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선 성공으로 4년 더 임기를 수행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2013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었던 정몽규(59) 회장이 지난 27일 대의원총회에서 54대 회장으로의 임기를 시작했다. 2025년 1월까지 4년 더 한국 축구 행정의 리더 역할을 맡는다.

현직 체육단체장은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라 재선만 가능하지만, 3선 출마의 경우 '해당 종목 국제단체의 임원이 되기 위해 경력이 필요한 경우', '해당 협회에 재정적으로 기여한 경우', '주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국위를 선양한 경우'로 제한한다. 독점 구조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체육회는 이 조건에 정 회장이 부합한다며 출마를 허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6년 53대 통합 축구협회 회장에 오른 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이 뒤따랐다. 2018년에는 경영하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 사회공헌자금 40억 원을 출연했다.

사실 정 회장의 대항마가 없었기 때문에 이미 지난해 12월 끝난 게임이었다. 후보등록 의사 표명서를 단독으로 제출했고 최종 입후보도 혼자였다. 경쟁해보겠다는 인물조차 없었기 때문에 '현대가(家)가 아닌 기업에서 관심이 없다거나', '한국 축구에 행정가가 그렇게도 안 보이는가'라는 한탄도 나왔다.

▲ 3선 성공으로 4년 더 임기를 수행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대한축구협회

외교력 복원은 임기 만료까지의 숙제 

그래서 정 회장이 '마지막' 임기를 어떻게 보내며 한국 축구 전반을 얼마나 발전시키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체육회가 3선을 승인한 조건 중 해당 종목 국제단체의 임원이 되기 위해 경력이 필요한 경우'가 눈에 더 도드라지는 이유다.

정 회장은 2017년 5월 FIFA 평의회 위원에 뽑혔지만 2019년 4월 직을 잃었다. 아시아 축구연맹(AFC) 부회장직도 마찬가지였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낼 창구가 사라졌다. 외교적 고립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던 이유다.

당시 AFC 몫으로 배분된 5명의 평의회 위원에는 카타르의 사우드 아지스 알모한나디, 인도의 프라풀 파텔, 필리핀의 마리노 아라테나 주니어, 중국의 자오차이두, 일본의 다시마 고조가 차지했다. AFC 부회장 선거에서도 간바타르 암갈란바타르 몽골축구협회장과에 46표 중 18표를 얻어 10표 차로 떨어졌다. 동아시아 축구연맹 가맹국 중국, 일본, 몽골에 밀린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평의회 위원 임기는 4년이다. 2023년 5월에는 재기의 기회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FIFA를 통해 목소리를 내려면, 정 회장이 3선 도전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 과거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FIFA 부회장으로 영향력을 과시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남은 임기 중요 과제 중 하나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정 회장은 2019년 12월, 2023 아시안컵과 여자월드컵 유치에 모두 도전했다가 단계적으로 포기했다. 최초에는 전략적 선택을 위해 아시안컵을 포기하고 여자월드컵으로 돌아섰지만, 이 역시 소원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2023 여자월드컵의 경우 남북 공동개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남북관계 경색을 극복하지 못했다. 물론 축구협회는 FIFA의 대회 운영 방식이 변경되면서 국내법에 저촉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부연했지만, 이번 54대 회장 정책 과제에 여자축구 발전을 1순위로 꼽은 것을 생각하면 2년 전 포기의 일부분은 '외교력 부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FIFA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다면 남북 공동개최라는 대의는 축구가 지향하는 '평화'와 섞여 더 공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불확실성의 세계가 되면서 국제대회 유치와 운영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신 제도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외교력만 복원해도 정 회장은 축구계 인사들의 걱정을 덜 수 있다.

국제경기 경험이 있는 A구단 전 대표는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중동세가 정말 강하다. 한국은 축구만 잘하지 다른 것은 못 한다(=외교 등 관계 형성)는 이미지가 있더라. 그래서 현지 사회공헌활동은 물론 지속적인 관계로 친한파를 만들려고 했지만, 일개 구단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을 보라. 동남아 국가에 일본 J리그 위성구단 하나쯤은 있다. 일본축구협회가 적극적으로 도운 결과다. 우리 축구협회도 이런 세밀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축구공 전달하고 봉사활동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1~7부리그 디비전 시스템 구축한 정몽규 회장, 완전한 승강제 도입으로 팀과 관련 업계가 돈을 버는 구조 만들기를 해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

전 직원 목소리 들은 정 회장, 합리적 원칙에 준한 행정 집행은 가능할까

외치 못지않게 내치도 필요하다. 축구협회 노보인 '그린카드'는 지난해 11월 선거를 앞두고 '54대 회장의 자격'을 제시했다. 누가 출마하고 당선 여부를 모르는 시점에서 제시한 것이라 꽤 설득력이 있었다. 노보는 실무진의 목소리를 담지만 축구팬들의 의견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노보에서는 '원칙에 준한 행정', '외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소통 잘 되는 축구협회', '축구협회 이미지 개선'. 선심성 행정 NO!' 등이 차기 회장에게 필요함을 지적했다.

내용 자체도 그동안 축구팬들이나 언론이 꾸준히 지적했던 것들이 많았다. 축구협회의 주인은 4년 단위로 선출되는 회장이 아니라며 팬들을 위한 소통을 더 강조했다. 또, 일선 부서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기부금, 선물 등을 남발, 집행하는 '톱다운'식 선심 행정도 더는 없기를 바랐다. 능력 있는 직원들을 정확한 부서에 배치해 역량 발휘를 이끌라는 주문도 있었다.

정 회장은 기업인이기에 축구협회 행정을 신경 쓰기 쉽지 않지만, 주 1회는 꼭 축구회관으로 출근해 업무를 봤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문제로 관심을 받을 당시 화요일이면 축구회관으로 출근하는 동선을 파악한 산업부 기자들이 대기해 취재할 정도였다. HDC 경영에서도 축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늘 예로 들며 '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꼼꼼한 정 회장이지만, 노보의 지적처럼 이상하게도 정책 결정 과정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몇 가지 실패 사례도 분명히 있다. 실무자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장기적인 안목의 비전을 갖춘 회장을 기대한다는 목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정 회장을 경험했던 전 축구협회 인사 A씨는 "축구를 정말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정몽준 전 명예회장과 비교해도 손색없다"라면서도 "상근 부회장이나 전무에게 과감한 결정권을 주며 믿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안타깝다. 여러 정책 과제 중에서는 행정직이 더 이해를 하는 경우도 있고 경기인 출신 행정가들이 아는 것도 있다. 이를 믿고 도와주는 결단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당선 직후 정 회장은 2주 가까이 모든 축구협회 직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했다. 임원부터 막내 직원까지 축구협회가 가야 할 방향을 자문한 것이다.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는 대부분이 함구했지만, 공통된 목소리는 있었다. "회장님이 이번에는 정말 다른 것 같다. 의지가 있다. 변화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정말 달라질 것인지는 4년 동안 지속해 관찰해야 한다. 2016년 7월 선거 당시 정 회장은 생활 축구와 엘리트 축구를 통합하면서 디비전시스템 구축을 외쳤고 일단 지난해까지 7부리그까지는 골격을 갖췄지만, 통합 승강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K리그1~2와 K3~4리그, K5~7리그 사이에서만 승강제가 진행 중이다. 재임 기간 내 이를 풀어내느냐가 관건이다.

2013년 초선 당시 외쳤던 '협회 예산 3천억 원까지 늘리기'는 사실상 실패로 보인다. 4년 내 예산이 파격적으로 는다는 보장이 없다. 2013년 부임 당시만 1천235억 원이었다. 지난해는 963억 원, 올해는 928억 원이다. 후원 비중이 큰 축구협회가 상업성을 장착해 적극적으로 예산을 더 벌어야 하는 조직으로의 변신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숫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산을 늘릴 것인지는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 회장은 이번 대의원총회에서 발표한 취임사를 통해 향후 핵심 과제를 내세웠다. 여자축구 활성화, 축구 저변 확대, 대회와 리그 혁신, 지도자-심판 강사 육성, 축구 과학 활용 사업 확대, 수익 다변화와 신사업 개발 등이었다. 수익을 내야 생존한다는 것을 체육 단체들 중에서 가장 피부로 느낀 과제였다.

모든 것이 다 이뤄지면 좋겠지만, 반이라도 해내면 한국 축구 산업화의 잠재력은 더 향상된다. 낙수 효과를 원하는 관련 업계가 환영하고도 남을 일이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기민한 대응으로 국민들을 상대로 희망과 즐거움을 함께 안겨야 한다. 

과연 정 회장이 내세운 과제들은 실현되는 공약(公約)이 될까. 아니면 미제의 공약(空約)으로 남을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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