 '세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인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문소리(미연), 김선영(희숙), 장윤주(미옥)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자매로 호흡을 맞췄다.

첫째 희숙은 안 팔리는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만개한 꽃들과 달리 희숙의 삶은 팍팍하고 벅차기만 하다. 제어가 안될 만큼 격렬한 반항기에 들어선 딸과 때가 되면 돈만 받아가는, 남보다 못한 남편도 챙겨야 한다. '미안하다'와 '괜찮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지만 미안할 기력도 없고 괜찮지도 않은 삶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둘째 미연은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삶을 사는 주부다. 꿈꾸던 신도시 대형 평수 아파트, 교수 남편, 착한 아이들이 있고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활약하며 아내와 엄마 이상으로 '나'의 삶도 꾸려간다. 물론 남들 앞에서 이런 근사한 모습으로 보여야 하니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속사정을 감추려 백조처럼 부단히 파닥댄다.

셋째 미옥은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다보니 교복을 입을 만큼 다 큰 아들이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 알코올 중독인 그는 누가 봐도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다. 소리를 지르고 술주정을 부리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런 미옥을 남편과 둘째 언니는 어르고 달래가며 다독인다.

영화는 세 자매의 삶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이들의 삶에 녹아든 상처들을 보여준다. 다만 그렇게 살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다. 그리고 세 갈래의 이야기가 모여 클라이막스인 '아버지의 생일파티'로 달려간다.

이야기가 심플한 만큼 이 작품이 전하는 위로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세 사람의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들이 겪는 감정선에 집중해야 쉽다. 다행히 세 배우 모두 생생하고 밀도 높은 연기를 펼친 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세 자매의 미묘한 감정선을 타고 감상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인상적인 신들이 많은데, 특히 말 한마디 없이 성가대를 지휘하며 터질듯한 내면을 억누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문소리의 표정 연기는 탄성을 자아낸다. 문소리 역시 감정을 폭발시키는 컷보다 훨씬 감정 소모가 심하고 난이도가 높은 촬영이었다고 말할 만큼 공들인 신이다. '50만원 주고 차린 밥상'을 꾸역꾸역 먹는 김선영과 교무실에서 '왜 나는 상담을 안 해주느냐'고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장윤주의 모습도 돋보인다. 보는 이들의 공감대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이들이 느끼는 감정선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납득시키고야 만다.

물론 여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위로는 커녕 숨이 막혀온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어떤 관객들은 입 안에 쓴맛이 도는 반갑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른다거나, 지나친 현실감에 함께 고통받을 법도 하다. 세 배우의 연기력 역시 이같은 하이퍼리얼리즘에 힘을 보탠다. 막막하고 우울한 현실이 눈물샘을 자극하고 감정이 4D로 휘몰아친다.

처음엔 이 영화가 주는 '위로'의 기능에 대해 의심하게 되지만 곰곰히 곱씹다보면 결국 공감하고 위로가 됐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문소리는 이 작품의 '위로'에 대해 "말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많은 과정을 거쳐서 이 영화로 만든 것 같다"며 "'내 얘기이기도 하구나'라는 관객의 말에 희망을 갖게 됐다"고 표현했다. 김선영 역시 "모든 순간에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나만 힘들고 맺혀있는 숙제가 있는 게 아니구나'를 느끼는 순간이 위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담긴 연출과 글자 이상의 열연을 보여준 세 배우의 에너지가 '세자매'라는 날카로운 비수로 빚어졌다. 가슴 아픈 현실감에 찔리는 듯 '따끔'하겠지만, 많은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품어온 답답한 응어리를 터트릴 수 있는 균열을 만들어줄 작품이 될 것 같다.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bestest@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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