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1997년 9월 26일 6만여 관중이 도쿄국립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펼쳐졌다. 한국은 후반 중반 야마구치 모토히로에게 선제 골을 내주고 경기 종료 10분 여를 남길 때까지 끌려 가고 있었다. 이때 드라마 같은 역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38분 서정원의 헤딩 슛이 굳게 잠겨 있던 일본 골문을 열었고 41분, 이번에는 이민성의 중거리 슛이 일본 골망을 흔들었다. '도쿄 대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이후 6차전까지 5승 1무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최종 성적은 6승1무1패였다. 지역 예선은 쉽게 통과했지만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서는 악전고투 끝에 1무2패로 조별 리그에서 떨어졌다. <12편에서 계속>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제 17회 월드컵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최대 규모의 스포츠 행사였다. 이 대회는 사회, 문화, 경제적인 파급 효과와 함께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다. 

21세기 들어 최초로 열린 월드컵이었다는 점이 먼저 그렇고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 1회 대회 이후 72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아 대륙에서 펼쳐진 월드컵이었다는 점이 또한 그랬다. 72년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두 나라에서 대회가 나뉘어 열렸다는 점도 기록할 만한 일이었다. 개최국으로 자동 출전하면서 한국은 5회 연속 출전, 1954년 스위스 대회를 포함해 통산 6번째 월드컵 출전 기록을 세웠다.
 
한일 월드컵 전까지 5개 대회에서 14경기를 치러 4무10패로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던 한국은 6월 4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마침내 무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상대는 폴란드로 조별 리그 D조 1차전이었다. 당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은 폴란드가 17위, 한국이 41위로 폴란드의 우세가 예상됐다. 그러나 주심의 시작 휘슬이 울리고 나니 24단계의 랭킹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됐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경기의 균형이 전반 26분 한국 쪽으로 기울었다. 폴란드 진영 페널티라인 부근에서 순간적으로 노마크 상태에 있던 황선홍은 이을용의 낮은 패스를 지체 없이 왼발 논스톱 하프 발리슛으로 연결해 폴란드 골키퍼 예지 두데크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오른쪽 귀퉁이에 꽂아 넣었다. 후반 8분에는 유상철이 폴란드 문전 20m 정면에서 수비수 야체그 본크의 태클을 피하며 통렬한 중거리 슛을 날려 폴란드 골네트 왼쪽 상단을 흔들었다. 6차례 월드컵 출전 15경기 만에 처음으로 맛보는 감격적인 승리였다.



꿈만 같은 월드컵 첫 승리를 이뤄 낸 한국의 2차전 상대는 10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맞붙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조별 리그 1차전에서 FIFA 랭킹 5위이자 우승 후보로 꼽혔던 포르투갈을 3-2로 꺾어 기세가 올라 있었다. 경기는 한국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진행됐으나 전반 22분께 불의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미드필더 프랭크 헤즈덕과 공중 볼을 다투던 황선홍이 오른쪽 눈 위가 찢어져 치료를 받기 위해 경기장 밖으로 나갔고 이것이 화근이 됐다. 2분 뒤인 24분 존 오브라이언의 전진 패스를 받은 클린트 메시스가 한국 골문 오른쪽 모서리로 차 넣었다. 

선수 숫자 10-11인 상황에서 일격을 당한 한국은 39분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힘겨운 경기를 펼치다 후반 33분 이을용의 크로스를 안정환이 헤딩으로 동점 골로 연결해 패배 직전에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1승1무로 D조 선두에 나선 한국은 14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포르투갈과 3차전을 치렀다. 치열했던 공방전은 전반 27분 포르투갈의 핀투가 박지성에게 거친 태클을 걸어 퇴장한 데 이어 후반 20분 수비수 베투가 다시 퇴장 명령을 받아 선수 숫자 9-11이 되면서 한국에게 유리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5분 뒤인 25분 박지성이 이영표의 크로스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 한 다음 곧바로 벼락같은 왼발 슛을 날려 결승점을 뽑았다. <계속> 

[사진]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서 선제골을 넣은 황선홍이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위). 황선홍은 조별 리그 2차전 미국과 경기에서는 오른쪽 눈 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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